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활속의 단상

2007-10-30     관리자

이른 아침 앞집 뜰에 있는 자두나무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에 잠을 깨어 아침 예불을 드리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창문밖에 아직 넘어가지 않은 둥근 보름달이 아침 예불과 함께 108배 절을 한 100일째 날을 축하해 주는 것처럼 밝게 빛납니다.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한 달에 한 번씩 보내오는 [불광지]는 꼭 절친한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아보는 느낌입니다. 특히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란에 실리는 분들의 삶을 읽으면서 불심으로 작품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정말 기쁘군요.
저의 이곳 생활은 퍽 안정된 생활입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공 스님 독경 천수경과 반야심경, 고왕경, 관세음보살 보문품, 법성게를 들으며 예불을 드리다가 요즈음은 학교생활과 작업장, 시험준비로 항상 늦잠이지만 꼭 예불은 드리지요.
가끔은 이곳 생활이 한국의 설악산이나 오대산에서 수행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곤하지요.
까라라의 뒷산은 1,200m까지는 자동차로 오를 수 있고 500m는 등산코스입니다. 1,700m의 높은 캄포체치나 산 아래로 200여 곳의 대리석 채취장은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장관을 이루고 그 아래로 까라라 시가지와 지중해 바다가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어요.
알프스 산맥을 이은 높고 낮은 산에는 사계절 이름모를 예쁜 야생화들과 산새들의 지저귐에 이곳 사람들도 어른인지 아이들인지 모르게 낙천적인 모습들이 아름다워요. 가을이면 송이 버섯을 딸 수 있고 밤나무에 열린 밤들은 주인이 없어 누구나 주인이 된 것처럼 따서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봄이 되면 고사리와 부추를 따와서 저녘식탁에 올려 놓을 때면 잠시 어린 시절 자랐던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합니다.
한 달 전쯤에는 까라라 뒷산 약수터 가는 길에서 고사리를 가득따서 삶아 말려 놨어요. 오동통하고 맛이 쫄깃쫄깃한 것이 올리브 기름과 함께 요리해 놓으면 향기와 더불어 더욱 감칠 맛이 납니다.
까라라에서 생활하면서 가끔씩 미술관 관람을 위해서 이태리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있어요.
저의 집에서 4-5시간 거리에 프랑스, 모나코. 스위스가 있고 이태리에서도 중간지점의 도시라 로마, 밀라노도 3-5시간으로 여행하기에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3주 전에는 주말을 이용해서 한국인 조각가 몇 명과 함께 남프랑스‘니스`를 여행했습니다. 샤갈, 피카소, 미로, 쟈코네티 등의 미술관을 보고 휴양지와 도시의 이곳저곳도 돌았습니다.‘니스`는 까라라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걸렸습니다.
지중해의 해안선을 따라 200여 개쯤 되어 보이는 굴을 지나면 국경너머 모나코가 있고 30분쯤 더 가면 또 하나의 나라 프랑스이지요. 프랑스 동, 남부는 세계적인 휴양도시이자 예술의 도시였습니다. 이곳을 찾았던 많은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자연에 취해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작품 제작을 한 작가들이 많다고 합니다.
앙티븐에는 피카소가 1946년부터 머물면서 수많은 도자기 작품들을 놀랍도록 많이 만들었던군요.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그리말디 성안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비디오에 담으면서 전 이런 생각들에 젖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환경이란 것이 참 중요하다`고요.
새삼스럽지만은 피카소의 삶이 도자기의 그림속에 잘 담겨져 있었습니다. 꾸밈없이 즉흥적으로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그의 작품세계는 자유로웠어요. 바닷가 모래 위에 또 자갈밭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옷을 벗기고 다리, 가슴에, 또하나의 얼굴을 그리고 그가 만든 도자기들을 야외로 옮겨와 꽃을 꽂는 행위는 작품속의 주인공이었어요.
피카소는 지중해 바다로 돌출해 있는 언덕위 성터에서 나이 먹는 줄 모르고 회화, 조각, 도자기, 판화 등 작품들을 해 왔는데 그의 나이 절반도 채 안된 내게서도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찾아 봅니다. 이제까지 살아 오면서 생각했던 대로 하나하나 이루며 오늘을 살아왔거든요.
저는 이곳 생활이 끝나는 대로 한국에 돌아가면 경주 근처 산세가 괜찮은 데다 작은 법당하나 지어 부모없는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불교 조각공원 하나 세우는 것이 소원입니다. 처음엔 노인들과 함께 하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어요. 욕심 같아선 이곳의 아카데미마냥 불교 미술학교도 세우고 싶어요. 제 나이 55~6살에 꼭 이루고 싶습니다.
저는 이곳의 유학이 끝나는 대로 영국의 미술학교로 유학할 예정입니다. 까라라에서 작품 생활은 계속하면서 영국 유학 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조각들이 찾아 오는 곳이라 언어가 해결되지 않고는 도저히 작가들의 작품세계, 문화를 알 수가 없어요. 영국에서 미술공부와 언어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불교의 여러 나라들을 두루 돌아보고 한국에 돌아가 게획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추진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올 때 갖고 온 일타 큰 스님의 범망경 보살계 1-5권 중에 달마 선사가 혜가 스님에게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어 끊어 버리고 안으로 마음의 헐떡임을 없애라”고 하신 법어와 어느 불서에 “말과 마음과 행동으로 자기가 스스로 죄를 짓는다.”는 이 말씀들이 요즈음 제 생활의 좌우명처럼 되었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늘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모든 이웃들이 내내 건강하고 복된 삶 누리시길 기원드립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이태리 까라라에서 한기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