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의 향풍] 최초의 제가불자 쿠리카 부자(父子)

2007-10-26     관리자지관 스님

⑴「야샤」동자의 고뇌

오늘날 우리들은 부처님의 교단이 비구 비구니의 출가 二부중과 우바새(信男)․우바이(信女)의 재가二부중, 합하여 四부중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그런데 최초의 재가불자인 우바새 우바이가 누구냐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 파라나국에 장자가 있었으니 이름은「쿠리카」라 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큰 부자, 그래서 그 살림도 호화로왔다. 계절따라 지내는 궁전같은 별장을 몇씩이나 갖고 있었다. 장자는「야샤」라는 외아들이 있었다. 무엇에도 빠짐이 없는 훌륭한 청년으로 키웠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아까와하는 것 없이 무엇이든 최상 최고급으로 그의 환경을 꾸며주었다. 온갖 장식을 한 의복이라든가 황금으로 치장한 신이라든가 많은 시녀라든가 온갖 사치를 극성스럽게 꾸며주었다.
그렇지만 장자의 아들「야샤」는 참으로 훌륭한 청년이었는 듯하다. 그는 그러한 온갖 사치와 영화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영화와 사치로 메울 수 없는 또 하나의 맑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진다. 어느날「야샤」는 벗들과 모여 호화판 연희를 베풀었다. 음악의 숲속에 무희(舞嬉)들의 물결 속에 시녀들의 빈틈없는 시중 속에서 그들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환락을 마음껏 누렸었다. 밤도 깊고 그들도 피로해졌다. 그는 음악과 춤 속에서 그만 잠들어 버린다.
얼마가 지났을까「야샤」는 눈을 떴다. 그의 주위에는 악사며 무희들이며 천하에서 뽑힌 시녀들이 혹은 악기를 든채, 혹은 옷을 반쯤 걸친채 마구 흩어져 깊은 잠 속에 들어 있었다. 그에게는 이러한 인간적 환락에 지치고 말았다. 아무리 마시고 먹고 마음껏 놀아도 그의 마음속 한구석은 역시 메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물가물 형용할 수 없었던 가슴 속 공동(空洞)은 더욱 스잔한 바람을 가슴 속에 확대해 가고 있었다. 술, 먹는 것, 감각적 환락, 부귀, 영화, 권세, 이들이 다 무엇이라는 건가. 나를 희망의 나라로 키워준다느니 보다 나를 둘러싸고 나를 통제하고 나를 한정하고 마침내는 나를 결박지우는 것이 아닐까. 보라, 저 술, 저 여자들의 잠든 얼굴들을! 저 허트러진 추태...... 그는 마음 속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협오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소리쳤다.『나는 여기서 썩을 수 없다. 저 속에 파묻혀 죽을 수 없다. 더럽고 더러운 속에 빠져 살 수 없다.』그는 분연히 집을 박차고 문 밖으로 나왔다.

⑵ 번뇌의 둥치를 벗어나다
밤은 소리없이 가고 고요한 아침은 멀리서 찾아오고 있었다. 그는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마구 걸었다. 그 몸부림칠 추악한 함정과 결박과 굴레에서 뛰쳐나고자 하는 일념에서 마치 무엇에 집힌 것처럼 마구 걷고만 있었다. 그는 어느덧 「바것니이」강변에 와 있었다. 아침은 밝아오고 정적의 강물은 주변에 가득히 감돌고 있었다. 그는 잠에서 깬듯 물을 보았다. 그리고 강 건너엔 거룩한 빛을 띠운 분명한 한사람이 조용히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의 머리속에서는 번개불이 튀는듯 했다.『아, 저분이 부처님이시다. 말로만 듣던 부처님이시다. 나의 괴로움을 부처님만은 아시리라.』그의 마음 속엔 한가닥 빛을 잡은 양 희망과 첨앙과 기구의 소리가 가득차 올랐다. 그는 소리내어 외쳤다.『부처님이시여, 저를 구해 주소서. 제 마음은 괴롭습니다.』 그는 하늘에 호소하듯 온 혼의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애절하리만치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거룩한 님의 말씀은 들려온다.
『「야샤」여 근심하지 마라. 고를 여의는 법이 여기 있다. 강을 건너 이리로 오너라.』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일찌기 들어보지 못한 자비가 넘쳐 있었다.「야샤」는 신을 벗고 물에 뛰어들었다. 금으로 만들었다 할 그 신이 아무렇게나 강둑에 내던져 졌다.
부처님의 발아래 이르자「야샤」는 땅에 업드려 예배하였다. 그것은 끝모를 옛부터 지고왔던 무거운 짐을 땅이 꺼져라 하고 내려놓는 듯 했다. 가슴에 벅차오르는 고뇌를 일시에 토해내는듯도 하였다. 목숨을 걸고 그의 혼이 하늘에게도 말할 수 없는 하소연을 토해내는 듯도 하였다. 그는 부처님 앞에서 그의 그 모두를 내어놓는 것이며, 그의 그 모두를 위탁하는 것이며, 그의 온 희망을 붙이는 것이었다. 부처님만은 참으로 그를 알아주시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찌기 아무도 그의 마음 속의 괴로움을 알아주지 못했고 어떠한 학문 지식도 그의 마음 속 괴로움을 건드려주지 못했고 그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하늘같은 아버지마저도 그의 마음 속은 정말 몰라주었던 것. 자기 자신조차도 자기 마음을 몰라 홀로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되짜는 제마음의 목소리에 괴로워 했다.〈나는 무엇하는 것이냐.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이냐. 부귀영화라는 이 겉치레가 나의 모두란 말이냐.〉젊은「야샤」의 혼은 소리없이 형용할 수 없이 끝없이 울어왔던 것이다. 이제 그는 부처님을 만났다. 기나긴 나그네의 길은 끝장에 왔고 슬픔의 강물은 이제 바닷가에 이르렀다.

⑶ 마음을 비춘 달빛
부처님은 말씀하신다.『야샤여, 잘 왔다. 그대는 이미 세간의 욕락의 그 모두를 마음대로 하여왔다. 세간의 오욕락이 어떤 것인가도 알고 있다. 그대의 고민은 그것이 고민에서 벗어날 해탈의 싹이 싹튼 것이다......』부처님의 설법은 그의 마음 속 어둠을 시원스레 씻어내고 밝음을 가득히 채워 주었으며 메마른 마음 땅에 감로를 윤택하게 부워주는 것이었으며 지쳐 쓰러진 그의 혼을 따뜻이 일으켜주는 것이었다. 인간에 있어 탈심이 무엇이며 향락이 무엇이며 고통이 무엇이며...... 강물처럼 부어주시는 부처님 설법은 그의 마음을 말끔히 씻어 주었고 기쁨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의 눈은 새 세계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야샤」의 감동을 누가 있어 말할까.「야샤」는 벌떡 일어나 온갖 보배로 화려하게 장식한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제자로 받아 주시기를 청하였다.
즉 출가를 허락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야샤」는 외아들이니 출가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 하시고 더욱이 부모의 허락없는 출가는 부모에게 큰 걱정을 끼치는 것이니 불효인 것을 생각하라 이르신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집에 있으면서 출가한 마음을 갖고 부처님의 법을 배우며 부처님의 법을 행하며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하셨다.
밤 사이에 갑자기「야샤」를 잃어버린 그의 집은 큰 소동이 났다. 강가에 벗어던진 신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부처님을 찾아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어리석은 생각을 돌이키며 이제까지 오욕에 사로잡힌 호화로운 생활이 자비심을 덮고 교만심을 기르고 있는 것을 깊이 뉘우쳤다. 그리고「야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고 참으로 영원한 행복의 길이 부처님 법문중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야샤」는 장자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저희들은 이제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께 맹세코 귀의하게읍니다. 힘을 다하여 삼보를 받들 것이며, 거룩한 교단을 수호하고 정법을 널리 펴겠읍니다』하고 맹세하였다. 여기서 부처님 교단에 최초의 우바새는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