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공(色空) 및 영겁불망

특별기고 : 해탈에 이르는 길[8]

2007-10-13     관리자

   일체 만법이 불생불멸이며 부증불감이다. 모든 만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상주법계―항상 모든 것이 주(住)해 있는 법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만물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겉으로 봐선 생사변화하는 것 같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하나도 멸하는 것이 없고 윤회를 한다. 윤회는 정신계에서 만이 아니고 물질계에서도 윤회 안하는 것이 없다. 윤회의 대법칙은 종래 인도사상, 힌두교나 불교의 독특한 사상인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최근 정신과학, 물질과학이 발달되면서 윤회 안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확정된 것이다. 여기까지 지난번에 이야기했습니다.

     [1] 자유자재한 세계

   그러면 상주법계는 항상 상주하여 있을 뿐인가? 상주, 즉 불생불명에는 꼭 따르는 것이 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즉 공이고, 공이 즉 색이다 하는 것입니다. 유가 즉 무요, 무가 즉 유다. 생이 즉 사(死)요, 사가 즉 생(生)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애법계(無碍法界) 거리낌 없는 법계라고 합니다. 자유자재한 법계라는 말입니다. 상주법계를 피상적으로 볼 때, 생사윤회의 세계라고 한다면 무애법계는 해탈자재의 세계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등가원리에 있어서 질량이 곧 에너지고, 에너지가 곧 질량이라는 데에서도 충분히 설명이 되었겠지만 오늘은 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참으로 생사자유한 대해탈 경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유형이 즉 무형이고, 무형이 즉 유형이다. 그렇다면 문이 닫혔을 때 그 문을 열지 않고 나갈 수 있는가? 금고 속의 돈을 금고 문을 열지 않고 꺼낼 수 있는가 ?
   금고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은 유형인데, 무형이라면 그것이 공이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즉 금고 문을 열지 않고도 그 속의 돈을 꺼낼 수 있어야만 실제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실천되는 것이지, 만약 문을 닫아 두어서는 돈을 꺼낼 수 없다고 한다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무애」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 4차원 세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4차원(四次元)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의 세계는 3차원의 세계인데 여기에 시간의 차원을 더하면 4차원이 됩니다. 3차원에서 볼 때는 4차원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융합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금고 속의 돈을 금고 문을 열지 않고도 자유자재하게 꺼낼 수 있으며, 또한 문을 닫아 두고도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만 내면 해인사에 앉아서 천리만리 밖에도 갈 수 있는 자유자재한 그런 세계입니다.
   우리 옛 소설에 신동이 자유자재한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이름 따서 한국의 학자들은 4차원의 세계를 <홍길동 세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표현입니다.
   4차원의 세계를 처음 제창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이지만, 수학적으로 완전히 계산하여 체계를 세운 이는 민코프스키(Hermann Minkopski)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수학적 체계를 완성한 후의 첫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통의 일상적인 생활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앞으로는 시간과 공간은 해소 융합되어 시간이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 되는 세계가 올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자유자재한 세계, 신통의 세계, 기적의 세계가 전개될 것이다.』
   이것이 소위 4차원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가공의 망상적인 세계가 아니고 실제 자꾸 자꾸 어떤 능력을 쌓아 나간다면 그런 세계에 들어 갈 수 있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이 방면에 대해 많은 연구가 행해지고 있는데 심리학 방면에서는 초심리학(para psychology)이 이런 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실증적 연구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타임지에 관한 특집이 나왔습니다.
   과학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110여 개 대학에서 정식으로 초심리학에 대한 강좌를 열어 강의를 하고 있으며, 또 소련의 경우, 그곳은 순 유물론의 나라인데도 160억 원이나 되는 막대한 예산을 편성하여 정식으로 정부에서 4차원 과학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초능력이란 것이 허황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허공의 구름을 붙잡아서 구워 먹는 그런 식이 아닙니다.

     [3] 놀라운 기적의 세계

   예를 들어 군사방면을 보면, 잠수함이 바다 깊은 곳에 잠수한 경우, 물 위와의 전파가 잘 통하지 않아서 통신이 잘되지 않습니다. 이때 정신력으로 잠수함에 대해 어떤 지시를 해보면 약 70% 정도는 성공한다고 합니다. 보통 상식으로 생각할 때, 전파가 잘 통하는데 정신력으로 무슨 지시를 할 수 있겠습니까만 이것은 대단한 성공률입니다. 또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간에 정신력에 의해 통신을 해보면 서로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선보다도 훨씬 더 힘이 강합니다.
   이런 실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무한한 능력이 있어서 이것을 자꾸자꾸 개발하면 기적이 확실히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런 무한한 능력은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고, 물질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질량에 포함되어 있는 에너지는 이를 계산하자면 아주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즉 질량에 광속도를 제곱하여 곱한 값(E=mc²)입니다. 그러니 그 값이 어마어마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이 이론을 처음 발표하니 온 세상 사람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저 정신없는 사람, 공부한다고 잠도 안자고 연구한다더니 결국 정신이 돌아 버렸군. 세상에 질량에 광속도를 자승한 값을 곱한 그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물질에 포함되어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며 모두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과학에 지식이 있는 사람은 그 말을 허황하게 듣지 않고 자꾸자꾸 연구한 결과, 결국 원자폭탄이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물질에 대한 막대한 에너지, 물질에 대한 초능력은 원자탄이 실현되어 그 일부를 증명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이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몽상가가 아니다 하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말입니다.

     [4] 정신적 초능력

   그러면 정신력에 있어서의 초능력은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는가? 그 대표적인 경우는 이미 이야기한 캐논 경의 연구입니다. 그는 여러 권의 다른 책들도 저술하였습니다만, 이미 소개한「인간의 잠재력(The Power Within)」이라는 책 속에서 몇 가지 실험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런 실험을 할 때는 런던에서도 커다란 홀에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서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으로 볼 때는 인간은 눈을 감으면 볼 수 없고 눈을 떠야만 볼 수 있습니다. 눈알이 빠져버리고 없어진 사람은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아닙니까. 눈 없는 사람이 어떻게 볼 수 있으며, 눈 감고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실제 인간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본래 능력, 본래 시력(視力)은, 눈을 뜨고 감는 데에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눈을 떠야만 볼 수 있고 감으면 볼 수 없는가? 그것은 의식 세계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잠재의식을 거쳐서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면 눈을 뜨고 감고, 눈 있고 없고에 관계없습니다. 무의식 세계에서는 두 눈이 다 빠져버린 사람도 무엇이든지 볼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본래 시력이라고 캐논 경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5] 눈 없이 본다

   그리하여 그는 실험을 해 보였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모아두고, 두 눈에 철판을 대고 수건으로 겹겹이 둘러 싸매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이든지 다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모두 알아보는 것입니다. 철판을 눈에 대고서 보는데 그 눈에 원근이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우리 불교에서는 천안통(天眼通)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의 천안제일은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존자입니다. 경전에 의하면 그는 하도 졸음이 많아서 그것을 없애려고 전혀 잠을 안자고 공부를 계속하다가 결국에는 두 눈알이 다 병들어 빠져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보통의 눈, 육안(肉眼)이 없어진 대신에 마음의 눈, 심안(心眼)이 열려서 삼천대천세계, 백억세계를 손바닥의 구슬같이 환히 보는 것입니다. 요즈음의 2백 인치 망원경이니 하는 것은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리하여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에서 천안제일 아나율 존자는 눈이 없습니다.
   누가 들어봐도 거짓말 같지만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3천년 후의 정신과학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캐논 같은 사람은 눈이 없는 사람, 또 시신경이 완전히 파괴되어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거나 비관하지 말라고 하면서 오직 무의식의 세계를 개척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면 눈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6] 마음을 읽는다

   그렇다면 남의 마음도 알 수 있는가? 무의식의 힘을 사용하면 누구든지 남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타심통(他心通)이라고 합니다.
   캐논 경은 이렇게 실험을 해 보였습니다. 많은 모인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나머지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말이나 글로써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한다 말입니다. 생각으로만!
  『내 직업은 무엇입니까?』
  『간호사입니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합니까?』
  『실직(失職)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취직이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12일 후면 신설되는 병원에 취직될 것입니다.』
   과연 전부 맞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것으로 볼 때 남의 마음을 알 뿐 아니라, 미래도 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달 로켓, 우주선만 해도 금토끼 옥토끼 사는 곳에 미국 사람들만 가라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이 내려 보내준 것 아닙니다. 그렇다고 화성인이 가지고 온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서 개척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 말입니다. 앞으로도 또 얼마나 더 큰 능력을 개발하게 될지 아마 우리 인간 자신이 놀랄 것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