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양거사의 섬기행] 강화도 전등사를 찾아서

망양거사의 섬기행

2007-10-08     관리자

민족의 역사와 함께하는 섬

육지에서 바라보면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빤히 보이는 섬이 강화도다. 한 때 강화 인삼과 왕골로 만드는 화문석이 유명했던 외딴 고장이었지만 지금은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육지와 다름없이 되었다. 강화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다.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마니산 정상에 있고 정족산에 있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축성했다고 전해온다. 예로부터 물길을 따라 서울로 드나드는 입구에 있다 보니 강화도는 수많은 전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징검다리 서너 개만 놓으면 건너 뛸 것 같은 저 좁은 물길이 민족 수난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한 적이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등을 겪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영욕을 같이 했던 곳이다.

전등사를 찾아서

섬 여행을 하면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걸망 하나 달랑 메고 서울 신촌에서 강화도 가는 버스를 탔다. 강화도의 정족산 입구에 있는 온수리에서 하차하여 이정표를 살피는데 ‘전등사’라는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 창건한 고찰 입구에는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무 같기도 하고 배추뿌리 같기도 한 강화 특산물 순무를 팔고 있다. 고조선 시대의 산성인 삼랑성 동문을 들어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묘한 전율을 느끼며 성채 안으로 들어서니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당시 참전했던 군관들과 병사들의 전공을 기리고 있다. 이내 별천지의 숲 속 길로 접어들 즈음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 지는가 했더니 여기가 바로 전등사가 아닌가. 일주문 대신 대조루라는 누각을 통해서 경내로 들어서면서 섬을 찾아 바람처럼 떠도는 이 몸이 이곳 강화도에 왔다는 사실을 부처님께 합장하며 신고했다.
종무소로 가서 범우 스님을 뵙고 예를 올리니 스님께서는 지난 10월 말 여기 전등사에서 ‘생명의 빛, 나눔의 기쁨’이라는 주제로 삼랑성 문화축제가 열렸는데, 우리들 안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빛을 찾아가기 위한 그림전과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소박한 나눔을 실천하는 행사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인도의 전통악기 연주를 통한 소리여행도 함께 체험한 이날 행사에는 최근 세계적인 스타가 된 황우석 박사도 참석하여 ‘나의 생명 평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많은 신도들의 신심에 불을 지폈다고 한다.
황우석 박사는 지금부터 18년 전에 중병에 걸려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30퍼센트도 안 되는 상황에서 대 수술을 받고 죽기 전에 바람이나 쐬려고 친구와 함께 이 곳 전등사에 왔다가 아무 생각 없이 부처님 전에 엎드려 절을 하는데 콧물이 쏟아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체험을 한 후 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 후 불교에 귀의한 황 박사는 전등사의 신도가 되어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전등사를 찾는다고 한다. 장기간 해외여행 중에도 일시 귀국을 해서라도 전등사를 찾는다니 대단한 불심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실험을 하거나 일을 추진하다가 장벽에 부닥치면 이곳에 와서 부처님을 뵙고 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산사의 부엉이 소리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은 채 전등사 주변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사고와 고려시대의 예비 궁궐터를 둘러보는데 이미 날이 저물어버렸다. 종무소의 보살님께 부탁하여 템플스테이를 하는 방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낮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밤이 되자 썰물처럼 인적이 사라진 정족산 자락에는 애절한 부엉이 소리만 나그네의 객수를 더하게 한다. 겨울밤을 더욱 길게 만들었던 저 추억의 부엉새 소리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데, 정확히 새벽 4시가 되자 무명의 잠을 깨우는 목탁 소리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새벽예불에 참석하니 스웨덴에서 왔다는 구도자의 모습을 한 신사 한 분이 대웅전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있기에 눈인사를 하고는 잠시나마 도반이 된 기분으로 끝까지 예불에 동참하였다. 이 얼마나 큰 인연인가.

섬 기행을 마무리하며

날이 밝자 전란의 역사를 간직한 초지진을 둘러 본 후 마니산 정상으로 향했다. 조선군의 해안 진지였던 초지진에는 외국 열강들의 군함과 전투를 벌인 흔적이 성벽과 노송에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 열두 달 동안 부처님을 찾아 섬으로 돌아다닌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생명의 기가 넘치는 마니산으로 향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세 군데의 생기가 넘치는 자리에 안내 표시를 해놓았다. 하늘과 땅의 맑은 정기를 듬뿍 받으며 참성단이 있는 정상에 서서 부처님의 법이 온 누리에 전해지기를 기원했다. 그 동안 이어온 섬 기행을 여기 마니산 정상에서 마무리 짓지만 나만의 섬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