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셨기에 귀한 칭찬

□테마에세이/칭찬하며 사는 세상

2007-10-28     관리자

한 장의 사진을 본다.
곱슬머리를 곱게 빗어 뒤로 넘기고 좋아하시는 하늘빛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셨다.
옆에서 모두 ‘웃으세요’ ‘김치’했을 법도 한데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앉으신 모습.
지금은 도라가신 시어머님의 몇장 안되는 사진중의 하나이다.
그 날(사진을 찍던 날은 어머님 회갑)만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표시를 하셨더라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생신 때 모두 모인 식구들이 어떻게 복잡한 차를 타고 집으로 갈 것인가를 어머님은 내내 걱정이셨던 것 같다.
돌아가신 지금에야 그 분의 감춰진 감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참 어렵고 차가운 분이라는 인상을 외모에서부터 느끼게 했다.
우리들의 한 시대 전(前)은 모두 농군이었듯이 어머님도 시골에서 태어나셨고 그 군(郡)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이 농군의 아내가 되셨다.
버거운 농사와 대식구,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시는 동안 어머님은 그렇게 감정표현이 힘든 분으로 변하신 것일까?
노인들 특유의 변덕스러움도 어머님에게는 볼 수가 없었다.
손자를 보셨다는 전갈을 받고 쪽진 머리로 서울 오신 어머님은 손자를 보듬고 기도문 처럼,
“강아지 같이 실하게 자라거라이”하시었다.
그 때 철없는 어린 산모는 ‘강아지? 어머님은 손자도 귀하게 여기실 줄 모르나봐’ 하는 마음을 삭이고 있었었다.
서울서 함께 사시자는 간곡한 청에도 ‘내가 편한 곳에 있는 것이 효도’라고 말씀하실 때는 맏며느리 노릇이 부실한 자격지심 이었는지 짧게 오해가 일곤 했었다.
그러나 아끼셨기에 귀한 어머님의 칭찬을 나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아들의 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느끼신 어머님은 예고도 없이 서울에 오셨다.
“어느 구름이 비 될지 누가 아나? 성급하게 굴지 말거라”하시며 남편과 내 손을 잡아주셨을 때, 나는 어머님의 말씀이 너무나 따뜻해서 울음이 터졌었다.
고개 숙인 나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 에미가 있는데, 착한 네가 고생하겠나” 하셨을 때는 마르고 고집쟁이(죄송)신 어머님이 존경스러웠다.
어머님이 둘째 며느리를 보시게 되어 포목시장으로 모시고 나갔을 때 일이다. 신부의 몫으로 혼수를 준비한 다음 “네 것도 하나 사주마. 제일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라”하셨다.
“우리 완이(손자이름)에미는 무얼 입어도 좋지. 우리 고을에 제일인데”하시며 나를 쳐다 보셨다.
이 놀라운 칭찬, 엄청난 부끄러움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종교에 귀의하시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다.
종교서적을 읽어보신 적은 없지만 종교를 믿는 것은 착한 사람이 잘 된다는 것을 믿는 것도 된다시는 어머님의 좋은 믿음 앞에서는 목이 메었다.
이제야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님은 아주 즐거우신 날도 그렇지 못한 날을 위하여 조금씩 기쁨을 덜어 내어 모으셨고, 마음이 상한 날에도 비축해둔 기쁨을 꺼내어 나쁜 날을 어렵지 않게 헤쳐 나갈 수 있으셨던 것을. 그래서 언뜻 연약해 보이시는 몸으로도 여장부답게 일을 처리하셨다는 것을.
기분 따라 쏠리거나 변하지 않으셨던 어머님의 귀한 칭찬을 기억하는 날이면 나는 늘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리움으로 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