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낙조(落照)

빛의 샘/내가 머무는 곳에 행복의 등을

2007-10-28     관리자


지난 8년 전이다. 당시 L양은 내가 담임으로 있던 반의 여중 3년생이었는데, 지능이 높고 독서를 많이 했으며 글짓기를 아주 잘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생님이 은밀히 나를 불렀다. 다름이 아니라, L양은 지금 담임인 나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며, 잘 선도하지 않으면 행여 그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날 하학 무렵 L양을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얼굴은 벌써 장미꽃마냥 변해 있었고, 시종 고개숙인 그 앞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말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벌써 다 알고 있단다. 암 알고 말고,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우냐. 소중한 행복이냐! 마음에 새겨,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마주하여 있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으랴. 선생님을 좋아하는 만큼 그 만큼 너를 아낄 것이다. 지켜 볼 것이다.”
이만치 이어지는 동안 마냥 눈물 속에 얼룩진 정적, 그것뿐이었다.
다음은 그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선생님, 저는 나쁜 아이지요. 그렇지요?” 선생님을 사랑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너무나 크게 자리한 선생님이셔요. 그리고, 그리고….”
들릴 듯 다소곳이, 그러나 꼭 했어야 하고 끝내는 다 잇지 못하는 말을 들으며 약속을 했다. 그것은 나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 마지막 졸업시험을 친 후 바닷가를 간다는 것,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것이 약속으로 남으려면 지금보다 30% 이상의 성적 향상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었으니, 첫사랑(?)의 낙조(落照)는 지금쯤 L에게 어떤 무늬의 성체(聖體)를 그리며 고이 간직되어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봉우리를 키우며, 그들의 순수에서 초록빛 봄을 만나는 교단생활도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지금, 유난히 지난 날들은 내 곁에 밀물 흔들며 온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욱 많은 교단, 희망보다는 갈수록 좌절이 쌓여만 가는 교육 현실이 아프게 자리를 스민다.
어쩌자는 것인가, 이 꽃들을! 어디까지 몰고 가자는 건가. 짓밟혀 누더기뿐인 진리(?)앞에서 동심(童心)은 파랗게 멍들어 있는데, 오히려 선생님 편을 이해하려 드는 산골 아이들 앞에 서서 나는 어떻게 스승이 될까.
‘자율’이요, ‘제1, 2 보충’이며, 그래도 못다하여 ‘야간특별’이라는 해괴한 미명의 학습형태를 빌어야 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학생을 위하는 길, 스승의 길이라고 자의적인 결론을 내려 자정이 가깝도록 붙잡아야 훌륭한 학생, 참 교육자였던가. 끝도 없는 석차 매김으로 우열을 가려야 하는 것은 또 어떤 변명으로 합리화하고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쪽에 가까울 학급여행 ­ 이번 여름방학 중 동해 바닷가 1박 2일의 우리 반 여행을 제의했을 때 학생들(중학교 1학년 남녀 혼반)은 일제히 함성이었다. 쏟아져 나온 박수며 휘파람 소리, V자를 그리며 마주 잡은 고사리 손에 벌써 짙푸른 동해 바닷물을 적신다. 아득히 물새 우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이 순간 아이들의 하늘에는 보랏빛 꿈을 손에 잡고 있었으리라.
숨막힌 교단에서, 그러나 언젠가는 비둘기떼 나닐 허상(虛像)만으로, 한때 소중한 사랑을 가슴에 담아 예쁘게 숙녀로 자랐을 L양을 상상하며 아, 내가 머무는 곳에 행복의 등을 달련다. 佛光

권혁모: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하였으며 ’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시조동인오늘 회원, 한국문협 안동지부 부지부장이며 길안중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