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와 자비심없이 통일은 어렵다

권두수상

2007-10-28     관리자


며칠전 모 방송사에서 북한의 유엔 가입결정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 흥미있는 부분이 여러 곳 발견되어 그 부분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북한의 유엔 가입이 통일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 데 대해 ‘통일에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의견이 50.1%나 된 부분이다.
우리들이 지금 추구하는 통일 방법이 유엔을 통한 것이라면 물론 북한의 유엔 가입이 통일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밖의 다른 방법이라면 결코 큰 도움을 줄 것이 없다. 독일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동독과 서독은 유엔에 가입되어 있었어도 그것으로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독일이 통일된 것은 2+4회담이 잘 말해 주고 있듯이 동․서독 당사국과 주변국들의 노력과 합의가 주효했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우리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막연하고 큰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남북한의 유엔가입이후, 남북한간에 가장 먼저 나타날 변화’에 대해서는 ‘경제교류 활성화’가 25.0%, 그리고 ‘문화교류 확대’가 17.5%로 ‘교류’에 관심을 보인 부분이 42.5%나 되었다.
이에 비해 ‘남북한의 유엔가입 이후,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것에 대한 견해’에서는 ‘상호교류 및 협력’이 겨우 2.2%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남북한의 유엔가입 이후, 남북한간에 가장 먼저 나타날 변화에서 교류와 개인적 기대에서의 교류사이에는 42.5%와 2.2%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 기대를 묻는데 대해 ‘기대하는 바 없다’가 24.1%나 되는 것으로 보아 ‘남북관계의 변화’와 ‘개인적 기대’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통일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갖고 있고, 또 ‘왜 기대’를 하고 있는지 한번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여기서도 재미있는 것은 ‘개인적 기대’ 가운데 ‘통일 조기실현’이 35.6%나 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가 정말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 다음은 ‘현재 정부는 통일을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단히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라는 대답이 30.2%, 그리고 ‘비교적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가 39.5%로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라는 답이 무려 69.7%나 되었다.
이에 반하여 ‘북한은 통일을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별로 노력하고 있지 않다’가 48.5%,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다’가 18.3%로 북한은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부분이 66.7%나 되었다.
이것으로만 본다면 통일문제에 관한 우리 정부의 대 국민 홍보는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대국민홍보에 열중했는지, 아니면 정말 북한과의 통일노력에 치중했었는지를 한번 스스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6․25와 같은 무력충돌 재발 가능성’에 대한 의견가운데 특이한 부분은 ‘매우 가능성이 높다’는 대답은 겨우 2.1%이고 ‘다소 가능성이 있다’는 대답도 9.8%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대답은 무려 61.8%나 되는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우리 국민들이 탈냉전의 국제환경을 매우 잘 인지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설문지를 북한국민들에게 돌려 조사를 했더라도 ‘무력 충돌 재발가능성은 없다’는 대답이 61.8%나 될런지는 모를 일이다. ‘무력충돌’이나 ‘긴장완화’ ‘교류’와 같은 것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조사에서 나온 결과만을 가지고 안심할 수는 없고 북한국민들도 우리국민들과 같이 탈냉전의 국제환경을 인식하고 그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만이 한반도에서도 진정 무력충돌 재발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다음은 ‘남한의 쌀이 북한에 수출될 경우, 적정가격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무상으로 한다’는, 겨우 6.2%에 불과하고 ‘국제시세보다 다소 싸게 한다’는 44.6%, 그리고 ‘국제시세대로 한다’는 38.2%로 국제시세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답이 82.8%나 되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들 보다 못산다’ 또는 ‘우리가 맏형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북한을 당연히 도와야 하는 것처럼 되뇌어 왔다. 그러나 막상 조사결과를 보니 북한을 돕기는 커녕 거의 대등한 수준의 수출․수입 파트너로 생각하고 쌀수출 정도에서도 인색성을 드러내었다.
물론 지나치게 북한을 돕는다면 남북한의 교역이 국제간의 교역관례에 어긋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서독이 동독과의 교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동독에게 상당한 특혜를 주었던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그것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예를 들어 서독이 EC국가들의 양해를 얻어 동독과의 교역을 외국과의 교역으로 하지않고 내독교역(內獨交易)으로 하여 서독기업이 동독상품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국가간의 교역에서 반드시 부과하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오히려 부과가치세를 경감해 주면 대금결제도 환거래없이 쌍방간 정산계정을 통해 채권이나 채무를 상계해 주는 방법을 택했었다.
문제는 남북한 관계에는 상호성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크게 돕고 사랑하며 베푼다는 보시와 자비정신이 더 필요하다.
즉 남북한간의 어느 한쪽 경제수준이 기울어져 있을 때 경쟁을 하게되면 그 차이가 더욱 기울어져 통일이 어렵게 되지만, 보시와 자비심으로 어려운 곳을 도와서 거의 같은 수준이 된다면 개방도 쉽고 동질성도 생겨 오히려 통일은 쉬워질 수 있고 또 통일후의 부작용도 덜 나타나며 통일비용도 적게 든다.
독일통일이 경제적 격차가 심한 서독과 동독과의 통일이었기 때문에 통일후 동독으로 인하여 엄청난 부작용이 제기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보시와 자비심으로 북한을 도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이유는 명백해 진다.
이상의 의식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우리국민들은 통일에 대한 기대는 크면서도 개인주의적 성향도 매우 강하게 보여, 통일과정에서는 개인의 이익추구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는 북한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몇몇 매스컴의 보도내용 수준을 넘지 못하는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매스컴이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서는 우리들의 의식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고 또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조사의 끝부분에 ‘언제쯤 남한의 일반국민이 금강산에 가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5년 이상 10년 이내’가 32.8%이고, ‘10년 이상’이 31.2%였다.
하루 빨리 우리 불자들도 금강산의 유점사에 들러 불공을 드릴 수 있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을 위해 보시하는 마음과 자비심을 키워야겠다.

정용길: 1944년 경기도 광주 출생. 동국대 법정대를 나와 서독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정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분단국 통일론」「통일환경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