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부탄 4 완디포드랑의 불심

불국토 순례기/청정불심의 나라 부탄④

2007-11-01     관리자

팀부계곡을 떠나기 전에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서 팀부계곡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비포장도로의 난코스를 거슬러 올라가면 길이 끝나는 곳 좌측, 까마득한 산 위에 체리공파(Cheri Gonpa)라는 작은 사원이 미끌어 떨어질 듯이 버티고 있다. 그 밑 계곡 쪽으로는 산사태가 나서 경사면이 뭉그러지고 있다. 오솔길을 따라서 스님들이 먹을 물과 양식을 등에 지고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고행하는 스님들의 위풍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되돌아서면 좌측 산꼭대기에는 탱고공파(Tango Gonpa)가 역시 까마득한 절벽에 매달리듯이 웅거하고 있다. 이 사원도 반나절이 걸려야 오를 수 있다. 거의 그 계곡을 내려오면 우측 언덕에 승려학교가 있다. Dechen Phodrang Monestery School 이라 하는데 마침 여름방학이어서 많은 젊은 수도승들이 보따리를 들고 걷거나 버스로 귀가하고 있었고 몇몇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귀가하는 어린 승려들은 기쁨에 넘쳐 있었다.

완디포드랑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였다. 협곡의 좌측 언덕에는 데첸풍 사원(Dechenphung Monestery)이 깎아지른 벼랑을 배경으로 멋지게 서있었다.

드디어 이 여행에서 가정 높은 고개인 도추라(Dochu La)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풍습에 고개마다 서낭당이 있듯이 불탑이 서 있었다. 또 불경의 깃발이 수도 없이 나부낀다. 좌측 상상봉에는 전망대 휴게실이 있다. 휴게실에서 홍차와 비스켓을 대접받고 일본의 니콘회사가 기증한 망원경으로 눈 덮인 히말라야를 조망했다. 왼쪽 봉우리에서는 송신탑의 공사를 일본회사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제력은 이 오지까지 미치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 계곡을 내려갈수록 울창한 숲이 경제림으로 꽉 차 있어 산림의 부국임을 입증해주었다. 계속 내려가니 넓은 강이 나오고 갑자기 시야가 넓어진다. 이곳이 완디포드랑이다. 여지껏 함께 돌아다닌 안내자 돌진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의 집은 4층 건물의 농가로 강가에 우뚝 서 있는 부농이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에는 검문소가 있어서 검색을 했다. 바로 강 건너 언덕에 우뚝 솟은 성곽이 완디포드랑죵(Wandiphodrang Dzong)이다. 왼쪽으로 비껴 올라가니 언덕 위 평지에 완디포드랑 마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마을 건너편에 아주 오래된 집단마을이 보이는 게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 한다.

모텔 완디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푸나카로 향했다. 강을 계속 따라서 굽이굽이 올라가니 강변 우측에 아름답고 웅장한 죵이 보였다.

이 죵이 유명한 푸나카죵(Punakha Dzong)이다. 이 건물 중 좌측 것은 오래 된 오리지널 건물이고, 우측 건물은 새로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맑은 강물 옆에 서 있는 이 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흔들거리는 현수교를 건너서 사원의 정원으로 들어가 촬영했다.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의 창에서는 많은 수도승들이 촬영하는 내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 사원의 내부는 전혀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촬영하지 못했다. 푸나카죵에 기거하는 수천 명의 승려들 때문에 푸나카 마을은 온통 승려들의 거리였다. 여기 저기 음식점과 매점을 기웃거리는 어린 수도승들을 보고 어린 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에 완디포드랑죵으로 새벽촬영을 나가려는데 낯익은 나팔소리가 들린다. 티벳에서 사원의 행사 때 부는 나팔소리였다. 걸음을 재촉하여 죵으로 향했다. 사원의 계단 높은 곳으로부터 진자주색의 가사를 드리운 승려들이 수없이 내려오고 울긋불긋한 깃발을 든 사람, 나팔 불고 북 치는 승려들이 줄지어 내려온다. 사원에 큰 행사가 있는 듯했다. 운 좋게 1년에 한 번 있는 이 사원의 불교행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정신 없이 셔터를 눌렀다. 가장 높은 고승의 복장은 정말로 화려했다. 그 밑의 중진스님, 그리고 많은 젊은 스님과 동승이 줄을 이었고, 북, 나팔, 깃발이 한데 어우러져 행사가 절정에 달할 무렵, 부적으로 만든 갖가지 형태의 것들이 마당에 쌓여지고 고승이 무엇인가 그 위에 뿌린다.

벼랑 가까이에서 짚가리가 서너 개 세워져 있는 곳에서 마지막 행사는 극적 분위기에 달한다.
짚가리에 불이 지펴지고 그곳에 부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던져 태우며 히말라야의 산쪽을 향해 기구하며 환호하는 것으로 행사는 끝이 난다. 곧바로 모든 승려들은 죵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완디포드랑 강변 언덕 위에는 포인세티아의 빨간 꽃이 만발하여 마을의 아름다움을 고조시켰다. 어디를 가나 승려들을 볼 수 있었고 주민들은 존경의 인사표시를 잊지 않았다.

마을의 한쪽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장이 섰다. 장터에는 주변마을에서 농산물을 가져와 팔고 대신 그곳에서 생필품을 사간다. 대부분의 농산물은 무, 배추, 바나나, 마늘, 고추, 곡식 등이다.

우리나라의 옛날과 같이 연탄이 없는 이곳에서는 장작이 유일한 연료이기 때문에 장작을 파는 곳이 많았다. 주민들은 순박하고 친절하여 사진촬영에도 협조적이었다.

완디포드랑의 좌우에는 강이 흘러 한데 합치는 삼각주가 되는데 동측의 강은 물이 검고, 서쪽의 강물은 파랗다. 그 원인은 한쪽은 석회질이 많은 물이고 한쪽은 광산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심 산골이지만 이곳의 물을 마시면 금방 배탈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