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환경 운동가라구요

더불어 함께 사는 자연

2007-11-01     관리자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녀는 우울해졌다. 예전에는 일부러 비를 맞으러 돌아다니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산성비 때문에 무서워서 그런 감상에 빠질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하긴 무서운 것은 산성비만이 아니다. 어디 물이라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가. 수돗물의 정수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고 해서 아침마다 약수물을 떠다 먹었는데, 그나마 얼마 전 조사된 바에 의하면 서울 시내 대부분의 약수도 기준치보다 훨씬 오염되어 있다고 하니 말이다. 매연은 말할 것도 없다. 깨끗이 빨아서 입고 나온 흰 블라우스는 퇴근 무렵엔 이미 더러워져 있기 일쑤다. 이러다가는 정말 얼마 안 있어 신선한 공기도 상품화될 것 같다. 가을 하늘의 맑음을 자랑하던 우리나라의 서울 시내 대기 오염도는 이제 세계 몇 위로 손꼽힌다고 한다. 그런 기사를 대할 때마다 그녀는 흥분으로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했다. 도대체 아무렇게나 폐수를 버리고 무작정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기업인들에게도 화가 났고 그런 것을 더 강력하게 규제하거나 전사회적 차원에서의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과 대책 시설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정부도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에 있는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다 돌아온 직장 동료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게 되면 그것을 꼭 씻었다가 다시 사용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독일인의 절약 정신인 줄만 알았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자는 의미도 크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컵을 선물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는 속으로 뜨끔했다. 사실 환경오염의 주범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간편함을 이유로 종이컵과 은박 접시, 나무 젓가락을 사용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 샴푸나 세제도 거품이 많이 일지 않으면 씻은 것 같지 않다며 지나치게 듬뿍듬뿍 덜어서 사용하고는 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책상 위를 닦을 때도 걸레를 사용하는 대신 습관적으로 휴지에 먼저 손이 갔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면 하나를 사더라도 꼭 봉투에 넣어주는 친절 때문에, 잘 썩지도 않아 토양오염의 요인 중 하나라는 비닐봉지를 일주일이면 한 묶음씩 버려야 했다. 건전한 시민 정신을 지닌 사람답게 꼬박꼬박 휴지통에 버린 음료수 알루미늄 캔도 지구를 병들게 하는 쓰레기 중의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행동들의 상당 부분이 환경을 오염시키는데 한 몫을 해온 셈이었다. 그나마 그녀가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 환경 보호에 기여한 일이었다.
그녀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물과 비누와 휴지를 많이 사용하는 국민이 선진국민이라는 말이 있었다. 청결함이 잘 사는 나라의 척도로 여겨졌던 때였다. 한창 경제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정신 없이 달려가던 70년대였으니, 외국의 그런 문화가 풍족함과 여유의 상징으로 비춰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차례를 지키고 길거리에 휴지를 안 버리는 것이 문화시민이라고 강조되곤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환경 오염이 심각한 지경까지 이르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단지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느냐 하는 수치가 그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자원을 고갈시키고 한편으로는 지구 전체를 쓰레기장으로 만든다면 얼마 안 있어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해 온 발전이 거꾸로 인류를 위협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그저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린다는 것만으로는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 날 이후로 그녀의 사무실 사람들은 책상 위에 자기 컵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은 생수통 옆에 일회용 컵을 놓아두었었는데 그것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나부터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자각은 비단 그녀의 사무실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록 작지만 꼭 필요한 일을 이미 시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주부들의 쓰레기 분리수거가 활발하게 진행중이고 식당에서는 나무 젓가락 사용을 그만두었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개인들의 그런 움직임만으로 환경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환경을 되살리려면 장기적인 계획과 정책과 투자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불평만 하고 있지는 않기로 했다. 자신부터라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고,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환경운동이 시민운동으로 활발하게 전개된다면 더 이상 개인적인 노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환경 운동가가 뭐 따로 태어나는 것이겠는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경 운동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