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도 좋소이다

2007-10-26     관리자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합니다. 처음 없는 처음부터 끝 없는 끝까지 흐르는 항하수 무진겁(恒河數 無塵劫)의 기나긴 시간, 그중에서 현금(現今)이 시간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우주, 그 가운데 이 조그마한 지구, 그나마 아세아의 동북쪽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작은 한반도에, 또 인간으로 태어나서, 더욱이 불연(佛緣)을 맺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 신기한 일들을 세존께서는 인연의 소치라 하셨고 조사(祖師)들도 전생(前生)의 인연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생(生)에 태어나기 전 의식(意識)하였건 안하였건 간에 맺어 놓은 인연따라 낳고, 머물고, 헐어지고, 없어지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런 것이라면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정해진 길을 사는 꼭두각시 처럼 움직이고 걸어나가는 것이 아니가 하고 이른바 숙명론(宿命論)에 빠지기 일쑤인 것입니다.
나자신, 오래 전에 이 숙명론에 사로 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애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사들이 말씀하진 전생의 인연은 숙업론(宿業論)이지 숙명론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숙명론에서와 같이 한 번 결정된 것은 뜯어 고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숙업론에서는 이 생에서의 또 다른 업으로써 숙업에 대한 보(報)의 방향을 돌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숙업에 대한 보가 이미 나타난 것, 방향을 바꿀 수 있는데 그 보가 늦어지는 것은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현재에 우리가 잘 살고 있다고 해서 만심(慢心)하다가는 그 만심하는 업으로 인해 잘못사는 결과가 올 것이고, 또 이 시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는 체념(諦念)이 생길 것입니다.
일본의 대덕(大德)『료깡』(1758~1831)화상은 큰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시우(詩友)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러나 재난을 당하는 시절에는 재난을 당하는 것이 좋소이다. 죽을 때는 죽는 것이 좋소이다. 이것이 바로 재난을 면하는 묘법(妙法)이오이다』라고 적어 보내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진 인연법칙을 굳게 믿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생사를 초월한 경지가 아니면, 모든 속박을 벗어 던지고 크게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하늘을 나르는 자유인(自由人)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요즘 불교계의 혼란도 올 것이 온 것입니다.
종전의 여러 가지 업이 누적되고 인연되어 나온 보라고 할 것입니다. 다만 이 역경을 면하는 묘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거기에는 이 역경을 피하려는 임시 호도책(湖塗策)이 작용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역경을 정면으로 맞아들이고 딛고 서서 성장에의 밑거름이 되게끔 하는 묘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我執)가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너(物慾)도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너와 나를 초월한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서 바탕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부터 깨끗이 한 연후에 타개(打開)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죽음이 고통스럽거든 낳지 말지어다』라고 원효대사는 갈파하셨습니다.
업장이 두터운 중생들이 그렇게 간단히 그리고 쉽게 생사를 초월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사를 초월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한 것입니다. 역경이 고통스러우면 그 역경을 다시 겪지 않게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역경을 피하지 않고 딛고 서서 초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