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는데 …

권두수상

2007-10-28     관리자

다사다난했던 무진년도 어느덧 한 달 전으로 사라지고 입춘과 우수가 들어있는 2월에 들어섰다.
더구나 2중과세를 말자는 소리와는 달리 구정의 인습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 세시도(歲時圖)로서는 2월의 의미는 자못 큰 것이다.
아직 날씨는 차지만 햇살이 훨씬 도타와 졌고, 낮의 길이도 감지할만치 길어져서 싫건 좋건 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실감케 한다.
이 희망찬 새해. 새 계절을 맞아 사회는 나름대로 자기의 목청을 돋구어가며 앞날을 점치고, 또 희망도 걸어보고 있다.
분명 무엇인가 운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대화문제가 그렇고, 국민화합문제가 그렇고, 경제발전의 가능성 등 갖가지 고무적인 예견들이 속출하고 있어 자못 듣기에 흐뭇한 일이다.
사실, 나도 내 나름대로 연운(年運)을 풀어보건대. 무진(戊辰) ․ 기사년(己巳年)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 이유로서 무(戊)와 기(己)는 방위로 보아 중앙이요, 육친(六親)으로 보아 자기(自己)인데 12지에 용과 뱀이 들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작년은 우리가 용처럼 크게 꿈틀한 해이고, 금년은 그 큰 선이 그어진 위에 잔손질을 하므로서 뱀처럼 자질구레한 일들을 휘갑해서 왕운(旺運)으로 이끄는 운세라고 점괘를 내보는 것이다.
그런데 신구정에 찾아온 사람, 또는 길거리에서 오다가 만난 사람, 한결같이 “종단은 왜 그모양이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는 딱 질색이다.
묻는 이의 뜻은 “세상은 모두 잘 해보자고 아우성 인데 종단은 왜 쌈질만 해서 일선의 불자들을 창피하게 만드느냐”는 뜻이었는데, 그럴 때 적절한 대답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일제치하에서의 일이라면 일제의 교단불열정책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자유당 때의 경우라면 간접적인 불교탄압이라고도 하겠는데, 이제 와서는 누구의 탓으로도 돌릴 수 없이 종단의 거물들이 청정도를 놓고 일종의 모략전 같은 양상으로 종권다툼을 하니, 그야말로 고래싸움이 새우 사정은 몰라주는 격이니 하는 말이다.
어쨌든 그로 인해 우리 교단의 위신이 말씀 아니게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변명해도 잘하는 일이라고는 표현한 도리가 없는데, 보다 못한 그들은 애꿎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 안타까운 자기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위안시키는 의도인 것 같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남에게 전해야 할 책무를 띤 우리가 이 절망 앞에 좌절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겹겹이 얼었던 대동강물도 봄이 오면 녹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화합과 양보정신에 의해 보여주어야 한다.
그간 꽁꽁 얼어붙은 듯 경색되어 있는 광주문제니, 지역감정이니 하는 사회의 벽들을 화합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선례를 우리는 보여 주어야 한다.
당나라 때, 중국 수주(隨州)라는 곳에 호국원(護國院)이란 선원이 있었고, 그 조실에 정과수증(淨果守證)이라는 놀라운 선사가 있었다.
어느 날, 어떤 납승(衲僧)이 와서 뜬금없이 질문 세 마디를 연거푸 던졌다.
“학이 노송나무 꼭대기에 앉은 모습이 어떠합니까?”
“땅에서 보면 허무하니라.”
“방울물 까지도 꽁꽁 얼어붙을 때가 어떠합니까?”
“해가 돋은 뒤에 보면 허무하니라.”
“회창사태(會昌沙汰)때 호법선신은 어디로 갔었습니까?”
“천왕문 밖의 두 분 금강신이 보기에는 허무하니라.”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이것을 이른바 호국의 삼마(護國三麽)라 하여 자주 거론되는 설화인데 주로 극한적인 상황을 설정해 놓고 그의 해결을 묻고 답한 것이 특색인 것이다.
노송나무 꼭대기 자체가 매우 높고 고상한 것인데 그 위에 학 한 마리가 한 발을 들고 사쁜 앉았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고상 하겠는가 라는 질문이었는데 높은 자는 자기도취에 빠져 기쁠는지 모르나 땅 위에 있는 이가 보기에는 퍽 위태로워 보이니 취할 바 아니라는 것이다.
또 방울물 하나 남기지 않고 꽁꽁 얼어붙는 추위를 당했을 때, 그것으로 끝장이 날 것 같은데 어떨까요? 하고 물었는데 해가 뜬 뒤에 보면 한바탕의 허무한 웃음거리니라 하여 좌절하지 않고 봄을 기다리라는 암시를 준 것이다.
또 그 무서운 회창사타 때 무종(武宗)이 도교에 빠져서 그의 즉위 3년을 기해 불교의 도태를 시작했고 그 5년에는 강제로 환속당한 승니가 26만명이나 되는데, 그때 그 의리의리한 호법선신들은 어디를 갔었기에 막지 못했는가?
그래서 그가 신선되는 약을 잘못 먹고 6년 3월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죽고, 그 뒤를 이은 선종(宣宗)이 세 곱으로 불법을 일으켰으니, 이래가지고야 호법선신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문밖에 두분 금강신이 보기에는 허무한 장난거리라고 대답한 것이다. 물론 절이 파괴되었으니 금강신의 모습도 그림도 망가졌으련만 그 금강신은 없어지지 않고, 끝내 자기의 책무를 다해, 결국 불법을 세 곱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분나인(本分那人)의 경지를 거양한 설화이지만 신훈(新薰)을 떠나 본분이 따로 있을 수 없겠기에 감히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아쉬움을 무릅쓰고 여기에 소개하는 바이다.
본분사(本分事)를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우리의 상례이다. 설사 자기의 주장이 지극히 타당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쪽이 납득할 수 있도록 방편을 베풀어야 할 것까지가 입종자(立宗者)의 도리인 것이다.
이것이 화합이요, 양보인 것이다. 다가오는 봄에도 예외 없이 강산엔 꽃이 피리라. 그 꽃 피어나는 금수강산 한 구역에 아직도 겨울눈이 덮혀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법칙에도 어긋나고, 많은 상춘객에게 실망을 주게 된다.
돌아오는 기사의 새봄이여! 부디 골고루 퍼져서 지난해에 대충 그려진 커다란 소묘(素描)위에 섬세한 색깔을 채우게 되어지라.
그리고 온갖 답지 못한 일들이 길상으로 바뀌어 지는 기적(奇績)의 해가 되어지라.
이것이 봄을 맞는 모든 불자들의 순박한 소망임을 알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