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法頂) 스님의 글

선심 시심

2007-10-15     관리자

시끄러운 도시생활과 복잡한 인간관계의 틀 속에서 불현듯 벗어나고 싶을 때, 나는 으레 법정 스님의 글을 읽는다. 그 조용한 가운데 물 흐르듯 흘러가는 글 속에 잠기다 보면 어느덧 들떴던 마음은 가라앉고 맑은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듯하고 산봉우리를 한가히 넘어가는 흰 구름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한 없이 편안해 진다.
그의 글은 우리에게 한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깨워 준다. 불교적인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자비를 촉촉이 적셔주고, 고담준론이 아니면서도 은연중 우리의 잠자는 무명의 마음을 일깨워 준다. 그의 글은 난해한 설법이거나 난삽한 이론의 개진이 아니다. 세상을 울리는 사자후(獅子吼)는 더욱 아니다. 그의 글은 평이한 말과 평범한 이야기, 그리고 담담히 흐르는 문장을 통하여 인생의 참뜻과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넌지시 우리에게 일러 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불교의 진리를 일깨워 준다.
다음으로 그의 글은 현대의 문명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잊혀진 청정한 자연을 되찾게 해 준다. 빌딩 사이로 보이는 공해에 찌든 도시의 하늘, 그 하늘에 윤곽조차 희미하게 떠 있는 퇴색한 달, 온통 청각을 마비시키는 거리의 소음, 이 모든 문명사회의 오염으로부터 맑고 푸른 하늘, 밝고 깨끗한 달, 그리고 그윽한 태고의 정적을 우리에게 되찾아 준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자연은 살아 숨 쉬는 자연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달이 지고 구름이 가며 꽃이 피는 소리까지도 들린다. 그는 그 속에 한 마리의 새, 한 그루의 나무나 꽃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의 자연은 객관적 대상이 아닌 주객일여의 자연이다. 법신(法身)의 현현이다. 원래의 자연을 망각하고 사는 우리가 그의 글에서 이러한 유현(幽玄)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그는 출가한 스님이다. 그리고 대개 깊은 산중에 외로이 산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초현실의 은둔계가 아니다. 범부중생과 거리가 먼 탈속한 청정계는 더욱 아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항상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그저 항상 우리가 스스럽지 않게 만나는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 시골길을 달리는 시외버스의 혼잡 속에 벌어지는 이야기, 치열한 삶이 아우성치는 시장바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물밀듯 구비치는 도시의 인파 속에서 듣고 보는 하찮은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 속에 항상 서 있는 그는 알지 못할 고차원의 선어(禪語)로 우리들에게 군림하는 고승이 아니요, 많은 부녀 신도들의 신앙으로부터 우러름을 받는 명승도 아니며, 박사학위를 60개 가까이 가지고 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님도 아니다. 또 괴이한 언어와 기이한 행동으로 자못 신비로움을 자아낸다는 걸승은 더욱 아니다. 그는 그저 우리의 친절한 도반(道伴)이요, 정다운 동학(同學)이다. 그리고 언젠가 낯익은 어느 시골 산길에서 마주쳤던 소박한 인상의 우리 이웃과 같은 그런 분이다.
그의 글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의 그를 발견한다. 방에 들어온 벌 한 마리가 쫓아내려고 내두르는 죽비에 맞아죽자 이를 한없이 가슴 아파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며(모기 이야기), 수련을 하는 학생들에게 서 너 시간 이야기를 해주고 나서 지식과 담화의 지나친 지출에 허전함을 느끼고 끝없이 후회스러워 하는 약한 마음을 지닌 분이다(소리 없는 소리). 그런가 하면 물질 만능의 미신에 도취된 현대의 전도된 가치의식을 날카롭게 꼬집고, 과학과 산업중심의 근대화가 가져 온 인간정신의 황폐를 준엄하게 고발하는 강렬한 비판의식을 보여주기도 하며 (우리 시대를 추하게 하는 것들), 선거기간 유권자에게 굽실대던 입후보자가 일단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권위주의적으로 오만해져 국민의 위에 군림하려는 그릇된 정치의식을 가차없이 매도하여 정론(正論)을 펼치는 예리한 논객(論客)이기도 하다 (90도의 호소).
모든 그의 글들은 평범하면서도 적절한 언어의 선택, 읽을수록 감칠맛 나는 표현의 묘미, 물 흐르듯 전개되는 문장의 구사,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오묘한 진리로 하여 우리들을 항상 사색의 심연으로 인도한다. 이는 갈고 닦는 문장수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고민하며 쥐어짜는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르익은 인격의 바탕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생명의 소리요 진리의 소리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시다. 선시(禪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