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東湖)의 물

선의 고전-마조어록10

2007-10-11     관리자


21.약산의 참청
약산유엄(藥山惟儼)선사가 처음에 석두(石頭)선사를 참배하고 물었다.
‘삼승(三乘)12분교(十二分校)에 대하여는 제자도 대강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상 듣기에, 남방에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화상이시여 자비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석두 선사가 말했다.
‘이렇다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옳지 않고, 이렇든 저렇든 다 옳지 않다 하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약산은 할 바를 몰랐다.
석두가 말했다.
‘그대의 불법 인연이 여기에는 없다. 마조대사에게 가려무나.
약산은 분부를 받들어 마조를 찾아가 정중히 예배드리고 거듭 앞서와 같은 질문을 하였다.
마조가 말했다.
‘나는 어떤 때는 저에게 양미순목(楊眉瞬目) 시키고 또 어떤 때는 저에게 양미순목을 시키지 않으며, 또 어떤 때는 양미순목 하여도 옳고, 어떤 때는 양미순목하는 것이 옳지 않다. 그대라면 어찌 하겠는가.
약산이 단번에 깨닫고 예배했다.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어떤 도리를 보았길래 예배하는가.’
약산이 말했다.
‘저는 석두화상 휘하에 있었을 때에는 크기가 철우(鐵牛)등에 앉은 거와 같았습니다.’ 마조가 말했다.
‘그대가 이미 이와 같으니 스스로 잘 지켜가라.’
약산이 시봉하시기는 3년이 되었는데 어느 날 마조가 물었다.
‘그대의 최근의 견해는 어떠한가.’ 약산이 말했다.
‘피부가 다 빠져 오직 일진실(一眞實) 뿐입니다.’
마조가 말했다.
‘그대의 견해는 심체(心體)와 하나가 되고 수족 끝까지 뻗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대가 이미 이와 같을 진대 3가닥 새끼로 배를 둘러 감고서 어느 곳이든 가서 살거라.’
약산이 말했다.
‘저를 어떻게 아셨기에 산에 머물라 하십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항상 걷고 있어 멈추지 않는 자는 없고, 또한 항상 머물러 가지 않는 자도 없다. 그대는 여기 머물러 더 얻으려 하여도 얻을 것이 없고, 하고자 하여도 할 것이 없다. 그러니 마땅히 물에 띄운 배처럼 되는 것이 좋다. 이산에 더 오래 머물지 마라.’ 약산은 이윽고 마조를 하직했다.

註●약산유엄(751-834): 성은 한씨. 산서성 광주에서 낳았다. 17세에 출가하여 서산 혜조(西山 慧照)선사에 배웠다. 하루는 생각하기를 ‘대장부 마땅히 법을 여의고, 스스로 청정해야 한다. 어찌 궁색하게 작은 행에만 얽매여 일을 삼으랴.’ 반성하고 석두스님을 찾아 갔다. 오도 경위에 대하여는 앞에 보이는 바와 같다. 정원(貞元 785-804)초에 예주 약산에 있으면서 설법 교화했다.
●삼승12분교: 삼승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을 말하고, 12분교는 일체 경을 형성내용에서 12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경, 중송, 수기, 본사, 본생, 방등, 미증유, 논의 등이다.
●직지인심: 선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대표적 언구다. 심성을 밝게 보아 불성을 자각한다는 말이다.
●양미순목(楊眉瞬目): 눈썹을 치켜 올린다다든가 눈을 깜박거리는 것을 말한 것인데 혹은 웃고, 기침하고, 언동 하는 모두를 뜻한다.
●3가닥 새끼: 새끼를 꽈서 허리에 둘러 허리띠를 삼음. 옛 은자(隱者)의 생활을 생각게 하는 말이다.


22.천연(天然)의 내력
단하천연(壇下天然)선사가 재차 마조에 참예했을 때다. 마조 선사에게 아직 인사도 하기 전에 불쑥 승당에 들어가 성승(聖僧)의 목을 타고 앉았다. 때에 대중이 놀래어 급히 마조에게 알렸다. 마조는 몸소 승당에 들어와 이 광경을 보고 말하기를 <나의 제자 천연 이로구나> 했다. 단하는 곧 땅으로 내려와 마조에게 예배하고 말했다.
‘스님께서 법호를 내려주신 것은 감사합니다.’ 이래서 천연이라 불렀다.

●단하천연: 처음에 유학을 공부하고 방거사와 함께 과거를 보러 가던 도중 행각승의 권고로 마조스님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다시 마조의 지시로 석두스님에게 가 2~3년을 근고하고 출가했다. 운수 행각을 즐겼고 혜림사에서 목불을 불살라 불을 쬔 이야기는 소문난 이야기다. 원화(元和)3년(808), 낙경 천진교에 누워 있는데 유수역 정공(鄭公)이 지나다가 호통을 쳐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를 물은 즉 무사승(無事僧)이라 말했다. 정공이 기이하게 보고 매일 공양을 올렸다. 만년에 단하선에 들어가 머무르니 많은 학자들이 모여 큰 절이 되었다.
●성승: 승당 중앙에 모신 보살상이다. 대개는 문수보살을 모시고 때로는 수보리 존자, 또는 마하가섭 존자를 모시고, 혹은 빈드로 존자, 교진여 존자를 모실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관례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관행이 전해온다.

23.혜랑의 불지견
담주(潭州) 헤랑(慧朗)선사는 처음에 마조에 참예하자.
마조가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구하고자 왔는가.’
‘불지 견(佛智見)을 구합니다.’
마조가 말했다.
‘부처님에겐 지견이 없다. 지견은 곧 마(魔)일 뿐이다. 너는 어디서 왔는가.’
‘남악에서 왔습니다.’
‘너는 남악에서 왔으면서도 아직 조계(曹溪)의 심요(心要)를 모르는구나. 너는 속히 저 곳으로 가라. 딴 곳으로 가면 안 된다.’

●혜랑선사(慧朗 738~820): 광동성 곡강(曲江)에서 낳다. 13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계를 받고, 마조 화상을 참배 했다. 뒤에 초제사(招提寺)에 30여년을 머물면서 호를 초제랑(招提朗)이라 했다.
●불지 견: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법화경에는 이렇게 보인다. <제불세존은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 견을 열어 청정을 얻게 하고자 세간에 출연하신다. 중생에게 불지 견을 보이시고자 세간에 출현하시고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도에 들게 하고자 세간에 출현하신다.>
불지 견에 대하여 석두선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전등록)‘나의 법문은 선불(先拂)로부터 전수한 바로써 선정정진을 논하지 않고 오로지 불지 견에 달할 뿐이다. 즉심즉불로써 심. 불. 중생과 보리와 번뇌가 이름은 달라도 체는 하나다. 삼계(三界) 육도(六途)는 오직 마음이 나타난 바로써 물에 비친 달이며 , 거울 속의 형상이니 어찌 생멸이 있겠는가.’
불지견이 부처님의 무상 지를 뜻하는 데 비하여 <지견은 마(魔)>라 한 지견은 , 좀 사정이 다르다. 앞의 불지 견은 절대지, 무분별 지리고 한다면 후자의 지견은 분별지다. 혜랑이 불지 견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을 마조는 지적한다. 이런 지견은 성도에 방해가 되므로 마(魔)라고 한다.

24. 동호의 물
마조가 어느 승(僧)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호남에서 왔습니다.’
마조가 물었다.
‘동호(東湖)에 물이 가득 찼던가.’
‘아니요.’
마조가 말했다.
‘그렇게도 오랜 비가 내렸는데 물이 아직도 차지 않았던가.’
도오(道吾) 가 말했다.
‘가득 찼습니다.’
운암이 말했다.
‘가득가득 넘쳐 납니다.’
동산(洞山)이 말했다.
‘어느 겁 중에 일찍이 물이 말랐겠습니까.’

●동호: 여기서 동호는 동호이든 서호이든이 문제가 아니다. 동호의 물을 문제 삼은 마조는 자신의 심수(心水)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도오, 운암, 동산선사가 제각기 견해를 말하고 있다. 그렇게도 오랫동안 내린 비는 감로법우를 지칭한 말이다.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설하신 법문은 법우(法雨)인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