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행하는 길] 1. 그 이정표(里程標)를 보자

빛을 행하는 길1

2007-10-26     이기영

  글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한낮 이정표에 불과하다. 올 데도 갈 데도 없는 무위진인(無位眞人)에게는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잡목이 우거지고 잡초가 무성한 숲 속에서 태양도 낯을 가린 어둠 속을 헤매는 범부들에게는 뜻 있는 글자가 고맙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작은 프랫쉬 밖에는 없는 연약한 나그네들에게 길을 가리키는 팻말이 되기 때문이다. 연약한 나그네들에게는 그것도 없으면 힘없이 방황하다가 죽어갈 운명만 남는다.

  숱한 이정표들이 이 숲 속에는 무수히 꽂혀 있다. 설사 그것을 비쳐 보면서도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뜻 없는 나그네들만이 우글대는 이 세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사견의 숲, 번뇌의 숲 속에서 이제 우리는 보살의 이정표를 다시 세우는 겸허한 작업을 해보자는 것이다. 저 무수한 경론의 창고에서 퇴색한 팻말들을 꺼내어 새로 닦고 칠해서 눈 있는 사람들의 수고를 덜자는 것이다.

  사익경(思益經) 안에는 수많은 보살의 이름들이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보리(菩提)보살, 견의(堅意)보살, 도중생(度衆生)보살, 단악도(斷惡道)보살, 관세음(觀世音)보살, 득대세(得大勢)보살, 무파권(無波倦)보살, 도사(導師)보살, 수미산(須彌山)보살, 나라연(那羅延)보살, 심력(心力)보살, 사자유보자재(師子遊步自在)보살, 불가사의(不可思議)보살, 실어(實語)보살, 희견(喜見)보살, 상삼(常滲)보살, 심무애(心無愛)보살, 상희근(常喜根)보살 등이 그것이다. 이 이름들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살이 있어야 할 자세를 설명하는 표현들이다.

  이 보살들이 각각 그 이름에 상응하는 한마디씩을 한다. 어떤 사람이 바로 보살이 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리보살은 말한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하루하루를 계를 지키고 맑은 행을 닦는다. 이렇게 초발심 때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항상 맑은 행을 익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다.」 또 견의보살은 말한다. 「심고자심(深固慈心)을 성취하면 이 사람이 보살이다.」심고자심이란 문자 그대로 견고한 자심이다. 그것을 굳은 마음가짐, 견의라고도 한 것이다.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이름의 보살들을 말한다.

「보살은 다리나 배와 같은 존재이다. 사람들을 건네주되 분별하지 않는 사람이다.」중생을 건네주는 사람이 보살이란 말이다. 「발을 디디는 곳 그 어디나 불국 아닌 곳이 없다. 거기에서 모든 나쁜 길을 다 없앤다. 이 사람이 보살이다.」악도를 끊는 자가 보살이란 뜻이다. 「중생들이 그 이름을 외우고 그 모습을 보기만 하면 갖가지 고통을 면하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이 보살이 아닌가?」이것은 세지(勢至) 보살다운 말씀이다. 「1일 1야가 30일이 되고 1년이 되고 그리하여 무수한 긴 세월이 가도록 범행을 닦고 공덕을 모아 조금도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고 피로나 권태를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이 보살이다.」피곤하지 않음이 보살의 덕성이다. 「사도에 떨어진 중생들을 대비심으로 일으켜 그들을 정도에 들어오게 하고 그러면서도 은혜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보살이다.」「모든 사물에 집착하는 마음을 끊고 마치 수미산처럼 갖가지 색을 하나로 삼는 그 사람이 보살이다.」수미산보살이란 이름이 이에 알맞다. 「모든 번뇌도 감히 깨트리지 못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바로 보살이다.」나라연, 금강역사가 그러한 보살의 상징이 되어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대해 사유한다. 그러나 조금도 잘못됨이 없다. 그런 사람이 바로 보살이다.」이렇게 말한 보살은 심력(心力)보살이라고 했다. 「사자유(獅子遊) 자재」사자가 자재하게 노닌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보살은 무생법인을 강조한다. 「어떠한 대상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물에 대한 깊은 인(忍)을 얻은 사람이다. 그리하여 모든 외도들로 하여금 그 위력을 두려워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보살이다.」「마음의 생김생김을 알고 그 불가사의한 깊이를 깨달아 수유분별을 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보살이다.」「하는 말마다 다 진실일 뿐, 꿈속에서라도 망어를 하지 않게 된 사람, 그 사람이 보살이다.」희견보살의 말이다. 희견의 뜻이 여기에 있다. 또 상삼보살이라는 좀 험상궂은 이름의 보살은 이렇게 말하다. 「생사에 덜어진 중생들을 보고, 그들이 빠져있는 세간의 모든 쾌락을 버린다. 그리고 자기자신의 제도를 원하고 또 중생을 제도하기를 바란다. 그 사람이 보살이다.」「번뇌는 악마다. 그 악마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일으키게 하여 괴롭힌다.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 그 사람이 보살이다.」심무애보살이 한 말이다.「항상 선한 마음으로 그 원을 스스로 만족시키고, 또 남의 원까지 만족시켜 못하는 일이 없는 사람, 이 사람이 보살이다.」상희근보살의 말이라 한다.

  사익경은 또 보살의 이모저모를 4법으로 풀어 설명하기도 했다. 경은 「항상 그 마음을 견고히 하고 조금도 피로와 권태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일에 유념하라고 가르친다.

  ①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일으킨다.
  ② 정진, 오직 정진하고 게을리 하지 말라.
  ③ 생사가 꿈만 같음을 믿고 깨달으라.
  ④ 부처님의 지혜를 올바로 사량하라.

  경은 또 보살이 선근을 증장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일에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는 지계(持戒)요, 둘째는 다문(多聞)이요, 셋째는 보시(布施)요, 넷째는 출가(出家)이다. 여기서 출가란 반드시 형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보살은 ① 실리(失利) ② 악명(惡名) ③훼욕(毁辱)과 ④ 고뇌(苦惱)를 두려워 하거나 겁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즉 이익을 놓쳐 손해를 본다거나, 명예가 아니라 오히려 악명을 얻거나, 훼방과 해침을 당하거나 고뇌가 닥쳐오더라도 그것을 겁내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위의를 저버려도 안 된다는 것이다.
  보살은 또 방편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면 ① 중생의 뜻에 순응해야 한다. ② 남의 공덕을 보고 수희심을 일으켜야 한다. ③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없애야 한다. ④ 부처님을 권청해야 한다.

  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보살은 법보를 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대는
  ① 법을 얻기 어려운 보패(寶貝)로 보고 갔는가? ② 법을 갖가지 병을 고치는 묘약으로 보고 있는가? ③ 법을 돈보다도 더 귀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재물이라고 보는가? 그리고 ④ 법을 영원한 행복의 샘이라고 보고 있는가?
  보살은 중생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① 항상 중생에게 이익과 평안함을 주려고 원하고 있는가?
  ② 사사로운 쾌락을 버리고 있는가?
  ③ 마음을 평화롭게 가지고 인욕을 하고 있는가?
  ④ 교만한 마음과 행동을 버리고 있는가?

  우리는 위에서 보살의 멀고도 어려운 길을 보아왔다. 가도가도 또 똑같은 팻말만이 나오려는지도 모른다. 다리가 무겁다고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한다. 아직도 여기냐 싶은 생각이 들어서는 안되겠다. 마음의 프랫쉬를 켜들고 팻말을 쫓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