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잡고 싶은 중생심

노인자

2007-10-22     관리자

매일 아침 베트남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옷가게에 들어서면 내 눈은 가자미눈이 된다. 안 보는 척 하면서 탁자 위를 쓱 훑어 쌓인 먼지를 보고, 대리석 바닥의 햇살 비치는 쪽을 보면서 마음으로 가늠하고, 옷을 보는 척하면서 거울 아래와 마네킹 부근에 뒹구는 먼지 뭉텅이를 본다. 종업원인 응웨가 먼저 출근하면, 나는 청소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적당한 시간에 맞추어 간다.

보이는 입구에 빗자루질만 대충 하는 것이 응웨의 청소다. 그러나 나는 ‘깨끗이 청소하라’는 말을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나머지 청소는 내 몫이다. 유리창을 닦고 걸레질을 하지만, 마음은 성질이 나서 부글부글 활화산이다. 응웨는 두 눈을 꿈벅이며 바라보거나 억지로 청소에 동참하기도 한다. 화가 나지만 참으려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몸은 경직되고, 더운 날씨는 더 덥고 땀이 방울방울 흐른다. 응웨와 내가 청소 때문에 신경전을 벌인 지 벌써 여러 날째다.

속 끓는 마음을 들여다보니
하루는 광준 엄마가 지나가다가 들여다보고 마포 걸레로 바닥 청소하는 내게 말한다. “마담! 마담은 청소하는 거 아니에요. 왜 마담이 청소를 해요. 하지 마세요!” “제대로 청소를 안 해서 이렇게 하는 거 보여주려고요. 자꾸 하다보면 따라서 하겠지요.”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청소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가만히 서있는 응웨에게 더 화가 난다. 화가 머리꼭대기에서 폭발했다.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체면에 그럴 수도 없다. 고함지르고 싶은 것을 참으려니 더 화가 난다. “응웨! 매일 내가 이렇게 청소하랴?” “….” “이것이 너의 일이야? 나의 일이야?” “….” 실랑이를 하면서 청소하고 있는데 가게주인 호아가 딸 미예와 함께 왔다.
호아는 가방을 만들어서 일본에 수출하는 일을 하는데 바이어를 위한 쇼룸으로 가게를 사용하고 있다. 나는 호아 가게의 반을 빌려서 옷가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응웨가 수돗가에 간 사이에 미예가 말한다. “월급은 네가 주잖아. 그런데 왜 네가 청소를 하니?” “내 가게니까 내가 하는 거야.” 미예가 얄밉고 내가 창피하다.
걸레질을 하면서 내게 스스로 물었다. ‘정말이야? 정말로 네 가게니까 네가 하는 거야? 그렇다면 흔쾌히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잖아. 왜 매일 화가 나? 청소하는 것이 왜 창피해? 솔직해봐 스스로에게.’ 정말이다. 마음 챙기는 일을 한동안 잊었다. 마음이 찬찬히 가라앉는다.
‘나는 주인이다. 더욱이 나는 외국인이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허드렛일을 하지 않는다. 청소하는 나를 남들이 보면 창피하다. 신경질이 난다. 내가 청소를 하면 종업원인 응웨보다 내가 더 못나 보이는 거 같다. 청소는 당연히 응웨가 해야지. 속상해. 기분 나빠.’
가만히 나를 돌아보고 속 끓이는 내 마음을 살펴보았다. 마음 바닥을 들여다보니 그 밑 마음에는 폼 잡고 싶은 마음이 잔뜩 숨어있다. 스스로는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하려 해도 주인입네, 외국인입네 하고 폼 잡고 싶은 것이다. 폼을 못 잡으니 창피한 것이다. 청소를 하면 폼이 나지 않고, 폼이 나지 않으면 창피하고, 창피하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주인이고 잘 사는 나라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니까!
그런데 만약 유럽에서 같은 상황에 처해도 내가 이럴까? 예전에 런던에서 예약한 숙소에 늦은 밤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던 황당한 일, 장시간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한 스웨덴의 사라에게서 한국인이라고 무시당했던 일 등이 생각난다. 한국보다 경제사정이 좋은 나라 사람에게서 내가 무시당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우리보다 못한 사람에게 우월해지고 싶어 한다. 심히 부끄럽고 부끄럽다. 그들이 있기에 나 또한 여기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임을 잊어버렸다.

폼 잡고 싶은 중생을 끌어안으니
많은 시간을 아프리카 등지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내게는 현지인과 나를 분리하는 마음이 없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내 밑 마음에는 그들과 나 아닌 타인에게 얼마나 잘 나게 폼 잡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스스로 가엾고도 가엾다. 그렇게 개 폼 잡고 싶은 중생 끌어안으니까 잘 나고 싶은 중생들이 낚싯줄에 고기 엮이듯 줄줄이 올라온다. 주인으로서의 중생, 외국인으로서의 중생, 일을 구별하는 중생, 너와 나를 구별하는 중생, 화를 내는 중생, 창피한 중생, 잘 나고 싶은 중생, 폼 잡고 싶은 중생, 살피는 야비한 중생, 눈치 보는 불쌍한 중생….
걸레질 한 번 할 때마다 이 중생들을 하나씩 불러서 박박 밀었다. 가엾은 중생들을 정성스레 다 밀고 나니 모든 생각들이 사라졌다. 청소하는 걸레만 있다. 대리석 바닥이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 응웨가 걸레를 받아간다. “대리석 바닥에 걸레질을 할 때는 미끄럼방지제를 풀어서 헹군 걸레로 닦아야지 사람이 바닥에 미끄러지지 않아.” 응웨가 미끄럼 방지제로 헹군 후 걸레질을 한다. 훨씬 깨끗하다.
호아와 그녀의 딸 미예가 돌아갔다. 응웨가 말한다. “호아네 코너는 청소하지 말까 보다.” “우리 쪽만 하고 호아네 쪽은 청소 안 하면 그 쪽 먼지가 우리한테로 다 오잖아.” “헤~” 거울과 유리창까지 깨끗이 끝낸 응웨가 너무 열심히 청소를 해서 어깨 아프다는 시늉을 한다. 어깨를 만져 주었다. “응웨, 깨끗하니까 좋지?” “헤~” “매일 이렇게 깨끗이 청소하자.” “헤~”
가게 뒷문을 나와서 바라보는 베트남의 하늘은 너무도 맑다.

노인자| 1958년 합천에서 태어나 끝없는 방황 중 부처님 품안에서 위안을 받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이집트 카이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아프리카 12개국을 육로로 종단했으며, 에디오피아에서 유니세프 자원 봉사자로 일했다. 현재 베트남 호치민에서 옷가게를 하며 불교재가연대 국제위원으로 인도에 학교 세우는 일을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