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후비는 버릇

더불어 함께사는 자연

2007-10-30     관리자


언제부터인가 나는 코를 후비는 버릇이 생겼다. 화장지를 돌돌 말아 콧속에 밀어넣고 한 바퀴 돌린 다음 빼내면 새카만 것이 묻어나온다.
이 짓을 하고 나면 마치 굴뚝청소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굴뚝이 뻥 뚫려 연기가 펑펑 빠져나가듯 콧속이 시원해지고 숨쉬기도 한결 편해진 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건 남 보기에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닐 터이므로, 나는 될 수 있으면 은밀하게 콧속청소라는 작업을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버릇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꽤 오래된 버릇인 것만은 틀림없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 3년 전쯤 내가 어떤 출판사에 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그 친구의 이름까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한 직장동료와 일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친구는 화장지를 한 조각 뜯어 돌돌 말더니 컵 속의 물을 찍어 태연히 콧속에 밀어넣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그것을 좌우로 천천히 돌리는 것이었다. ‘이 친구도’하는 생각과 함께 ‘이 친구는 화장지에 물을 적셔서 사용하는구나’하며 속으로 감탄했던 적이 있다. 하기야 함께 서울의 대기를 마시며 사는 처지에 내 콧속만 새카매지라는 법은 없을테니까.
이런 기억으로 보면 코를 후비는 버릇이 적어도 3년은 된 것 같은데 이보다 더 오래된 기억도 있다. 우리 큰애가 돌이 지나고 난 여름이니까 6년쯤 전일 것이다. 나는 아이를 안고 버스를 탔다.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에 아이까지 안고 있으니 무척이나 더웠다. 아이를 안고 있는 걸 보고 누가 자리를 양보했는지 아니면 마침 빈자리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힐 때였다. 내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아이에게는 바람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에게 바람을 쐬면 안 된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누누이 들어온 터라 그런 것이려니 하고 생각하는 참에 아저씨의 다음 말은 좀 뜻밖이었다. 창문으로 자동차 바퀴에서 나오는 고무가루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아하, 그래서 콧속이 그렇게 새카매지는 것이로구나’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하긴 자동차 바퀴는 닳으면 갈아 끼우는 것이니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내에 나가서 돌아다니다 온 날이면 콧속에서 더욱 새카만 것이 묻어나온다. 자동차 브레이크에서는 석면가루도 나온다고 하던가.
이보다 더 오래된 기억은 없다. 그러니까 코를 후비는 버릇은 한 6년쯤 되었다고 하면 될 것 같은데, 누가 알겠는가 훨씬 전부터 그런 버릇이 생겼는지. 요즘은 또 엉뚱한 걱정이 생겼다. 이렇게 오랫동안 코를 후비다보면 콧구멍이 점점 넓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콧구멍이 넓어지면 그만큼 오염이 잘 될 것이므로…. 대기오염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은 콧구멍만은 아니다.
사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된 노릇인지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다. 병원에서는 기관지가 나빠서 그렇다고 한다. 기관지가 나빠진다고 하여 아이들 근처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잠을 잤다. 캄캄한 방안에서 옆 자리에 누우신 아버지가 피우는 담뱃불이 빨갛게 타들어가는 것을 보곤 했다. 한 모금 빨아들일 때마다 바지직 소리를 내며 어둠 한 구석을 환하게 밝히는 담뱃불을 보는 것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이렇듯 담배연기를 아버지의 체취로 알고 자란 것은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일 게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기관지가 나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어느 집에 가 보아도 아이들 근처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고 아이들 기관지가 철갑을 두른 듯 튼튼해지면 좋으련만.
우리 아이들 기관지가 나쁜 것이 아이들에 대한 내 공력이 부족해서였는지 아니면 우리가 살던 동네가 유난히 대기오염이 심해서였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신길동에서 살았다. 차도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집이었는데, 그 차도는 거의 하루종일 차량이 정체되는 지역이다. 자동차는 정체될 때 가장 매연이 심하게 나온다니까 그 동네의 대기오염은 심했음직하다.
사실 그 동네뿐 아니라 서울의 대기오염은 심각한 지경에 이른 듯하다. 나는 등산을 좋아해서 도봉산, 북한산을 자주 오르는 편인데, 산에 올라가 시내를 보면 언제나 뿌옇게 흐려 있다. 지난 연말에도 몇이 모여 북한산을 찾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보는 건 좋지 못한 취미라고 하지만, 북한산 능선에 올라서면 어쩔 수 없이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요즘 들어, 아니 벌써 몇 년 전부터라고 해야겠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이다. 뿌연 먼지안개 속에 종이로 만든 모형물처럼 가볍게 서 있는 아파트 단지를 보니 사막에서 신기루를 본다는 것이 저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함께 서울이 막막한 사막처럼 보였다.
“서울 전체가 서기에 잠겨 있군.”
나는 같이 간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그들 중 아무도 그걸 서기라고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 날은 겨울 날 답지 않게 포근하고 바람도 없어서인지 이른바 스모그 현상이 더욱 심했다.
서울의 공해문제가 이렇듯 심각하다 보니 서울을 떠나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사실은 나도 얼마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생활의 터전을 떠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봉산, 북한산을 오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인데, 이만큼 좋은 산을 끼고 있는 도시도 세상엔 흔치 않을 것 같다. 맑은 계곡물을 보면 저걸 어떻게 상수도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수돗물을 음료수로 사용하지 않게 된 게 벌써 언제부터인가.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깨끗하고 쾌적할 수도 없겠고, 어차피 떠나기도 쉽지 않은 터에 이만한 산이라도 가까이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을밖에.

구본희: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십수년간 출판사 일을 했다. 일찍이 암벽등반을 취미로 삼아 주말마다 서울 근교의 유명 암벽을 오르내리고 있으며 현재는 문예창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