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이 기쁜 삶 전법으로 회향하리

나의 믿음 나의 다짐

2007-10-15     관리자

아직 기도가 모자라는 제가 여러분 앞에 가슴 아픈 저의 지난 얘기를 들려 드리는 것은 단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까 하여 부끄러운 마음으로 씁니다.
저는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부산에서 교육을 마치고 부모님 밑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처녀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댁 큰어머님의 중매로 24살 때 현재의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시댁은 대지 600평의 넓은 땅에 집을 별장처럼 지어 살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시어머니와 조금의 갈등은 있었지만 금전적인 모든 것이 풍족했고 남편이 성실하여 아무일 없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사는 동안 시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저는 아들 삼형제를 낳았습니다.
저의 친정에서는 원불교를 믿었는데 시어머님께서는 절에 나가셨습니다. 저보고 절에 다니라고 하셨기에 내키지 않는 마음이었으나 시어머니의 명을 어길 수 없고 하여 시어머니가 다니시는 조계사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님이 절에 다니시면서 보시를 많이 하면 굉장히 그게 못마땅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절에 가자고 하면 무슨 핑계를 대고라도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했고 항상 넉넉하여 금전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제 마음은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가질까 하는 생각에 남편 몰래 부업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내가 직접 나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했는데 경험도 없이 시작한 지 3년 만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있는 돈은 물론이고 살고 있던 집마저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마음 가운데 탐심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자기 본분을 알아 이러한 탐심과 치심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았다면 제가 어찌 어리석은 짓을 했겠습니까. 부처님의 법을 모르고 오욕락에만 매달려 있었기에 결국은 저의 단란했던 가정도 깨어져 버렸고, 저의 아들 셋은 시어머님과 남편이 키우기로 하였고, 저는 그때부터 혼자 집을 나와 방황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아무런 걱정없이 살던 생활에 비해 저의 앞에 닥친 세상은 험하기가 말할 수 없었으며 외롭고 막막하고 그저 앞이 캄캄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생을 포기할 각오도 했었으나 이것조차 제대로 안되고 살아갈려니 마음에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 생각이 나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나 하나 잘못으로 시집식구 모두에게 당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니 이 또한 심한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의 잘못으로 시댁의 가산을 없애고 주위의 모든 분들께 심려를 끼치게 되니 그 또한 저에게는 크나큰 고뇌였지요.
그러나 못난 어머니라도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제자식들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리 끝에 우선 생계를 위해서 지압과 피부관리를 배웠습니다. 주위에서는 하필이면 다른 사람의 팔 다리나 주무르는 지압을 배우냐고 했지만 전 순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 부족함 없이 살 때 나 이외의 모두를 무시하고 살지 않았나, 그 생활을 반성하고 지난날의 아만심을 힘든 일을 해서 반성하며 살자.’ 이런 마음으로 지압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의 무거운 업장도 빨리 소멸될 것 같았습니다.
춥고 궂은 날씨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설 때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는 초라함과 원망스러운 생각에 가방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모든 것을 하루하루 참고 견디었습니다. 모든 게 저의 어리석은 욕심에서 이런 고통을 받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땐 시어머님따라 다니던 절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논현동에서 어떤 보살님을 만나 불광법회에 다니게 되어 조금씩 저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저 다니면서 절만 하던 다른 절하고는 달리 무언가 공부할 수 있어서 우선 내 마음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억제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큰스님의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열심히 기도하고 매달리면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지압하러 다니는 틈틈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마다 나오게 되어 논현 법등 식구가 되고부터는 불법은 내가 내 마음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깨우쳐 내가 나를 바꾸는데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때부터 법등 모임에 꼭 참가하고 매주 정기법회도 빠짐없이 참가하며 불광에서 가르치는 조석 일과를 확실히 수행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항상 남에게 고운 말 밝은 말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남을 위하는 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 만나면 모든 고통에서 쉽게 벗어날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저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헤어져 살던 남편이 고마워 저는 부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젠 지난 날로 다시 돌아가나 보다 하고 너무나 기뻤습니다만 기다려봐도 남편만 한달에 한번씩 오고 갈 뿐 시어머님께서는 저를 부를 생각조차 하시지 않았으며 제가 있던 집에서 방을 내놓으라고 까지 해서 저는 어떻게 해야 될 지 막막했습니다.
이럴 대 전 큰스님께서 “행복하고 편안하려면 행복한 마음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위해 베푸는 마음, 자신의 진실 참생명을 회복하여 오직 일심 모두를 다 바치는 정성어린 기도 정진을 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 생명 다바쳐 꾸준히 실천하여 항상 제가 원하고 발원하는 가정으로 돌아가 훌륭한 아내의 위치, 어머니의 위치에 자신있게 서겠다는 일념으로 기도했습니다. 일과정진을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해서인지 10여년을 가까이 떨어져 살던 시집에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내 자식들과 함께 살며 내손으로 밥을 지어 줄 수 있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저는 너무나 기뻐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의 크신 은덕이며 불광법회와 인연을 맺은 힘이라 생각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부처님을 잊지 않으리라. 다시는 어리석은 욕심부리지 않고 매주 일요일 큰스님 법문 놓치지 않으리라는 생각 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정으로 다시 돌아와 생활하니 10년 가까이 떨어져 살아온 고통 못지않게 또 다른 고통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저를 똑바로 대하지 않으셨고 제가 금전적인 사고를 저질러 그런지 전연 살림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거기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인지 엄마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적었습니다. 막내는 엄마라는 소리조차 하지 않았으며 모든게 시어머님 위주로 되었습니다. 전 너무 괴롭고 섭섭함과 미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동서나 시누이 역시 일하는 사람을 구해다 놓은 것 같이 저를 대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혼자있는 동안 법회에 나가면서 바른 말 밝은 말 참된 행동만 하자고 마음먹은 게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혼자 살아온 생각을 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어떠한 어려움도 참아야 한다고 했지만 갈등은 자꾸만 생겼습니다.
온갖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도 법회는 다시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에 법회에 나간다는 것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쉬는 날이라 모두가 늑장을 부리는데 인정도 받지 못하는 제가 일요일 외출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법회가 끝날 무렵에 법당에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늦었습니다만 차츰 당겨져서 이젠 법문할 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일요일마다 법회에 참석할 수 있고 매회 제등행렬 순례법회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집이 가락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법회 후 버스 안에서 송파6구 구법회 임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보살님이 이 동네로 이사왔으면 여기 법등 식구가 되라고 했습니다만, 여러 번 망설이다 몇 번 이야기를 함께 하다가 89년 10월 29일 문현법등 식구가 되었습니다. 한 동네 살기 때문에 법등 식구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논현법등에 있을 때보다 친숙해졌지만 가정 형편상 시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에 법등가족 모임도 집에서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인데 문현 법등 바라밀 부촉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은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우리집 전화번호를 잘 가르쳐 줄 수도 없는 형편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 거절하고 미루다가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나를 빨리 성장시키고 공부를 더 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고 복잡한 생활 환경 속에서 바라밀 부촉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촉을 받는날 어둡고 답답한 제가 큰스님 앞에서 부촉을 받는 순간 앞이 환하여 너무나 감사하여 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송파6구 명등 보살님과 문현 법등 마하보살님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보니 남편은 무엇때문인지 화가 잔뜩나서 저에게 가정주부가 살림을 위주로 하지 않고 무엇하느냐며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불광법회에서 임원부촉을 받았으니 임원의 임무를 더욱 성실히 수행하여 참나를 되찾고 중간에 일시 어둠이 깔리던 나의 가정은 찬란한 태양처럼 밝은 가정으로 반드시 회복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반야행보살이 반야행을 통하여 나의 가정은 물론 법등 가족에게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습니다.
우리 불광의 가르침은 기도정진과 올바른 행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제10기 바라밀 교육을 수료하고 지난 7월 27일 여름철 50일기도 입재일에 저의 기도성취를 확신하고 이번 50일 기도 기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 정진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의 가정에 밝은 태양빛이 새로 솟아나게 하고 제가 문현법등의 바라밀보살로서 온 법등 가족의 조석일과 수행정진에 앞장서서 법등을 크게 활성화할 것을 부처님전에 서원하고 그 실천을 다짐합니다.
저에게 삶의 빛을 새로 주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크신 은혜, 법주 스님의 가르침, 우리 모두 함께 성장을 도와주신 법우 형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