부처님의 가르침을 양심수들에게

특집/ 보람의 현장3

2007-11-01     관리자

부처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있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머리 박박 깎은 제 발등에 굴러서 염주알이 된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로 이 시대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 상호를 바라볼 때마다 중생을 구제한다는 승려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부처님께서 너무 나도 잘 보살펴 주시어 태평스럽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이하여 이런 아픔을 나에게만 주시는지 투정기 어린 하소연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나 자신도 어느 스님처럼 산에 들어 앉아 참선도 하고 경전도 읽고 염불도 하면서 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에 앉아서 참선만 한다고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내 자신은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제가 승려되어 비구계 받은지 가 25년이 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비구계 받으면 스님이 다 된 것처럼 생각했던 지난 나의 모습, 그리고 함께 비구계를 받았던 스님들. 그들 중 어떤 스님은 죽음으로 떠난 이들도 있고, 보살을 만나 세속으로 간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25년 동안 이 절집에서 비구계를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정말 비구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로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머리만은 기르지 말고 머리 깎은만큼의 도리를 갖추는 것이 부처님에 대한 약속인 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80년 10월 불교법난이 일어났습니다. 스님들이 감옥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스님들이 잘못된 권력에 의하여 감옥에 갔다는데 ’아주 잘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스님들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스님들이 아무리 나쁜 악행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감옥에 가두는 일은 잘못된 일이며 감옥에 갇힌 스님을 구하는 것도 스님으로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을 구해내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을 하다보니 사회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을 직접 참여하여서만이 스님들을 구해낼 수가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그 기회가 왔습니다. 박종철의 고문진상이 밝혀지고 있었던 87년 상반기, 모든 사람들이 불의에 항거하며 전국의 도심을 누비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을 때, 종철이 아버님이 독실한 불자이였음에도 불교인들은 가만히 있었고 오히려 타종교인들이 나서서 진상을 밝히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된 도리로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은 미약하지만 불의에 항의하러 거리에 나갔다가 그만 잡혀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새삼 배웠습니다. 부처님 말씀의 참뜻을 비로소 감옥에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산간에 혹은, 도시 빌딩사이 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고 억압당하고 짓밟히고 자유를 박탈당한 곳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십시오.”
감옥에 갇혀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할 때에 주위에서 스스로 지은 죄를 괴로워하는 재소자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죄인들이라고 몰아 세우지만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다 들어온, 모든 것을 포용하는 부처님의 법으로 볼 때에는 죄 아닌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양심수라고 하는 말을 처음 알았습니다. 감옥에는 무수한 양심수들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권때에 들어온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만델라는 27년만에, 대만의 민진당 당수는 24년만에 국제적인 인권 압력에 굴복해 석방되었지만 우리 장기수 할아버지들은 수형기간이 43년이 넘은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고생하시는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랜 수형 생활로 만성 관절염에 걸려있거나 위장병 등의 지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심하게는 의기소침한 정신질환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들어갈 당시와는 엄청나게 바뀐 현실을 누구의 도움없이는 생존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불교인들 그리고 스님들 중에 감옥에서 고생하시는 재소자들께 봉사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이념의 벽에 막혀 고생하시는 양심수 어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고 있는 불자들이 없다는 사실은 제 자신을 놀라게 했습니다.
아무리 이념의 벽이 높다고 해도 자비문중이라고 말하는 불교계가 어떻게 그런 인권의 사각지대를 방치할 수 있는가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스님이나 재가신도들에게 그렇게 보고만 있으라고 가르치시진 않았을 것입니다. 중생의 아픔을 보면 지장보살 · 관음보살 · 미륵보살 · 약사보살로 나투어서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하셨는데 어쩌면 우리 스님들이나 신도들은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전국에 흩어져 있는 양심수들은 300여 명이 되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은 80여 명이 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이름으로 그분들이 이 겨울에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석방기도를 해 드립시다. 그분들이 석방될 때까지 한 사람씩 도움을 주는 인연을 맺어 봅시다.

진관스님은 80년 10. 27법난 이후 사회의식에 눈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광주에 현대불교연구소를 설립, 소장에 취임하였으며 민족문학 작가 회의 회원으로 왕성한 시작활동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