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 할머니

2007-10-27     관리자


 벌써 이십여년 전이다.
나는 교직(敎職)에 있는 몸으로 여름방학 때마다 책을 한 보따리 싸들고 거의 의무적으로 이름도 없는 암자(庵子)를 찾았다.

 그 암자는 경주와 감포(甘浦) 사이에 자리잡은 기림사(祈林寺) 주변에 있었는데 그곳을 찾아가려면 그야말로 양의 창자 모양의 고불고불하고 험준한 고갯길을 고물버스로 몇바취 돌다가 중간에 내려서 한 시간 반가량 걸어야 했다. 

  왜 그런 곳을 거의 의무적으로 찾아가야만 했을까.

 학생 시절, 경주에 들렀을 때 나는 이상한 모험심을 느꼈다. 흔히 알려져 있는 명승고적지를 구경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미처 발견되지 못했거나, 미처 발을 들여놓지 못한 곳을 찾아내어 세상에 공개해보고 싶은 일종의 객기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고적지를 찾아내는 데는 실패하고, 그대신 산 속에 갇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암자를 발견하였다. 그 암자엔 팔십 고개를 바라보는 보살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암자에 들어선 나를 보자 그 할머니는 합장을 했다. 그러면서 만면에 희색을 띠고 어서 들어오라고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산 속의 암자에서 보는 꾀죄죄한 냄새가 나는 그런 방이 아니고 깨끗하게 도배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 방이 참 아담하고 깨끗합니다.』

『하모, 하모, 얼마 전에 도배를 새로 안했능교. 』하면서 할머니는 며칠 전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손수 방을 치우고 도배를 했다고 하였다.

 『저는 할머니가 꿈에 보신 그런 귀한 사람이 아니라 산속을 헤매다가 길을 잃은 학생인 걸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능교. 이 산중에 어찌 찾아왔든 찾아온 사람은 다 귀한 손님인기라.』

 며칠 묵는 동안 할머니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예불(禮佛)을 올리곤 산에서 온갖 산나물을 뜯어다가 나물을 무쳐 꽁보리밥이지만 정성스레 나를 대접했다.

 그리고 내 혈색(血色)이 안좋아 보인다고 하며 이름 모를 약초를 캐다가 다려 먹였다.

 나는 열흘쯤 묵다가 떠나면서 여비중에서 남은 돈을 할머니께 드렸더니 끝까지 고사했다.

『돈이락카는 것은 이 산중에서도 필요하긴 하지.

 하지만서두 내 반가봐서 하는 일을 돈으로 갚으면 되나, 내년에 또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앙이가.』

 (정참범 - 문학평론가. 건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