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근거한 행복

구도문답

2007-10-24     관리자

     종교를 찾는 자세

[문] 나이가 40이 되니 이제까지 지내온 것이 정신없이 살아온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종교라도 하나 가져야겠다고 형제들끼리 모여 의논도 했습니다. 종교 선택에 대하여 도움의 말씀을 주십시요.
[답] 내가 불교를 전문으로 하는 출가인인데 나에게 물어 오신 것으로 보아 불교에 관하여 생각한 바가 있어 물어 오시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저는 불교 이외에 다른 종교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 입장에서 말씀드리게 되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사람이 교육을 받으려 하면 자기가 교육 받을 수 있는 기초학력의 정도에 따라 교육대상을 선택하게 됩니다. 중학 졸업한 사람이 고등학교를 가고 고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그 이상의 교육시설을 찾게 됩니다. 종교도 이런 점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종교를 통하여 확고한 마음의 의지처를 얻어서 마음에 안정감을 찾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를 주시고 전지전능 하시고…하는 식의 절대자에 기대서 마음의 안정을 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생의 안락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고 온갖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깊은 철학, 높은 도덕률에 마음을 두고 높은 교양인으로서의 자기를 갖추기 위하여 종교에 관심 갖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종교를 찾는 사람들의 심정이 여러 가지이어서 자기가 구하는 바에 상응하는 종교에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요행을 바라거나 금시발복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말하는 종교나 미신을 설하는 사람을 찾게 마련이고 절대자 앞에 모두를 맡기고『당신 뜻대로 하소서.』하며 자기를 온전히 내어 맡기고 종교에 관한 한 지성도 양심도 포기하여 내어 버리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심정에서 종교를 찾는다는 것은 자칫 함정에 빠지고 방황의 늪으로 들어가는 위험이 있습니다. 구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거나, 그런 종교에서 행복하지 않거나, 안정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에 마음을 두시는 분은 욕망 충족의 도구로써 종교를 찾거나, 자기를 맡겨 버릴 권능자로서 종교를 찾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시 종교가 자신의 생명 모두를 바치고 키울 중심인 만큼 가장 진지하고 가장 밝은 지성으로 가장 양심적이고 가장 진실을 찾는 그런 반성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종교를 하나 잡아야겠다고 말씀 하셨는데 아마도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종교 가운데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겠다는 뜻인 듯합니다. 그러나 종교를 상품 고르듯 대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가 진실한 자기를 키우고 진실한 생명대로 살고 진실한 삶의 의미와 보람을 거두는 것이므로 상품 고르듯 고르려는 자세는 고쳐야 할 줄 압니다. 거짓된 자기에서 벗어나 진실한 자기로 사는 것이 급한 일입니다. 남이 정해준 가치기준에 따라 서둘러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 척도에 따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구체적 생명을 산다는 말입니다. 밖에 제시된 다수 가운데서 골라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가장 진실한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살고 그 확충으로 보람을 찾아야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순수 진실의 원형과 가치의 근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한 생명을 구하고 생명의 진리를 구하고 참된 주체적 가치를 구하는 자세에서 종교를 생각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종교에 매이기에 앞서 종교 이전에 참 자기로 살아야겠다고 하는 진실한 자세를 잊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밖에서 주는 것을 얻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미 있는 것에 충실하는 것을 의미하게도 될 것입니다. 부디 진실한 종교에 보람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 굽히기 싫다

[문] 저는 어쩐지 부처님이나 어떤 종교 성자에게 굽히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접근을 하지 못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도 불교 이해가 가능합니까?
[답] 부처님에게 굽히기 싫다는 말은 부처님 존상에 굽히기 싫다는 뜻일 것입니다. 또는 합리적 근거 없는 남의 권위에 무조건 굴복하기 싫다는 뜻일 것입니다. 귀하가 부모님이나 선배나 스승님이나 그밖에 크게 도움을 주신 분들을 존경하지 않고 교만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귀하가 존상에는 굽히지 않아도 부모님이나 스승님 같은 은혜와 지혜와 힘으로 도와주신 분들에게 경의를 드린다면 그것은 귀하가 부처님에게서 큰 은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형상인 존상으로만 알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귀하가 알고 있는 자기 자신이 허무한 육체이거나 끊임없이 변해 가서 실다운 자기 모습이란 없다는 것은 모르고 있고, 더 나아가 참된 자기는 진리이며 무한자이며 절대자며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데에 기인합니다. 만약 당신이 알고 있는 자기는 거짓된 자기이고 진실한 당신은 당신과 함께 하는 진리이신 부처님이시라고 알 때 당신은 거짓된 자기에서 진리인 자기에 대한 흠앙과 용기가 솟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자기에 눈떠 진리인 자신에 대한 새로운 긍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부처님께 굽히기 싫다는 귀하의 뜻은 아무 뜻도 모르고 어떤 형상에게 굴하거나, 어떤 권위에 굴하기 싫다는 뜻이요, 참된 진실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므로 귀하의 자세는 불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디, 진리이며 진실한 자기에 대한 이해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불교는 원래 형상을 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형상에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서산 대사가 지은 <선가귀감> 등 선문어록을 읽어 보시고 불법을 배워 가시면 귀하는 위대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함께, 원만한 자신의 회복과 진리이신 부처님을 새롭게 알게 될 것입니다.

     개인의 행복이 평화요건

[문] 종교는 세계의 평화, 인류의 복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오늘날의 종교들이 대개 개인적인 안락이나 소원성취를 말하고 있으니 종교가 타락한 것이 아닙니까?
[답] 물론 종교가 세계와 인류의 평화 안녕에 무관심하다면 종교라 하기 어렵습니다. 이유인즉 개인은 세계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에 전쟁이 나고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을 때 어느 나라, 어느 개인도 안녕할 수 없습니다. 원래 인간이 가족과 함께 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사회와 세계와 함께 하고 나아가 진리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개인의 안녕은 국가사회를 떠나 있을 수 없고 세계평화를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세계, 한 나라가 평화한 데서 온 인류가 평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류 개개인의 행복을 떠나 사회나 세계의 평화 번영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사회의 평화 요인이며 국가 번영과 직결됩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종교가 세계의 평화를 말하고 인류의 복지를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인류에 대한 평화 번영을 저해하는 요인을 제거하려고 사회적 혹은 국제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발언하고 증언하고 경고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안녕 평화가 경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평화의 내용이 개인의 성장이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있어 다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인간의 진정한 평화 번영의 길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인간완성 인간향상의 길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인간의 욕망 충족만을 말하는 종교는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완성이 인간의 향상이며 진실한 행복요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번영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되 그것이 진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며 진리를 통한 인간 향상의 길이어야 합니다. 진리에 의한 인간행복의 길이 바로 세계평화의 길이며 인류 안녕의 길이 됩니다. 결국 바른 진리 바른 깨달음에 의한 종교일 때 거기에는 개인의 완성도 국가의 번영도 세계의 평화도 진리의 실현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종교가 개인 행복을 말하는 것을 타락이라고 하나 인간성장을 외면한 행복이 타락이며, 개인의 행복을 외면한 세계평화론도 환상이라는 것을 착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깨달은 진리를 행할 때는 개인과 국가와 인류가 함께 빛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