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과 한국사회

현대인의 정신위생

2007-10-13     관리자

  며칠 전에 오랜만에 지방엘 다녀왔다.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몇 년 동안은 한 달에 두 번씩 주말에 가서 정신과 의사들을 지도하러 다녔었다. 재작년 부터 서울에 일이 많아지고, 서울에서 국제학회를 준비하느라 틈이 나질 않다가 간신히 시간을 내어 국제학회 준비 때문에 내려 갔었다.

  옛날에는 처음 몇 년동안 아이들이 승차해 있으면, 떠들고 의자 위에 올라가서 승객을 놀라게 해도 부모들이 말리지 않고 내버려 두고 다른 손님들도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가끔 내가 나무라면 어떤 어머니는 ,할아버지 [이놈]하신다고 아이를 단속하는 어머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도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그러한 광경을 보지못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4~5살 되는 아이 서너 명이 소리를 지르고 통로의 끝에서 끝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어디에 부딪칠 것같고 시끄럽고 조마조마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인데 아무도 그것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나 부모를 대신할 사람이 있을 터인데 그런 사람이 있는 것같지 않았다. 검표를 하고 있는 차장도 검표를 하면서 말이 없다가 아이들 좌석 근처에 이르자, 아기 어머니 어디 있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느냐고 몇 마디 하고는 언짢은 표정을 하며 다음 칸으로 갔다. 그리고 나서 한참 동안 은 조용한 것닽더니 또 다시 시작이 되는데 말리는 사람이 없어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타일렀다.

  [아이를 저렇게 길러서 어떻게 하려고 하나] 했더니, 승객의 한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싫지 않은 표정으로 요새도 저런 사람이 있는가 하고 약간 신기한 듯한 표정을 했다.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떠들고 다른 승객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 자식이 어떻게 되는 줄도 아랑곳 없는, 그리고 승객들이 아무 말이 없는 광경을 보는 순간, 바로 그날 신문마다 크게 보도한 청소년 강력범이 번개같이 머리에 떠올랐다.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이런 아이들이 그런 범죄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꼭 손을 잡아도 두려워하거나 자기가 잘못했다는 기색이 없었다. 아이를 방치하는 어른들, 두려움이나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는 아이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축소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

  우리나라의 금융 사고나 모든 부조리가 다 이런 데서 비롯된다. 사업이나 정치하는 사람, 노동자할 것 없이 어떻게 보면 이러한 아이들 이상 성숙이 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들 말하는 것이서너 살 짜리밖에 되지 않는다, 공정한 입장 서로의 입장을  감안해서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린애가 떼를 쓰는 것같은 일방적인 요구만을 한다. 남이 어떻게 되든가 아랑곳 없다.

  대표적인 예가 건설관계에서 치부하는 과정이 이렇다 하는 것을 어떤 친구는 나에게 말해준 일이 있다. 부실공사를 해서 다 부자가 되었다는 얘기다. 벼락부자, 벼락출세의 본보기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착실하게 꾸준히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바보로 보인다. 쉽게 들어온 권력과 돈이기 때문에 헤프게 쓴다.집도 제대로 있을까말까 하는 영관급들이 구악을 일소하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한다고 구테타를 일으킨 젊은 군인들이 권력을 잡고는 구악을 빰치는 치부를 해서 수십 억 수백 억의 자산을 모아 접대부에게 얼마짜리 수표를 뿌렸다고 신문에 보도된 일이 있다.

  근래에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어떤 재벌은 여자에게 억대의 돈을 팁으로 준다는 말이 돌고 있다. 10대 20대의 강도는 이들을 모방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공통점은 절제가 없고, 죄악감이 없고, 타인에게 미치는 자기 행동의 영향에 대한 고려가 없다.

  15년 전에 미국의 저명한 의과대학의 정신과 주임교수로 있던  미국 교수가 서울에 와서 한 얘기가 생각난다. 미국 학생들은 교수 말을 안 듣고 어른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서 청소년 범죄가 늘고 청소년의 정신장애가 불어나고 전공의를 3년간 교육을 해서 수련을 마치고 내보낼 때 교수들이 파티를 열어주면 교수에 감사하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그동안 내조를 해 준 아내에 감사한다. 그동안 대화를 나눈 동료 전공의에 감사한다는 인사만 하고 단상에서 내려간다고 하며, 의과대학 학생들도 강의를 듣다가도 재미가 없다고 그냥 나가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어떠냐고 묻길래 우리는 아직 그런 문제는 문제가 되어있지 않다고 했더니 두고 보라고 했는데, 지금처럼 강력범의 54%가 10대고, 40%가 20대라는 엄청난 숫자와 속도는 일본이나 미국을 능가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한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미리 예측을 해서 대책을 세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나 경제, 모든 것이 눈 앞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지, 연기나 적은 불 정도는 문제를 삼지 않는다. 공해에 대한 대책, 모든 것이 즉흥적이고, 일시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없다. 요사이는 불이 자주 떨어지기 때문에 좀 정신이 나서 종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국가 백년대계란 관점에서 보면 거리가 멀다.

  청소년 문제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근본적 병폐에 그 뿌리가 있다는 관점에서 대책이 없이는 절대로 해결이 될 수 없다. 공개 처형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청소년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볼 문제다. 올바른 해결은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끔 되었는가 원인을 알아서 고치기 전에는 근본적인 해결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장, 단기 대책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문제는 어른들의 본보기가 좋지 않고 청소년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결여되고, 그들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없고, 부모나 학교 사회에서, 교육을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 공부나 출세를 앞세우는 풍토에 서는 바른 인간다운 인간이 줄어들 것은 뻔한 노릇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가정과 사회 국가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물심양면으로 대우를 받는 풍토가 되어야 하고, 벼락부자나  벼락 출세가 없어야 되고, 있다 하더라도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멸시의 대상이 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어른이 없어졌다는 데 청소년 문제의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뒤집어서 말하면 어른이 어른답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여러 해 전에 유네스코 보고에 남녀동권으로 범죄가 불어난다는 것이 보도된 일이 있다. 쉽게 말해서 자라나는 어린이를 자기 행동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길은, 어린이가 해도 좋은 것, 해야 할 것, 해서는 안 될 것을 어른이 통제하는 데에서 길러지는데 어른이 없음으로서 이러한 통제가 없어진다.

  어른이 없으면 동시에 진정한 사랑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 문제는 어른들의 좋은 본보기와 과거의 한국처럼, 어린이나 젊은이는 전국민의 아들 딸로서 도처에서 사랑 받고, 도움 받고, 감독 받는 것뿐이라고 미국의 잔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1920년 경북 왜관 출생, 의학박사, 대구 의전 졸, 각 대학교수 역임,

  현재 동북정신과 의원장, 한국정신 의료학회장이며 <현대인과 노이로제> 등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