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의 향기

웰빙/ 행복의 열쇠

2007-10-07     관리자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우연이 아닌 어떤 연기(緣起)의 끈을 발견한 듯한 환희심을 느낀다.
서예가라면 누구나 가져보는 꿈. 크게 한번 자기 글씨를 펼쳐 보여 평가 받고 칭찬 듣고 촉망의 대열에 끼고 싶은…. 그 꿈을 이번에 전시회를 가짐으로써 조금은 실현시켰다면, 어쩌면 자기도취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 같겠지만 지난 몇 년 주제를 ‘반야의 향기’로 정하고, 준비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반야를 잉태한 임부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고른 300여의 부처님 말씀, 조사스님들의 어록, 선시 등 그것들을 한자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문을 곁드리는 일, 또 부처님의 생애 그 과정을 한국적인 ‘서예 만다라’로 꾸며 ‘반야 만다라’라 이름하여 열두 점을 쓴 것 등 그 여러 구상이 마음먹은 대로 붓으로 표현되었을 때는 만세를 부르고 싶도록 기뻤으나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 열심히 했다는 노력이 반드시 그 결과와 등식을 이루는 것이 아닌 것이 예(藝)의 세계이니 배운 만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히 떠올랐다.
넘치게 갈아 놓은 먹물, 기필(起筆)을 기다리는 크고 작은 붓들, 방 가득히 펴 놓은 화선지 그 속에 앉아서 갑자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막연한 절망감은 어두운 밤 모르는 길을 더듬는 미아의 고통 바로 그것이었으니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나는 일단 작은 극락과 지옥의 문전을 몇 번씩이나 갔다왔다 했으니, 장차 갈 때는 좀 쉬울 것이라고 자위하고 웃어도 본다.
여러 사람들이 볼 것이니, 잘 쓰고 못 쓰고의 서예의 몫 이전에 정확한 전달이 아니라면 얼마나 웃음거리인가 싶어 원고를 읽고 또 읽고 하는 동안 내 속에 잠자는 불성이 눈 뜬다.
어떤 때는 글씨 쓰는 것을 잊고 경전에 흠뻑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하였다. 그 대신 더 큰 것을 얻었으니 이 축복을 부처님께 감사 드릴뿐이다.
“전시회 한번 더 한다면 아예 스님 되겠다고 나서는 것 아니냐?”하고 농담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찾다가 선택한 부처님 말씀들, 그것을 향기나게 표현하고 싶어 헤매인 일들, 그 모두가 양식이 되어 나의 불성을 다듬어 주고 있다. 오직 기쁨뿐이다. 이 글의 주제가 ‘행복의 열쇠’라는 것도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그 옛날 서예를 같이 공부했던 L여사가 여행에서 돌아와 시차 때문에 몹시 피곤한데도 전시장에 오셔서 “서 선생 너무 좋으니 누군가 오게 해야지.” 하고 전화를 하더니 「불광」 지의 기자분이 오셨는데, 그 분으로부터 ‘행복의 열쇠’라는 주제로 글을 청탁받았다.
그리하여 앞뒤없는 문맥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내가 이번 전시회를 하면서 내 삶의 행복의 열쇠가 서예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었는데 그 두 가지를 이번에 다 이루었으니 이 무슨 인연인가 싶어 “부처님 놀랍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이 글을 쓴다.
실로 뭔가 보이는 듯하니 행복의 열쇠로 이번 전시회 주제인 ‘반야의 향기’의 엷은 막이 열리고 언젠가 너는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전조 같아서 다만 합장할 뿐이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서윤석 님은 전북 장수 출생, 교사를 역임한 서예중견작가이다. 동방연서회에서 여초 김응현 선생님께 사사받았으며 동방서법탐원회 1기 수석총무, 전국휘호대회 초대작가, 국선 입상작가로 현재 서울 전농동 사거리에서 동연서예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설악산 봉정암을 본사로 삼아 신행생활을 하였다. 불교 전반을 담은 서예전 반야의 향기(지난 9월 29일~10월 5일)를 열었으며, 이를 단행본으로 묶은 불교묵장보감 『반야의 향기』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