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과 기업

●현대산업사회와 불교

2007-10-26     관리자


⑴ 화합에 필요한 관용
어떤 집단이 화합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그 구성원들끼리 진실한 말만을 하고 지내야 함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난 그 진실한 내용의 말이라 하더라고 말하는 방법여하에 따라서는 화합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러므로 『애어(愛語)』즉 자애로운 말이 화합에 절대적 요건이 된다. 자애롭고 부드러운 말은 듣는 이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고 반대로 격한 어조의 말은 내심에 반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본래 논리적인 존재인 듯 보이지만 실에 있어서는 지극히 감정적이다. 그러므로 논리적 정당성만 있으면 어떠한 방법으로 말을 해도 괜찮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말로 말미암아 화합이 깨어지는 다른 한 가지는 남의 의견을 무시해 버렸을 경우에 생긴다.
세상 사람이란 제각기 얼굴모양이 다르듯이 그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그 생각이 다른 까닭에 의견이 다른 것이다. 물론 누구나 자기 의견이야 말로 꼭 옳은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남의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관용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특히 기업에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은 윗사람의 명령을 아랫사람이 복종하는 〔上命下服〕관계 속에서 운영된다.
그러나 그 복종자가 마음 속으로 부터 그 명령에 대하여 승복하고 있는가 없는가가 그 실천 사항의 실패를 좌우한다. 그러므로 납득시키는 과정에서 혹 상급자와 다른 의견의 제안이 있을 경우라도 그것을 따뜻하게 들어 주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만약 자기의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하급자에게 욱박지르는 태도로 나아가면 그 하급자는 다시는 자기의 의견을 진술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상급자의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붙게 되어 자기의 독자적 의견을 내세울 능력이 마비되게 된다. 또 사람이 자기의 생각을 마음놓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될 때 그 사람은 자신을 잃는다. 회사내부에서 조차도 자기의 의견이 무시되고 또 의견이 제시될 때마다 인격적인 모독을 받고 지내는 사람은 자기 내부에서 열등의식이 자라서 정말 자기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업무능률이 오르지 못할뿐 만 아니라 남에 대하여 자기 회사의 입장을 밝힐 수 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⑵ 기업내의 언론의 자유
그러므로 윗사람의 아량으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기업의 인화단결 내지 업적향상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상급자도 계속 배우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상급자라고 하더라고 꼭 절대적으로 정당할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이 있을 경우 지적해 주는 부하를 갖지 못한 사람은 지극히 불행한 사람이며, 그 앞날은 모든 독선자의 말로와 다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와 관련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안제도』이다. 이 제안제도는 현대의 모든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경영방식인데 종업원들이 그 회사의 입장에 서서 무엇을 생각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는가 없는가가 곧 그 제안제도의 성과를 결정짓는다. 미국의 어떤 회사에서는 종업원들의 제안이 있는 경우에는 그 채택여부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성실하다고 인정만 되면 후한 상을 내리고 있다. 그 이유를 물은 즉 회사로서는 그 종업원의 애사심이 고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의 노동조합은 그러한 것이 무슨 득이 될른지를 알지 못 하였다. 그러나 얼마만한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까 조합원들의 대부분이 조합에 대하여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무슨 까닭인가 하고 그 원인을 캐어보니 조합원들은 자기들의 의견이 무엇이고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것에 대하여 흐뭇한 만족감을 느끼고(그 의견이 채택되고 안되고는 관계치 않고) 회사적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보게 되기 때문에 회사에 대하여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는 노동조합에 대해 아무런 취미도 안 느끼더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란 자기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다만 인정만 받아도 크게 고맙게 생각하게 되고 그 고마움 때문에 계속해서 좋은 의견을 발표하게 된다는 것이다.

⑶ 화합을 깨뜨리는 험담
말로써 화합을 깨뜨리는 요인으로서는 남에 대한 험담보다 큰 것이 없다. 시골 우물가에 모여 앉은 아낙네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남의 흉이라고 하듯이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는 대개가 남의 흉이다. 남의 단점을 들어내어서 그것을 주제로 하여 잡담을 늘어 놓는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속에 품고 있는 불만을 들어 내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긴장)해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 될 수 있지만 그 집단의 화합을 좀 먹는 것이다. 대개 그와 같은 분위기가 생기는 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상하간에 또는 횡적으로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아니할 때이다. 이 때에 구성원들은 불평불만이 주로 상사에 대한 것이므로 결국 상사를 헐뜯는 것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사관리의 불공정이 원인이 된다. 인사 관리를 단순히 인사부서 특유의 기능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사실은 인사관리야 말로 지극히 광범위한 경영행위인 것이다. 크게는 기업체 전반에 걸친 보직, 임명 및 임금관리등이 생각될 수 있고 작게는 모든 계층의 관리책임자들이 일상업무의 처리 과정에서 시행하는 직원에 대한 업무 배정과 그 성과에 대한 판단 및 평가 등의 모든 일들이 실질적인 인사관리인 것이다. 그리하여 부하직원들의 인정감이 충족되지 아니할 때 욕구불만은 폭발하는 것이며 업무배정 및 평가가 공정치 못할 때 상사를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직원들이 모여 앉으면 남의 단점 찾아내는 화제로 꽃피우는 것이다. 이것은 회사경영에 치명적인 낭비로 등장되는 것이므로 경영층으로서는 그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서 그 불평을 털어 놓은 당사자를 벌주는 일이 꼭 상책은 아니다. 그러한 불평의 요소를 미리부터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다.

⑷ 오해의 책임
입을 통하여 집단의 화합을 이룩하기 위한 마지막 한 가지는 『오해(誤解)』의 문제이다. 우리는 흔히 자기의 어떤 의사표시가 자기 뜻대로 남에게 전달되지 아니하였을 때에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 하려고 한다. 윗 사람에게 어떤 사실을 보고하였을 경우 또는 윗사람으로 부터 아랫사람에게 경영방침이 전달 되었을 경우 그 뜻이 그대로 이해되지 못할 때 흔히 상대방의 몰이해를 원망한다. 그러나 본래 언어라는 것은 남에게 이해받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한 말을 남이 못 알아 들었든지 또는 잘못 알아 들었다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표현능력이 부족하였다는 사실을 반성하여서 자기의 능력개발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말은 남을 납득시켰을 때에는 그 사명을 마치는 것이므로 납득시킬 책임은 이 쪽에 있는 것이지 납득 당하는 쪽에 있지 않다. 그리고 말은 어느 때나 오해받을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육화경(六和敬)을 설명하는 글을 쓰면서 『입』즉 『말』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았는데 이것은 말이야말로 우리 집단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말이 바로 창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