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행하는 길] 퇴도미로(退道迷路)

빛을 행하는 길

2007-10-26     이기영

승의체품경(勝義諦品經)이란 경에는 보살의 적극적인 실천행(實踐行)에 관한 중요한 충고(忠告)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가령 그 한 例를 든다면 십종계행(十種戒行)이란 것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條項)이 있읍니다.

一. 구의불퇴보제(究意不退菩提)(무슨 일이 있어도 菩提에서 물러서지 않겠읍니다.)
二. 원리성문벽지불지(遠離聲聞辟支佛地)(멀리 멀리 聲聞과 辟支佛의 경지를 떠나겠읍니다.)
三. 상위일체중생신심이(常爲一切衆生身心利)(언제나 모든 衆生의 몸과 마음을 위한 도움을 주겠읍니다.)
四. 령일체중생주어불행(令一切衆生住於佛行)(모든 衆生들을 佛行에 머물도록 하겠읍니다.)
五. 수지보살계행무령흠범(受持菩薩戒行無令欠犯)(菩薩戒를 잘 지키되 조금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읍니다.)
六. 개오일체불법(開悟一切佛法)(모든 佛法에 다 정통(精通)하고 잘 깨닫도록 하겠읍니다.)
七. 소수공덕 회시십력 원성불도(所修功德 廻施十力 願成佛道)(닦아서 얻은 功德을 十力의 모든 衆生께로 돌려 有施하고 佛道를 이룩하기를 願하옵니다.)
八. 불응분별 여래법체(不應分別 如來法體)(如來의 法體를 이렇궁 저렇궁 分別하지 않겠읍니다.)
九. 일체세법 무소탐저(一切世法 無所貪著)(一切의 世上의 것들을 탐내고 안타까이 가지려 하지 않겠읍니다.)
一○. 방호육근 무령염저(防護六根 無令染著)(六根을 잘 지켜 애욕(愛慾)에 물들게끔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어느 한 조목(條目)도 체실(切實)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히 우리의 눈을 끄는 조목이 마지막 열번째 것입니다. 방호(防護)란 말이 나와서 나는 민방위(民防衛)의 날을 생각했습니다. 방위(防衛), 방호(防護),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지키나? 이 世上의 燈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서는 六根을 지켜라 하는 것입니다.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의 육근(六根)을 말입니다. 그 눈과 귀 등 모든 감관(感官)의 기관(器官)과 의식(意識)이 애욕(愛欲)으로 말미암아 염저(染著)되게 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요새 우리 나라에서는 좋은 화장품(化粧品)도 옷가지도 많아서 사람이 옷치장 몸치장을 참 얼마든지 화려하게 할 수가 있게 되었는데 그런 치장에는 관능적(官能的)인 욕심(慾心)이 매양 밑바닥에 깊숙히 깔려 있지요. 적당히 사람으로서의 품격(品格)을 유지하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누군가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나아가 누군가가 자기의 교태(嬌態)에 걸려 들기를 바라는 이상한 풍조(風潮)가 이 도시(都市)에서는 대낮에부터 거세게 사람들의 주변(周邊)을 스쳐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무서운 세상(世上)에서 너희들 보살은 六根을 방호(防護)하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다른 조목들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이 조목이 정말 오늘의 우리에게는 다른 모든 것보다 체실(切實)한 교훈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같은 經에는 열가지 퇴도미로(退道迷路)와 또 열가지 마장(魔障)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퇴도미로(退道迷路)란 보살의 후퇴(後退)의 길, 미혹(迷惑)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보면 참으로 경이 이야기 해주는 바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길을 걷다가 돌맹이에 걸려 넘어지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또 마구니의 장애물이라고도 한 것이겠지요.
퇴도미로(退道迷路)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포외세고(怖畏世苦), 세상(世上)살이가 어렵지요. 하도 어려우니까 그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미로(迷路)라는 것이지요. 하도 어려우니까 그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소수계행 홀생회심(所修戒行 忽生悔心), 계행(戒行)을 잘 닦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후회(後悔)가 생길 때가 있지요. 가령 예를 들면 옆에서 놀아나는 꼴들을 보고 자기만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생길 때가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迷路이지요. 또 수소분공덕 편이위족(修少分功德 便以爲足) 이런 것도 있습니다. 약간 공덕(功德)을 닦은 듯하니까 교만해져서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느정도 무엇을 알게 되었다 하면 곧 스승도 어른도 몰라보고 마치 자기 혼자 그렇게 되었거나 또는 자기가 제일이기나 한 것처럼 교만해 지는 사람도 많이 있지요. 이것을 經에서는 불경사승화상 급선지식 시기미로(不敬師僧和尙 及善知識 是其迷路)라 했습니다.
수도(修道)를 하다가 딴 생각이 생겨서 세상(世上)의 향락생활(享樂生活)을 그리워하는 그런 사람들은 곧잘 그 스승과 스승의 교훈(敎訓)을 비방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방대승(誹謗大乘)과 같은 한 조목도 열거된 것 같습니다.
열가지 마장(魔障)이라는 것들 가운데에 열거되는 것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열심히 수행(修行)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같은 사람은 절대로 성불(成佛)을 할 수 없다.(아불성불(我不成佛)) 이렇게 자포자기하면서 갑자기 퇴심(退心)을 내면 그것은 마구니에 홀린 것이라고 보라는 것입니다.
낙주은벽 선행구사(樂住隱僻 善行俱捨)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등 선행(善行)을 곧잘 하다가도 어떤 계기에 그 너그러운 희생의 정신을 버리고 깊숙히 山中에 은신(隱身)을 해버리는 일 말입니다. 이것도 마구니만이 좋아할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 조목과 거의 같은 뜻을 가진 기사일체선원(棄捨一切善願)도 열가지 마장(魔障)중의 하나입니다. 온갖 善한 願을 다 포기해 버리는 일. 보살의 생명(生命)도 願에 있습니다. 이 願이 없으면 정진(精進)이 안되고 정진(精進)이 없으면 그밖에 모든 수행(修行)이 다 멈춰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특히 이것과 관련해서 열가지 마장(魔障)중 여섯번째에 열거하는 한 조항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사단번뇌 낙수멸정(捨斷煩惱 樂修滅定)이라는 것입니다. 번뇌(煩惱)를 끊어버리고 일체 세상(世上)일을 생각하지 않으며 홀로 山中에서 선정(禪定)하기만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經은 마구니가 마련한 장애물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보살의 길은 괴로운 길입니다. 다만 보살은 그 괴로움을 사서 즐겨한다는 점이 다른 범부(凡夫)나 성문(聲聞), 연각(緣覺)과 다른 것이지요.
보살의 길은 결코 쉬운 길도 아닙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인생(人生)을 쉽게 살려고 보살의 길을 택(擇)한다면 그처럼 큰 착각(錯覺)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세상(世上)을 버리지 말아야 하고 중생(衆生)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이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안간힘을 다 써 봅니다.
불락권화중생(不樂勸化衆生), 중생(衆生)들에 권고(勸告)하여 그들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일에 싫증을 내지 말 것, 이것이 또한 經의 교훈입니다.
마구니는 우리에게 이 어려운 길을 가는 길을 포기하도록 종용하고 강요하는 갖가지 구실들을 마련하고 또 제시하고 있읍니다. 대체로 그 달콤한 구실들은 우리의 육근(六根)으로 들어옵니다. 그놈을 지키는 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