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행과 인연

2007-11-01     관리자


이렇게 산천이 단풍으로 짙게 물들어 가는 10월이 오면 산사의 종소리는 더욱 맑아지고 처마 끝의 풍경소리도 스님들의 청아한 독경소리,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그윽하게 풍겨오는 향내음.
무심코 스쳐버렸던 소리와 그리운 사연들, 귀기울이면 문득 문득 들릴 듯 하고 눈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까닭 없이 울적한 밤이면 나는 문득 먼 하늘을 바라보고 하였다. 마치 늙은 고양이가 무심히 밤하늘을 쳐다보듯이―.
시도 때도 없이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존재가치’에 대한 갈등과 친구들과의 뜻없는 농지거리들 그리고 잊고 있던 친구들의 전화, 성의 없는 나의 대꾸에 오리려 짜증만을 넘겨 주었던 무력함이 안개비처럼 온몸을 적셔주던 시간 속에서 이따금 올려보는 밤하늘이 내겐 애뜻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그 순간 순간이 척박한 나의 가슴에 숨통을 열어주곤 하였다.
온통 세상이 허무하고 고단해져서 제 아무리 고마운 이들도 눈에 차질 않았고 그리운 사람들의 소식마저도 반갑지 않았던 그런 방자하고 교만함으로 가득 찼던 날들과 함께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깊은 곳에서 불쑥 고약한 모습으로 기어오르던 죽음의 몸짓, 덧없는 삶의 깃발이 흔들림 속에서 아무런 위안도 안식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많은 생각들과 덧없음이 깊어지면서 나는 출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철모르던 시절 부처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심신을 강원도 삼악산 작은 암자에 의지하려 했던 내게 승의 인연도 금강과 같은 정신력과 각별한 수행, 그리고 지중한 업연이 아니고서는 쉽지가 않았다.
결국은 생각과 달리 수행이 뒤따르지 못했고 나는 또 다시 방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무렵 그는 내게 새로운 빛으로 다가왔고 그 무엇으로도 다독여지지 않았던 내게 진정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 주었다.
우주라는 무한한 세계가 존재하는 한 아직 내게도 가능성은 있었다.
나 역시 소우주에 다름 아니었으므로 이런저런 구체적인 존재가치에 대한 그의 말들과 함께 허무와 죽음, 삶과 사랑 등등의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들이 곳곳에 열려 있음도 알려주었다. 나는 그 많은 길 중에 선택을 해야 했고 지혜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곧 그것은 선택하거나 선택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그 길들은 저마다 완전한 모습으로 중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 방황과 번뇌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납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 끝닿은 곳 없이 곧게 뻗은 길 가운데로 들어섰다.
그 길 저편으로부터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과 은은한 꽃향기, 알 수 없는 향내음, 나무들의 푸르름들이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존재가치’에 대한 갈등과 삶의 무력함을 일시에 무너뜨리며 조용하게, 하지만 강하게 들어앉았다.
반야심경에서 공포와 몽상을 여의라는 부처님 말씀과 함께 붓다의 세계 속으로 들며 나의 오랜 방황의 생활은 끝을 맺었다.
나의 삶에 경이로움과 위안을 더하여 준 그와 영원한 도반의 길을 같이 가며 자연을 배우며 살리라 다짐해본다. 자연은 욕심을 내지 않으며 또한 결코 무리하는 일이 없이 오직 순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바람소리에서 물소리에서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서 배우리라.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어리다고만은 할 수 없었던 시절의 부처님과의 인연을 오늘은 물론 후대에까지 이어지게 해 변함 없는 신앙심으로 키워 갈 것이다.
나직하고 고요함 가운데 산새들의 지저귐처럼 들려오던 불가음!
작은 암자에서의 생활!
그리고 수행 정진할 수 없던 시간 속으로 찬란한 빛으로 찾아온 그와 참 생명과 참 벗을 얻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살생하는 이를 가까이하면 살생을 배우고 도둑질하는 이를 가까이하면 도둑질을 배운다. 또 사음하는 이를 가까이하면 사음을 배우고 거짓말을 하는 이를 가까이하면 거짓말을 배우며, 음주․방일한 자를 가까이 하면 음주․방일을 배우느니라. 이를 일러 악행이라 하나니 이에 비추어 친구를 택할지니라.”
『사리불 아비담론』

누구라도 벗은 다양하게 사귀게 된다. 그러나 진실한 벗이란 그 모든 많은 벗을 다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고통을 같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벗이어야 하며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 벗이라야 한다. 진실한 벗 사이에는 언제나 변함 없는 우정이 싹틀 것이다. 이러한 우정이야말로 나 자신은 물론 우리들을 올바르게 살고 보람 있는 삶을 갖게 할 것이다.
“만일 내가 부처님의 경지를 알고자 한다면 악우를 멀리하고 좋지 않은 취미를 끊어야 한다.”라는 말씀 또한 불자라면 항시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