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망

법사노트

2007-10-29     관리자

8시 아침조회를 마치고나면 부랴부랴 내려와 교실문을 열어젖힌다. 잘 정돈된 교실을 확인하고 교사실 자리에 앉아 오늘은 어떻게 보낼 것인지 나름대로 정리하노라면, 앞니가 빠진 우리반 홍일점 현정이가 교사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가지런히 합장하고 인사를 한다.
어린이집의 아침은 인사하랴 지난 밤의 이야기로 벌집마냥 부산스럽고도 잔잔한 웃음이 번져나간다. 그렇게 시작해 노래 몇곡 하고, 싸움짓을 몇번 치루고, 방 몇번 쓸고, 동화책 몇번 읽고 그러다 보면 하루의 나른함을 온 어깨에 짊어지고 어머님들이 한 차례 쓸고 지나간다. 그러면 무언가 아쉽고도 안타까운 하루가 저버린다. 어린이집의 상세한 일과를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정도만 말을 하더라도 무척 번잡하고 바쁜 하루임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리 룸비니 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들을 대상으로 정부지원을 약간 받고 있는 시설 탁아방이다. 처음 탁아방이라 하면 많은 분들이 아이를 돌보아 주는 곳, 내지는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를 둔 아이들의 집단수용소, 뭐 이 정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일에 종사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들이, 이곳에서는 부지기수로 이루어지고 감탄과 감동을 절절히 느낀다는 사실은 그 선입견 속에 포함하지 않은 것 같다. 이들 안에는 (우리 아이들) 사회의 법률이나 규약과 같이 성문화된 법은 아니지만 질서와 위계의 불문률과 우정과 용서와 화합이 들어있다.
또한 모든 어른들이 지니고 있는 실현의 욕구도 서로 양보하고 도와가는 진실이 들어있다. 그들의 그것은 어른들의 사회적 통념이니 체면이니 따위의 죽어버린 규칙과는 아주 다른 그들만의 삶이며 진실이다. 한 아이가 지니고 있는 무한대의 능력과 욕구, 물론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도 교사로 근무하고 계시지만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들은 새로움과 나를 깨는 작업임을 강조하신다.
처음 글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까지일까!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나름대로 하게 되었다. 그러면 일상화된 이야기보다 탁아의 바른 인식을 위해 좀더 사실적이고 진실되게 적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됐다. 단순히 아이만 잘보는 사람, 이것이 보통 우리 교사들을 칭하는 이미지인 것 같다. 그러나 그아이 하나하나의 성장과 환경, 그 환경이 이루어지게 된 또다른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진정 그 아이에게로 다가가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 원인이 결국엔 사회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여타의 악법과 굴레에서 옴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업이 많다는 여성은 직장생활로 말미암아 가중된 2중적 노동압박에 스스로 가슴만 칠 뿐 길을 못찾을 때가 무척 많고, 그러한 일을 경험할 때마다 속상하기도 하고 의문도 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요사이 많은 남성들께서는 스스로 도와가면 같은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도 꽤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적으로 팽배한 남성우월주의적 사고와 아동양육의 여성분담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문제가 어찌 단시일내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하루하루 믿음과 의심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라고는 푸념과 한탄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구구절절히 말만 많은 것 같은데 결국 하고싶은 말은 탁아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사고와 더불어 범사회적 모순을 공동의 업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일임을 강조해 본다.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와 유구히 흘러온 대한불교가 좀더 사회참여적 자세로 사회에 대한 종교인의 양심과 역할을 통감해, 좀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인류의 스승으로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진실된 마음을 이어 받아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려는 노력은 결국, 가장 소외받는 이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아픔을 쓸어 안는 그러한 보살도의 정신이 아닐까!
오늘도 고사리 손으로 합장을 하며 어머니 손을 맞잡고 문을 빠져나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용기와 지혜를 불어넣어 줄 수 있게끔 나를 이곳으로 이끄신 부처님께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이 땅의 모든 어머님과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진실된 삶을 위해 번져나가길 부처님 전에 기원드리며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