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악(歌舞樂)으로 빚은 성도(成道)의 큰 빛

특별기고

2007-10-30     관리자


불기 2536년 12월 27일, 전북 불교회관 4층 큰법당에서는 『성도절 법요식』이 엄숙하게 올려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쌀쌀한 기온이 겨울을 실감나게 하더니 오늘은 추적추적 내리는 세우(細雨)가 자비로운 법우(法雨)처럼만 느껴지는 일요일이었다. 4층 대법당을 가득 메운 선남자 선여인들이 삼보귀의심에 용맹정진하는 열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증명법사 송월주 큰스님께서 행하신 이 날의 법어(法語)는 거룩하신 부처님의 자비로서 우리의 한우리됨을 깨우쳐주시는 말씀의 법우(法雨)였다.
“인간사에 나타나는 괴로움과 모순은 어떠한 결정적인 원인의 씨앗이 있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일체가 연관되어 변화하는 가운데 서로서로 복합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설사 그것이 아무리 추하고 아름답고 고상하고 소박한 것이라 할지라도 불변의 씨앗이 없는 무자성, 무실체의 무상함속에서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요소에 불과하다. 이를 우리는 연기적 존재라고 한다.”
송월주 큰스님의 법어는, 그들 저들, 당신-나, 가는 것-오는 것, 있음-없음 등 모든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에 대한 본질을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속에서 찾도록 길을 인도해 주셨다.
이 날의 법요식의 축사와 발원문 낭독 그리고 한탑 스님의 강연은 대중신도들이 보리심을 일으켜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신심으로 정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한국가무악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백제예술전문대학 채향순 교수의 「성도절 봉축 가무악 헌공작품-큰 빛을 사바세계에-」가 올려졌다. 채교수는 이미 전통예술의 독보적 존재로서 그 예술적 성과가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명성을 확립한, 가무악의 출중한 대스타다. 그런 채교수가 오직 전북불교회의 성도절 법요식을 위하여 새 작품을 안무․구성하고 직접 출연하여 큰 법당에 올린다는 그 자체가, 예술성과 종교적 경건성으로 합일된 대공양의 빛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의 장인적인 기질과 종교적 신심이 작품을 통해서 표출되기 이전에, 그는 오로지 한 시간이 채 못 미치는 소품 속에 대작의 열정을 쏟아붓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첫째는 그가 이화동․박인범․김원선․김도연․김귀형 등 국악계의 최고 아티스트들을 망라한 공연팀을 통해서 그의 성심의 일단을 읽을 수 있었으며, 둘째는 작은 무대(?) 좁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창조적 디테일이 모두 동원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신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예술적 기량의 선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그의 연기를 통해서 그의 예술미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안무자이자 연기자인 채향순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이다. 그가 갈고 닦은 호남승무의 진경은 그의 스승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인 이매방 선생의 극찬처럼 ‘피를 말리는 극기와 영혼을 불태우는 전인적 노력’을 통해서 얻어진 진수이다. 이날의 연기에서도 가무악으로 다듬어진 예술적 향기가 그의 탄탄한 작품의 기반을 형성하여 매우 안정감 있고, 밀도 높은 완성도를 이룩함에 값하였다.
이날의 헌공작품 「큰 빛을 사바세계에」는 네 개의 소단원을 지닌 완결성을 전체구조로 하고 있다. 사바세계를 깨우치는 범종의 타종과 함께 봉수연화(奉手蓮花)한 선녀들이 ‘기원무’의 막을 열었다. 채향순 가무악의 한 패턴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간파되는 군무(이날은 무대관계로 4-6인이 등장)의 등장은 곧 주제를 펼쳐 보이기 위한 길닦기 수순이면서,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의 군무는 여기에 중생을 제도해 주실 부처님의 탄생을 기원하는 춤사위가 간절했다.
이 날의 법어는 ‘연기적 존재’였다. 두번째 단원은 마치 이날의 작품이 법어의 형상화에 그 초점을 맞추기라도 했다는 듯이, 탄생 다음으로 이어지는 생로병사의 원초적인 인간의 고뇌를 표현하는 「윤회의 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과 인간, 천상과 천하, 그들-저들, 당신-나, 감(去)-옴(來), 있음-없음으로 이어진 연기의 끈에 얽매여 허덕이는 사바중생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가무악의 어우러짐을 통하여 형상화되고 있었다.
채향순 예술미의 또 한 특성을 형성하고 있는 엄청난 볼륨의 타악기의 울림은 여전했다. 다만 여기에서의 북소리는 단순한 소리의 확성이 아니라, 석가세존 거룩하신 부처님의 대각성도를 ‘천지의 울림소리’로 형상화하면서 종교적 경건성과 법우를 맞이한 육도중생들의 환희가 농축된 울림이었다.
이 기쁜 소식을 하늘중생에게 알리는 바라춤의 경쾌함이나, 사물놀이로 땅의 중생에게 고하는 역동적 에너지의 분출은 기(氣)에 실린 정(精)의 합일로 모두를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대단원이었다.
성도절 축하공연 ‘큰 빛을 사바세계에’ 에는 몇 가지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첫째, 전통적인 가무악이 불교와 어우러져 펼쳐내는 그것은 민족성의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둘째, 예술과 종교의 상호 수용적인 적극성을 전제로, 양자의 조화로운 측면을 생활속으로 끌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셋째, 사람됨의 그릇은 그 ‘크기’ 보다는 그 ‘쓰임’ 에 값어치가 있듯이, 대스타가 보여준 인간적 성실성을 접할 수 있었음은 무엇보다도 큰 보람이 아니겠는가.
이날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그 성도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그들이 가고 저들이 가고
당신이 가고 또 내가 가고
그들이 오고 저들이 오고
당신이 오고 또 내가 오고
그리고 가지도 오지도
머물지도 않는
그들이 있고 저들이 있고
당신이 있고 또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