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불교의 현실

2007-10-26     관리자


(1)
공산국가의 종주국인 소련에도 불교도가 활동하고 있을까? 『칼 막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종교는 아편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불교도대회』, 『아시아불교평화회의』등 각종 국제불교세미나․회의 등에 소련은 꾸준히 대표단을 파견하고 있다. 대회의 대표단은 지난 20년간 거의 같은 승려와 신도대표를 참석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극히 국가통제 속의 신앙활동과 정책의 하나로 불교가 정치의 도구화 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일이다. 금년 6월 소련 불교회에서는 인도에 망명한 티벳의 불교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소련에 급히 초청하였다. 또 9월초 미국 프린스톤에서 개최한 『제3차 세계종교지도자평화회의』에 중공불교회 회장인 『조박초』(趙樸初)외 10여명의 불교대표단이 참석한 바, 소련의 『달라이 라마』초청은 중공불교계의 종교국제활동을 예상한 정책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소련․중공의 불교계에 종교외교정책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중공불교 대표단의 미국 종교회의 참석은 미국에 있는 다수의 중국인들에게 정신적인 차원에서 환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부차적인 목적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서 소련의 불교회는 중공의 티벳 강제 점유로부터 망명해 온 『달라이라마』를 초빙하여 소련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미소종교정책으로 환심을 사는 한편 중공의 종교외교 정책에 쐐기를 박을려는 계획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달라이 라마』의 소련방문 후 중공의 대표단이 미국에 입국하자 뒤이어 9월12일부터 49일간 비정치적 목적으로 미국포교의 길에 오르게 하였다. 또 중공당국도 『달라이 라마』의 중공 초청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경제나 무기문명이 발달될수록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정신적 단합이 요구된다. 같은 종교로서 굳혀진―신앙심에 의하여―결속된 형체는 어떠한 힘보다 강하다. 세계가 다원화 되면서 교통수단이 발달되고 고도화된 무기문명보다 더욱 무서운 무기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과 중공은 여기에 눈을 돌리고 있다. 중공보다 훨씬 앞선 소련의 불교외교 정책은 1960년 초반부터 20여년간 상당한 자료수집과 계획하에 진행되어 왔다.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이 불교 국가라는 점과 지정학적으로 소련에 가장 중요한 티벳을 중공이 먼저 강점하자 더욱 불교외교에 박차를 가하였다. 『달라이 라마』의 소련 초청도 중공에 대한 티벳인들에(인도 10만, 미국 500명, 영국 100명)반감을 불러이르키는데 목적이 있었고 그가 소련방문 기간중 인도의 전 티벳인들이 4일간 반중공데모를 행하였다.
이와 같이 소련의 불교 정책은 국가 책략의 수단으로 운용되고 있으나, 전문가도 알 수 없는 교묘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1970년 초반기에는 몽고 『우란바톨』에서 동남아시아 불교국가 대표(한국․대만은 제외)들을 모아 『아시아불교평화회의』를 창립하였다. 소련․몽고․월맹 등의 공산국가들이 주축이 된 이 회의는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를 미국의 식민지 정책의 위협으로 부터 불교인들이 단합해서 대항해야 한다고 하며, 불교의 탈을 쓰고 몽고을 대신 내세우고, 월맹에 무기공급을 하면서 한편으로 정신적인 책동을 위하여 불교기구를 만들어 선전을 한 것이다. 1970년까지 비교적 은둔적인 소련불교정책은 인도차이나 전쟁에 미국이 손을 뗀 후 더욱 노골화 되었다. 『제3차 아시아 불교평화회의』의 의제에―베트남 인민공화국 승리에 따른 아시아 불교도들― 등의 의제를 택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책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공산권의 불교단체는 명칭 뿐이고 국가기관에서 침략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즉 민주주의 국가와 같이 종교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국가목적의 통제 속에 형식적으로 신앙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
소련의 불교는 티벳으로부터 몽고를 거쳐 18세기 초반기에 전래 되었다. 최초에는 『불얏트』,『칼믹크스』,『튜바스』에 전파 되었다.
이 자치구는 티벳․몽고․중국 등과 인접되었고 많은 동양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서몽고의 『오이라트』(OIRATS)족이 1628-1630년경 볼가강 근처에 이주할 때 소련에 불교가 전파되었다. 그러나 사원이 없는 유목민의 불교인 것이다.
이 무렵 동 시베리아 『바이칼호』근처에 『불얏트』유민들도(1712년경) 불교를 신봉하였으며, 150명의 티벳 승려들이 이 지방에 와서 소련초기의 불교 포교가 시작되었다.
1741년 『불얏트』지방에 최초로 불교 사원 『통골 다잔』(TSONGOL DAZAN)이 세랭긴에 세워졌다. 사원의 형태는 몽고나 티벳식과 같고 승려의 가사도 비슷하다.
소련의 불교 최고 승려를 『빈디도 캄보 라마』라고 칭하며, 현재는 『곰보얖』(ZHAMBAL DORZHI GOMBOYEV)스님이며 우란우테에서 40키로 떨어진 『이볼가』(IVOLGA)사원에 주석하고 있다.
이 사원은 중앙에 두 개의 불당과 35개의 승려숙소․강당․도서관․2층 신도호텔등 건물이 있으며 불교행사는 음력을 사용한다. 현재는 5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승려들이 소련을 방문하면 이 사원을 꼭 참배하여 종무행정의 본사라고 할 수 있다.
소련에서 역경도량으로 유명한 『아깅크스 다잔』(AGINSK DAZAN)은 치타에 위치하고 있는데 1810년 불욧트지구 『8부족』들이 돈을 모아 소련 건축가들에 의하여 건축되었다. 나무들을 짤라 페인트를 칠하고 그 나무판 위에 티벳․몽고 불교사전을 만들어 인쇄하였고, 불교철학․문학 등을 티벳어로 번역하여 보관하고 있다. 『아깅크스』사원은 2층 건물로(티벳식) 아래층은 불교의식을 할 수 있는 법당, 2층은 경전․불교관계 서적 혹은 외국에서 기증받은 불서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이 있다.
현재 『소련의 불교회』(Religious Board of the Buddhist of USSR)가 대표하고 있다. 이 회는 1924년에 창립되었고 종단내외 국제활동을 주관하고 있다. 이 회는 『우란 우데』(ULAN UDE)에 있는 『이볼 깅스크 다트산』이 본부사원으로 1950년 『세계 불교도 우의회』에 가입되었고 부총재에 『디리코프』교수가 선임되었다. 회장겸 의장은 『곰보얖』최고승이며 부회장은 『앨디네브 디드 캄보 라마』, 사무총장은 『상가쟈 포브가』가 맡아서 소련불교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3)
소련 불교회는 1950년 제1차 세계불교대회에 지부로 인정되었으나, 1956년 11월 『제4차 세계불교대회』〔네팔 카투만두〕부터 참석하였다. 그 후 계속 대표단을 파견하여 국제교류의 폭을 넓혔으며, 1964년 (일본 동경 교도)과 1972년(벨기에) 1979년(미국) 『제3차 세계 종교평화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또한 주목할만한 사실은 『아시아 불교도 평화회의』(Asian Buddhist Peace Conference)의 주관이다. 1970년 몽고에서 창립된 이 회는 동남아 불교권 국가에 대한 소련의 계획적인 종교를 통한 책략 수단이다. 베트남의 승려들과 신도들을 충동시키고 반정부투쟁을 지원하였고 버마불교계․라오스 불교계를 지원하여 소련 주도형 식민국가를 건설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1972년 콜롬보, 1974년 뉴델리, 1976년 동경에서 개최하였고 북괴대표도 초청하고 있다. 또한 소련은 동남아시아 혹은 국제불교기구 임원을 초청하여 적극적인 관계를 지속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련의 불교계 고승․지도자 초청, 국제회의 참석, 사절단 파견 등의 방법으로 1960년 대부터 시작한 불교외교정책은 1970년대부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를 위한 순수한 목적보다 오히려 약소국가를 침략하는 수단으로 불교를 도구화시키며 국제활동을 하고 있는 점을 우리는 감안하여 종단과 국가에서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연구와 대응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