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일본불교의 특징

특집Ⅱ: 일본불교의 어제와 오늘

2007-10-26     관리자

일본불교의 특징을 말하자면 여러 측면에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중국불교의 관심이 이론적인 발전에 있었다면 일본불교는 실천적이고 보급(普及)의 면에 관심이 컸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 보급은 많은 종파를 형성하여 종파불교(宗派佛敎)를 지향(指向)해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오늘날의 현황에서 보면 장식불교(葬式佛敎)․관광불교(觀光佛敎)․단가불교(檀家佛敎)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고(本稿)에서는 이상과 같은 개개(個個)의 특징을 나열하여 살펴보기 보다는 일본불교사에 있어 일관되어 진 교학적 특징이 무엇이었던가를 살핌에 의하여 일본불교의 본질에 접근해 보고져 한다.
일본불교는 백제(百濟) 성왕(聖王)이 불상 불경 등을 전함에 의하여 비롯 된다고 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후 비조 나라(奈良) 평안 가마꾸라 등의 각 시대에 걸쳐 일본불교의 전개가 있게되고 최초에는 황실이나 귀족사이에 유행하던 불교가 차차 무사 계급 그리고 민중 사이로 전파 됨에 따라 차츰 그 특징을 형성해 나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비조(飛鳥)시대에는 성덕태자에 의하여 일본불교의 바탕이 마련되고 나라(奈良)시대에는 동대사(東大寺)의 화엄종(華嚴宗)이 흥기(興起)하고 평안(平安)시대에는 비예산(比叡山)의 천태종(天台宗)과 고야산(高野山)의 진언종(眞言宗)이 성립되었으며 가마꾸라(鎌倉)시대를 전후(前後)하여서는 법연(法然)․친란(親鸞)․영서(榮西)․도원(道元)․일연(日蓮)을 비롯하여 양인(良忍)․일편(一遍)․예존(叡尊)․변단(辨丹)․소명(紹明)․진문(晋門)․소석(疎石)․혜현(慧玄) 등의 배출에 의하여 각각 정토종․정토진종․임제동․조동종․일연종․융통염불종․시종(時宗)․진언율종(眞言律宗)등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그들 제종(諸宗)의 발전․분열․쇠망․유지의 시대가 계속되고 오늘날에는 또한 신흥 제종교의 난립시대를 맞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불교는 종파불교가 그 특징으로서 그 종파적 특징이 일본불교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종합적인 특징을 살피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일본불교는 이와 같은 각 종파에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특질로서 일승불교(一乘佛敎)의 입장,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원융(圓融), 진속일관(眞俗一貫)의 보살도(菩薩道), 속치성불(速疾成佛)의 목표, 국가진호(國家鎭護)의 달성 등을 들 수 있게 된다.

우선 여기서는 교학적 입장에서의 일승불교(一乘佛敎)로서의 특징을 살펴 보기로 한다.

일승불교란 소대승(小大乘)을 초월한 일승대승사상(一乘大乘思想)을 말하고 반야경․화엄경․법화경(法華經)․무량수경(無量壽經)․승만경(勝鬘經)․열반경(涅槃經) 등의 경전에 설해진 사상이 그것이다.

성덕태자는 승만경 유마경(維摩經) 법화경(法華經)의 3경(三經)을 섭수(攝受)하여 일승사상을 고양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성덕태자의 교학은 논서(論書)보다는 경전에 근거를 두어 소승이나 삼승사상(三乘思想)을 설한 것을 택하지 않고 일승대승(一乘大乘)을 설한 경전이 선택되게 되었다. 그중 특히 법화의소(法華義疏) 중에는『일대승(一大乘)』이란 용어에 의하여 표현되어진 불교가 주장되어지고 일본불교는 이와 같은 성덕태자의 일대승의 교학을 기조(基調)로 하여 그 이후의 순화발전을 가져 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덕태자의 정치이념의 실현이 대화(大化)의 개신(改新)이며 그 실현에는 태자에 의하여 파견되어진 유학생이나 유학승의 지식이 크게 이바지 하게 되어진다. 성덕태자 이후의 유학승들은 주로 삼론종 법상종 등의 학문불교를 전수하여 돌아와 이를 나라(奈良)의 제대사(諸大寺)에 강설(講說)하게 되어졌으나 성무천황시(聖武天皇時)에 건립되어진 동대사에서는 화엄경이나 법망경 등에 설해진 대연화장세계의 교주인 대비로자나불(大毘盧遮那佛)을 본존(本尊)으로 하게 되어 그 이후 화엄일승의 교학이 이곳을 근본도량으로 하여 선양(宣揚)되어졌다. 화엄일승의 교학은 중국에서 성당(盛唐)에 신전되어진 법상종(法相宗)의 삼승 차별사상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일어난 일승불교(一乘佛敎)로서 일본에서는 나라(奈良)시대에 성행한 법상종(法相宗)에 대신 할 수 있는 교학으로서는 가장 적당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되어온 정교일치(政敎一致)에 유래된 승계(僧界)의 폐습은 국도(國都)를 평안(平安)의 새로운 도읍지에 옮긴 이후 개신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즉 정치적 중심지가 새로운 시대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민심지도의 교학으로서는 불교가 채택 되어질 수 밖에 없었으나 다만 지금까지의 법상종 삼승오성(三乘五姓)의 차별사상을 멀리하게 되고 새로운 천태(天台)와 진언(眞言)의 일승평등(一乘平等)의 교학이 흥기하게 되어진 것이다. 이같은 천태 진언의 이종(二宗)은 결국 나라(奈良)시대의 화엄일승(華嚴一乘)의 교학을 직접 인(因)으로 하고 멀리는 성덕태자의 일승(一乘)의 이상을 간접의 연(緣)으로 하여 발생한 평안(平安)시대의 불교인 것이다.

비예산을 근거지로한 천태종의 최징(最澄)은 그의 저(著) 수호국가장(守護國家章)중에 소승을 보행(步行)의 우회(迂會)의 길이라 하고 대승을 보행(步行)의 역겁도(歷劫道)라 하여 권승(權乘)으로 보고 비행(飛行)의 무애도(無礙道)인 진실일승(眞實一乘)을 고조(高調)하게 되어진다. 그 이유로서는 두 보행(步行)의 길은 교(敎)는 있으나 이를 닦는 사람이 없다는데 있으며 일본국토와 지금의 시기(時機)에 상응(相應)한 교법으로서는 다만 법화일승 뿐임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고야산을 밀교의 도량으로 한 진언종의 공해(空海)도 청년시대에 나라(奈良)에서는 화엄일승 교학을 배우고 이후 입당(入唐)하여서는 혜과아사리(惠果阿闍梨)로 부터 진언의 밀법(密法)을 전수받고 돌아온다. 그리하여 그는 대일경(大日經)이나 금강정경(金剛頂經)과 같은 밀교부에 속하는 신역경전을 정의(正依)로 하여 만년의 저작(著作)인 십주심론(十住心論) 변현밀이교론(辨顯密二敎論)등으로 진언종의 교학을 조직하였으나 그 사상의 기반이 되어진 것은 나라(奈良)의 화엄일승(華嚴一乘)교학이었던 것이다. 그의 불이마하연(不二摩河衍)은 대일법신(大日法身)의 입장에서 지지평등일미(智智平等一味)의 절대경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으나 이는 그대로가 성덕태자의 일대승(一大乘)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법화경의 입장과 진언밀교의 입장에서의 표현의 상위(相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천태와 진언의 양일승 교학이 평안시대를 풍미하여 만민일승(萬民一乘)의 정신을 널리 펴 나가게 되어진다. 그러나 平安 四○○년의 시대적 흐름속에는 초기의 신선미가 차차 희박해져 말기에 이르러면 아미타의 타력을 믿는 법연(法然)의 염불일승(念佛一乘)이 선악 일체의 기근(機根)을 대상으로 하여 제시되어 지게되고 그에 이어 친란(親鸞)의 서원일승(誓願一乘)․도원(道元)의 불심일승(佛心一乘)․일련(日蓮)의 본문일승(本門一乘) 등이 나타나게 되어졌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천태종의 법화일승을 모태(母胎)로 하여 발생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입장이나 사상표현의 형식은 각기 달랐다 하더라도 하나같이 일승경전으로서 근거를 삼고 일승정신에 의한 모든 중생의 평등성불을 주장한 것은 다를바 없었다.

나라(奈良)시대에는 삼론종이나 법상종이 성행한 적이 있으나 가마꾸라(鎌倉)시대 이후에는 쇠망하여 법상종 같은 것은 지금에 와서는 학문종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구사종(俱舍宗)이나 성실종(成實宗)같은 소승종은 독립적인 일종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이상을 다시 요약하여 보면 일본불교는 성덕태자의 일대승불교를 원류로 하여 이 일대승의 기반에 서서 차차 독자적인 일승불교를 주장하게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성무천황에 의한 화엄일승교. 전교대사(傳敎大師)에 의한 원교일승교(圓敎一乘敎)․홍법대사(弘法大師)에 의한 금가일승교․법연에 의한 염불일승교․친란에 의한 서원일승교․도원에 의한 불심일승교․일련(日蓮)에 의한 법화일승교가 그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일체중생 개공성불의 이념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