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마을 동화] 원수는 갚아야 하나

연꽃마을 이야기

2007-10-30     관리자

  부왕(父王)의 죽음

  옛날 먼 나라에 임금님이 계셨는데 이름을 장재왕이라 하였습니다. 이웃나라에는 부라하왕이 있었는데 부라하왕은 나라도 넓고 군사도 강성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좋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주 장재왕 나라를 침범해 왔었는데 어느 해 싸움에는 장재왕이 크게 패하여 궁궐을 비우고 멀리 달아났습니다. 장재왕은 워낙 군사가 적었던 것입니다. 산중에 피해 있던 장재왕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붙잡히는 몸이 되었습니다. 부라하왕은 도성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장재왕을 처형하기로 하고 널리 방을 붙였습니다. 장재왕의 아들도 민가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가 처형당한다는 말을 듣고 평민행색으로 꾸미고 그 자리에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멀리서 나마 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몇번인가 북이 둥둥 울렸습니다. 수레에 실려 온 장재왕은 처참한 모습으로 처형대 앞에 내 세워졌습니다.

  장재왕은 비록 적에게 잡힌 바 되어 처형 당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자세는 늠늠하였습니다. 장재왕은 구름같이 모여든 군중을 둘러 보았습니다. 자기가 아끼던 자기 백성들인 것입니다. 장재왕은 비록 자기는 죽지만 백성들이 죽음을 면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군중 속 앞줄에 왕자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장재왕은 왕자가 살아 남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왕자가 안전하게 성장할 것을 깊이 바랬습니다.

  장재왕은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싶었지만 만약에 왕자가 발각되는 날에는 함께 죽게 될 것이므로 드러내 놓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장재왕은 지혜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혼자서 되뇌이듯 담담하게 외쳤습니다.

  '오래 보고 있지 말아라. 짧게 급히 서두르지 말아라. 원한은 원한 없는 데서 가라 앉는다.'

  장재왕은 몇 번인가 혼자말을 되뇌이고 이윽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모여든 군중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은 통곡의 소리였습니다. 왕자도 그 소리에 섞여 통곡하다가 눈물을 씻으며 돌아섰습니다.

  아들의 복수심

  그날부터 왕자는 오직 아버지 원수를 갚을 것만 생각했습니다. 하루 하루 복수할 일념만으로 살아 갔습니다. 학문을 익히고 무예를 닦아 마침내 부라하왕 궁전을 지키는 군사로 뽑혔습니다. 물론 왕자 신분을 속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왕자는 열심히 일해서 승진을 거듭하였고 마침내 부라하왕의 신임을 받게 되어 부라하왕의 경호원이 되었습니다. 왕자는 복수심에 불 타면서 하루하루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왕이 먼 산으로 사냥을 떠났습니다. 호위병도 함께 떠났습니다. 사냥이 한창 무르익는 동안 왕자는 호위병을 멀리 따돌리고 왕을 모시고 외딴 산중을 활을 쏘며 달렸습니다. 그러던 중 부라하왕은 피곤하여 쉬게 되니 왕은 지쳐서 왕자의 무릎을 베고 누었습니다. 이윽고 코를 골며 왕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왕자는  "이때다. 복수의 때는 지금이다." 결심하고 칼을 빼어 부라하왕의 목을 겨눴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왕자의 귀에는 아버지의 최후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려 왔습니다.

  '오래 보고 있지 말아라. 짧게 서두르지 말아라. 원한은 원한으로 가라 앉지 않는다.'

  왕자는 몇 번이고 힘을 주어 내려 치려 하였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왕은 무서운 꿈이라도 꾸는 듯 몇 번인가 급한 소리를 지르더니 이윽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왕자는 급히 칼을 거뒀습니다. 부라하왕은 '휴!'하며 숨을 크게 내쉬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급히 부라하왕에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꿈을 꾸었다. 혼이 났다. 장재왕 아들이 칼을 빼어 내 목을 치려고 하였다. " 부라하왕은 아직도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왕의 뉘우침

  왕자는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여, 용서하여 주소서" "무슨 일이 있는가?"  "신이 이제까지 숨겨 왔습니다. 소신이 장재왕의 왕자입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하여 오늘까지 왔습니다. 오늘 대왕이 잠든 사이에 칼을 빼어 대왕님을 해하려 하였지만 아버지의 최후의 말씀이 귀에 들려와 감히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라하왕은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뉘우쳤습니다. "장재왕은 착한 사람이었다. 비록 작은 나라의 왕이었지만 나보다 몇 배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원한은 원한으로 가라 앉는 것이 아니지. 그런데도 나는 무력만을 내세워 함부로 치고 빼았았으니 언제나 싸움을 불러 일으킬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장재왕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들의 대까지 원한을 갚지 말라 하였다. 아! 내가 잘못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부라하왕은 장재왕자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만 두오. 일어나시오. 내가 잘못했소. 부왕은 참으로 거룩하신 어른이요."

  부라하왕은 장재왕의 자라를 왕자에게 돌려주고 나라를 세우게 하고 두 나라는 오래오래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백성들도 전쟁을 모르는 평화를 오래오래 누렸습니다.

  원한은 원한을 낳고..

  장재왕이 유언한 '오래보고 있지 말라한 것은 원한을 오래 품고 있지 말라는 뜻이고, 짧게 서두르지 말라 한 것은 우정을 깨트리는데 급히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었으며, 원한은 원한으로 가라 앉지 않는다는 말은 원한은 잊는 데서부터 비로소 원한 없는 평화가 온다는 뜻입니다. 부라하왕도 장재왕자도 장재왕의 이 말씀을 늦게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만약 원한을 품고 잊지 않는다면 끝없이 복수를 반복할 것이므로 언제 가서 원한이 풀리고 평화가 있겠습니까?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불러 오는 것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