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절 감자절

2007-10-30     관리자

부처님 오신 날이 벌써 지나갔다.
사방천지에 활짝 폈던 봄꽃들도 어느 날인가 자취를 감추었다.
꽃들이 사라진 어느 날 아침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연등들도 그것들을 만들던 손놀림만큼이나 신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진 나무는 이제 초록의 나뭇잎들을 다시 내어 달고, 화사하진 않지만 싱싱한 대지의 생기를 쑥쑥 내품고 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연등이 매달렸던 자리 마다마다에도 불심이 저렇게 왕성해졌으리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온갖 언론 매체들은 여러 가지 모습들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깊은 산사에서부터 도심의 한가운데 사찰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부’자에만 걸치면 야단스레 떠들어 댔다.
이제는 불교가 대중불교로 자리잡아 왕성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룸비니에서 구시나가라까지 우리나라의 불자들이 성지를 순례하는 모습도 보여 줬다.
해외 여행이 극성인 요즈음, 신심을 쌓다보면 해외로 순례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다같이 똑같은 처지에 누구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상이몽’이라고 생각도 제각각이고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도 구구절절하다.
어느 절에서는 어느 스님이 인기가 많아서 사모님, 마나님들이 절마당 가득 그야말로 북적댄다고 한다. 시줏돈도 엄청나 일주일에 몇 억씩 쌓이고, 대웅전 주추는 하루 아침에 몇자씩 하늘로 솟아 오른다고 한다. 땅 한 뼘에 금값도 호가하는 금싸라기 땅에 신도님들 비 맞으실까 법당이 운동장만하다고도 하며 그래서 이를 금자탑이라 부를 만하다.
또 어느 절에서는 태국으로 성지 순례를 가는데 스님들 여비하시라고 사모님들 시줏돈을 모아 드렸다고 한다. 여비까지는 좋은데 봉투 겉에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깨알 같은 글씨로 시주하신 분들 이름 석자를 써넣어 드렸다고 한다. 가히 그 공덕이 먼 이국 땅까지 뻗치고도 남을 만하다.
태국은 화려한 불교 유적이 많다고 한다. 국가에서 국교로 불교를 숭상하고 법으로 보호하기 때문에 작은 탑 모서리 조금만 손상해도 유죄라고 한다.
먼 길, 먼 나라까지 순례여행가서 깨알같이 이름들이 쓰여진 봉투를 잊지도 않고, 코딱지만하게 접고 또 접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금줄로 매어놓은 탑의 꼭대기까지 목숨을 걸고 기어 올라 가 얹어 놓고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탑들은 너무 낮아서 쌓은 공덕이 무너지기라도 하는지···. 올라가지 말라고 팻말까지 써붙이며 막아놓은 탑에 남의 나라 법까지 어기면서 몰래 기어 올라가 얹어 놓으면 더 빨리 성불하시는지···.
더운 나라에서 애태우고 땀 흘리며 그 높은 꼭대기까지 오르신 그 불자님 정성이 가슴 아프다.
마하반야바라밀.
거기서 끝나면 내 가슴이 덜 아프련만, 서울로 올라와서는 만나는 분들마다 손 붙들고 전하는 말이
“내가 그 정성 잊지 않고 먼 나라까지 가서 어렵게 공 들이고 왔으니 가업이 창성하고 자손 부귀하며 소원성취하고 성불하리다.”
이 말 들은 어느 보살님은 합장하고 고개 숙이며 생각하기를,
‘빨리 동창회에 나가서, 계 모임에 나가서 자랑해야지. 우리 절은 이렇게 먼 나라까지 가서 공덕을 기려 주니 기도가 영험하다고···. 내 이름, 자식 이름, 우리집 거사 이름. 태국의 유명한 절 높은 탑 위에 얹어 있다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 보살님.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고 집에 와서 생각하니 정말 배가 아프다.
‘저 가진 것 나는 없나?’ 생각 끝에 친구 몰래 절에 가서 바쁘신 스님 붙들고, 지난 번보다 더 멀고 높은 탑이 많은 나라로 순례 여행을 또 가자고 조르고 조른다.
친구따라 이 절 저 절, 제비따라 강남 간다고 부처님 말씀도 이 꽁무니 저 꽁무니 따라다니느라 바쁘시겠다. 우유죽 한 그릇, 겉보리 한 되박 시주하든지, 금싸라기 한 가마 시주하든지 공덕은 공덕이고 생전에 닦고 지은 대로 업도 받고 인연도 있다더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데···.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무성한 여름의 문턱이다.
이쯤이면 빛살좋게 잘 익은 살구와 흙내음이 물씬거리는 감자가 생각난다. 노랗고 탐스럽게 잘 익은 살구는 생각만 하여도 군침이 돈다. 또한 손톱만 닿아도 껍질이 술술 벗겨지는 햇감자는 가마솥에 푹 쪄서 초여름 인심좋은 나무 그늘에 앉아 소금을 찍어 먹는 맛이 가히 일품이다.
빛깔없고 볼품없는 못생긴 감자지만 보릿고개 난리통엔 목숨 건져주는 귀한 식량이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 밭 일구어 감자 심는 농부인들 비단 옷에 고운 손으로 빛좋은 살구 따는 멋을 모를 리 있겠느냐만, 모양 좋아 땄어도 달면 좋고 떫으면 땅바닥에 내 팽개쳐지는 살구보다 못생기고 하찮아도 짐승이든 사람이든 한 목숨, 한 배 먹거리 되는 그 의미가 마땅한 듯 싶다.
어찌하여 이런 엉뚱한 비유를 하게 되었는지 까닭이 뜬금없다.
그러나 배워야 깨닫고 깨달아야 경거망동하지 않고, 경거망동하지 않아야 좌정하고 좌정해야 염불되는 그런 절이 좋다.
서까래도 빛바래고 벽마다 금이 가고 빗물이 줄줄 새도 뜻있어 모이고 일심정성으로 공양하는 절. 살구처럼 빛좋은 것도 아니고 금싸라기 땅도 아니지만 참 진리를 배우는 절.
못생겨도 좋으니 한 뼘 감자밭 일구어 미물 목숨일지언정 연명케 하는 참 생명이 되게 하소서. 참 진리를 깨닫게 하소서.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