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의 어원

이남덕 칼럼/한국인의 광명사상

2007-10-11     관리자

단군(檀君)의 뜻풀이
개천절날 광덕스님은 광명을 주제로 하여 단군(檀君)의 어원풀이로 시작하셨는데, 단목(檀木)이 <박달나무>이니 그것은 <밝다>는 말과 관계있고, 그뿐 아니라 환인. 환웅(桓因 桓雄)의 <환>음도 광명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하셨다.
나는 가끔 스님들의 직감적인 어원 해석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때가 있는데, 우리 같이 직업적인 말쟁이(어학자)들은 이것저것 아는 것을 주워대다가 보면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에 더운 감탄하는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崔南善新訂本)에 단군은 <壇君>으로, 신단수 단수(神壇樹. 壇樹)등 도<檀>자로 통일하여 쓴 것으로 미루어, 저자인 一然스님은 제단(祭壇)의 <壇>을 의식한 것 같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도 ‘壇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 지냈기 때문에 단군(檀君)이라 이름 하였다.’고 풀이하고 있다. 하기야 하늘에 제사 드리는 데 설단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자연숭배의 원시종교에서 산천이나 집밖에 제단을 차릴 때 큰 나무에 의지하였음도 이해되는 일이니<檀>이나 단<壇>이나 별 차이 없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옴 <제왕운기(帝王韻記)>에는 <神壇樹下><檀雄天王>등으로 기록되어 박달나무 <檀>자를 쓰고 있다. 요즘 유포되고 있는 상고사 부분의 서책에도 거의가 <檀君>으로 되어 있고 신단수도 <박달나무>로 이해되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랜 생각의 반영으로 보인다. 역사가들은 단군의 어원에 대해서, 위에서 든 설단제천(設壇祭天> 설밖에도 몽고어의 <하늘>을 의미하는 텅거리(tengri)의 음사(音寫)설(崔南善<古事通>)이 있으나, 정작 어학자들의 학설은 조심스러운 문제라 아직 확정적인 것이 없는 형편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이전의 기록은 우리 고유한 말도 한자(漢字)를 빌어서 기록했기 때문에 한자의 뜻을 빌어서 썼는지<訓借>음을 빌어서 썼는지<音借> 그것을 분간해 내는 일이 쉽지 않다. 광덕 스님의 檀君어원설은<박달(檀)을 <밝다(明)>와 관계 지어 푼 훈차(訓借)설이며, 필자가 이 설을 지지하는 데는 예난 우리 조상들의 원시신앙이 태양숭배였다는 점을 상기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하고 많은 신목(神木)들- 엄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제주도 ,퐁낭>등-중에서 왜 하필 박달나무가 건국신화 첫 머리에 등장하느냐 하는데 의문을 가졌어야 한다.

뜰 앞에 박달나무
지금 우리 집 뜰 앞에는 아담한 자세로 박달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아직 다 큰 나무는 아니나 이 근처 깊은 숲속에도 자생하는 나무인데, 성목으로 다 커 봐야줄기의 높이 9~12m밖에 안 된다고 한다. 5월이면 희고도 갈색을 띤 조그만 꽃이 잎새 보다 한층 위로 가지런히 피기 때문에 신비롭고 가련한 맛을 주기는 하나, 단군(檀君)의 표기에 차용해야할 만한 다른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9~10월에 북은 빛의 단단한 작은 열매가 익어서 나무 밑에 떨어지는데 그 맛은 대추처럼 달다. 물질이 단단하여 방망이, 차바퀴 등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것은 다 알거니와 이런 저런 특징을 종합해 보아도 다른 나무들을 젖히고 나설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엄나무는 15~25m의 크기로 자라서 동리 제사 올리는 당나무로 손색이 없으며 손바닥 모양으로 퍼진 나무 잎새는 누루퉁퉁하고 나무에 가시까지 있어서 그 으스스한 분위기는 신목으로의 자격을 구비한 듯이 보인다. 느티나무나 팽나무는 느릎나무과에 속하는 20m가 넘는 거목이며 마을의 정자나무로 친숙한 만큼 국조신화에는 오히려 어울리는 나무다.
박달나무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이유는 그 나무의 특질에서 찾기보다, <박달>이란 말의 어원에서 찾는 것이 정통을 찌르는 깃이라고 생각된다. <박달>은 <밝다>의 <밝>(15세기문헌에는 < ㅂ.ㄹㄱ>)과 <-달>의 합성어인데 뒷부분의<-달>은 엣날 지명에서 <山>이나 <高>의 뜻으로 쓰인 말이니 <아사달(阿斯達)>․<達忽>(高城)>등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단군왕검(王儉)이 나라를 세운 땅 아사달(阿斯達)의 앞부분 <아사(阿斯)는 조선(朝鮮)>의 국호와 관계있다함은 관계학자들이 지적한 바이지만 아사달(阿斯達의) 주(註에) 백악을 뜻한다는 기록있음을 주의 할 것이며, 또 우이도어백악아사달(又移都於 白岳阿斯達에)서 보이는 백악(白岳)도 부합하는 바, 앞에서 말한 <박달>과 <白岳>은 같은 말임을 짐작할 것이다.
<阿斯>는 as-이 그 어원 語根으로 <처음(始)․이른(早)․어린(弟․幼)>의 뜻을 가진 말이니, 우리말에서 <애초, 애당초, 애동지, 애저녁>의 ,애->나,<아시에(경상방언), 아야(함경도),아예>의 <아->등에 남아 있으며, <아침>(아참(朝)도 <이른(早)시간>의 뜻인 <앗참>의 합성이라 분석되는 것이다. <阿斯達>은 <나라를 처음 시작한 땅(山)>이란 의미라고 우선 해석된다. 그런데 <밝다>의 근원은 명사<밝>에서 온 말로 <밝>은 옛알타이족, 즉 우리 조상의 태양 명칭이었던 것이다. <광명의 땅, 태양의 땅>이라는 듯이다.
우리나라 지면이나 고대 기록에 보이는 나라 이름․ 종족이름․ 군왕이름 등에 태양을 의미하는 이 말이 유난히 많은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白岳>은 이를 더 강조하여<大․太․天>字를 위에 붙여서 환웅(桓雄)이 천부인삼간(天符印三簡)를 받아가지고 태백산정 신단수하(太白山頂 神壇樹下)에 내려왔다는 그 <太白山> 이것이며, 전국 각지에 있는 <大白山, 太伯山, 大朴山, 含朴山, 菊樂山(국악꽃=함박곷), 千百山, 長白山(白頭山),天佛山>등 산 이름에 나타나 있다. 양주동(梁柱東) 박사는 이들을 (한발․ 한박 ․한배)으로 읽고 하늘(天)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白岳>의 기록은 밝에 의미의 중심이 있다고 생각된다.

밝다는 열다와 같은 의미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보다 적은 어휘를 가지고 살았으리라 짐작되며, 우리말에서 용언(用言-동사․형용사)어간이 그대로 명사로 쓰인 예들이 있으니 가령<신신다, 되로 된다, 잠자다. 춤추다>등에서 볼 수 있다. 밝다의 경우도 <밝 밝다>란 말이 성립될 가능성이 인정되며 그때의 <밝다>는 형용사의 성질로 보아서 광명의 본체<밝>은 태양이라고 추정되는 것이다. <밝다>는 동사로도 쓰이니 <날이 밝는다, 날이샌다>는 것은 태양이 떠오른다는 말과 관계있으며, 이때의 ,<밝는다>동사는 천지가 <열린다>는 뜻과도 한 뜻임을 인접 언어들과 비교하면 수긍이 가는 것이다. 일본어에서 <밝다․붉다>(明․赤)을 의미하는 말이 akarusi, aka 등으로 마-를 어근으로 하는 한편, 열다(開 aku)도 같은 어원임은 우리의 palk-(밝plk)에서 어두음 p-가 탈락되고 끝자음 -lk가 -k하나로 단순화 되었을 뿐, 같은 어근에서 발달한 어형으로 설명된다.
태양의 가장 오랜 명칭이 <밝>에서 시작 되었으리라는 추정은 여기 한 두 마디의 예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제까지 중국사상이라고 알고 있는 음양(陰陽)사상이 실은 우리의 조상인 알타이인이 말을 만든 시초부처 태양의 운행에서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대칭적으로 파악하고 표현 했던 의미 체계의 뒷받침이 있는 것이다.

신앙인의 광명
한국인은 태양이 있는 하늘을 본 고향으로 생각했고 해가 뜨는 높은 산을 하늘의 연장으로 생각하여 태양숭배는 산악숭배로 이어지는 것이 <박달(밝달)>의 명칭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민족을 배달(倍達)민족이라 함도 ,<밝달>에서 ,배달>로 밝>발>비의 변화를 일으켰을 뿐 같은 말이다. (새밝>새배>). 빛을 찾아서 동진해 온 우리민족의 한 갈래는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로 이주하였으니 그들이 자기 나라를 akitu-kuni, akitu-sima라 한 것은 ak-가 바로 앞에서 본 밝(太陽․ 光明)어근과 대응됨을 알 수 있다.
원시 고대인은 태양이란 구체적인 자연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었으니, 후대의 추앙적 이거나 관념화된 종교사상보다 직접적이고도 생생한 외경심을 가지고 살았으리라고, 아침마다 해 뜨는 광경을 보며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오늘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구체적 실존 진리를 관념으로 파악할 때 진리가 추상 진리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항상 태고의 한국인이 가졌던 광명사상을 오늘에 되살리는 신증심오(身證心俉)의 수행이 그 중심에 있지 않으면 빈껍데기의 삶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