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문을 두드리는 것, 행정은 문을 열어주는 것

우리 스님 / 지구촌 공생회 이사장 월주 스님/ 행동하는 수행자, 월주 큰스님

2007-10-07     관리자

월주 스님은 한국 불교 현대사의 영욕을 직접 관통해온 분이다. 10·27 법난의 현장에, 종무 행정의 수반으로, 소극적 태도가 몸에 익어 자칫 뒷자리로 밀려나기 십상인 시민운동의 선두에, 스님이 있었다. 숱한 직함이 과한 공명심으로 오해될 지경이다. 그러나 스님은 단호하게 말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요.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면 피하지 않다 보니 번다한 직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젊잖게 뒤로 물러서는 것보다 비난을 감수하며 앞서 헤쳐 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선택일 것입니다. 수성(守成)에만 골몰하면 강물은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립니다. 사람도, 뗏목도 저 멀리 흘러가고 있는데 목 놓아 불러본들 허사지요. 지구는 이미 1일 생활권 안에 든 마을입니다. 말과 피부가 다르다고 이웃의 어려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되지요. 중생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구촌의 공존공생은 수행의 연장이자 중도 대타협 운동
스님은 올해로 고희(古稀)를 맞았다. 지난 세월의 격랑과 영광을 밀쳐두고 지금의 화두는 지구촌의 공존공생이다. 경계를 넘고 간격을 좁힌다는 신념으로 ‘지구촌공생회’ 운동에 온힘을 쏟고 있다. 지구촌의 공존공생은 수행의 연장이자 중도 대타협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하늘,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라는 동체대비 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는 빈곤, 기아, 질병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수천 만 명입니다. 우리 마을 코리아도 제3세계의 가난한 이웃에게 눈을 돌려 식량과 의약품을 전해주고 글과 기술을 가르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내 한 몸 깨달으면 된다는 자세는 대승불교의 정신이 아닙니다.”
머리로 깊이 생각하되 머리에 담긴 채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손발이 행동으로 이어받아야 진정한 지혜다. 생각과 행동이 여법하게 일치하는 것이 지혜다. 2004년 발족한 지구촌공생회는 이미 행동에 착수해 활동 중이다.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 몽골, 연해주, 북한동포, 국내 사회복지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미얀마의 양곤, 파간 지역에는 기초 의약품 등 의료 보건 지원, 초·중학교 건물 보수 및 교육 자재를 지원했다. 라오스 비엔티엔 지역에는 의료보건지원, 유치원 신축, 교구 및 학용품을 지원하고 매월 운영비도 지원하고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과 씨엠리업에 의료, 교육지원, 직업훈련센터 건립, 베트남 다낭 지역에는 직업훈련 및 부랑아 교육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낭은 월남전 당시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 적잖은 곳이다.
선진국이란 자국민의 국민소득 수치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베풀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생판 낯선 이웃을 돕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 미국, 일본 등은 이미 오래 전에 국가와 민간이 함께 나서서 지구촌의 음지를 보살피고 있다.

감로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은 문을 두드리는 것이요, 행정은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사회화는 여전히 유효한 지침이지요.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의 크기에 따라 제대로 보이는 법입니다. 좁은 웅덩이 속에서 올챙이떼처럼 서로 토닥거리다 보면 개구리도 되지 못하고 결국 물이 썩고 함께 죽습니다. 눈 돌릴 세상이 지천에 넘치는데 좁은 웅덩이가 우주인 줄 착각하고 갈등만을 증폭시키는 우리네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실내가 점점 더워진다. 70세 노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열변이 실내 공기를 덥힌다. 스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특히 환희심으로 자원 봉사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명문대학 출신 남녀 청년들이 다수다. 그들이 이타자리(利他自利)의 최전방에 서고 스님은 죽비를 들고 그들을 불법으로 후원한다. 이국땅에 아예 눌러앉아 봉사 활동에 전념하는 이도 있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한탄하지만 정정하고 카랑카랑한 어른이 든든한 빽이 되어주니 젊은이들은 기꺼이 땀을 흘린다.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준다(歸一心源 饒益衆生).”
말씀 중에 이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수행의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라는 경구로 들린다. 수행의 확대가 보현행원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먼지와 오물 투성이인 후진국의 삶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청년들로 하여금 삽과 곡괭이를 들게 하고 때로는 분필을 들게 한다.
“캄보디아 오지 마을을 가보니 시궁창 같은 개울물에 빨래하고 목욕하고 그것을 식수로 마시고 있습디다. 그 물을 마시니 아이, 어른들의 건강이 말이 아니지요. 자비고 수행이고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입니다. 깨끗한 물이 어디 있냐고요? 우물을 파야지요. 자재비, 인건비를 포함해서 우리 돈 30만원이면 우물 하나를 팔 수 있습니다. 당장 삽과 곡괭이를 들게 했습니다. 현재 열 개의 우물을 팠고 앞으로 40개를 더 팔 계획입니다. 감로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자의 본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지내는 것도 문제다. 연해주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들,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을 잊고 살아도 될까.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1937년 중앙아시아로 쫓겨 갔다. 200여 개 교육기관도 해체되었다. 다행히 지난해 한인 이주 140주년을 맞아 러시아 정부는 우수리스크 제3학교가 연해주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정식 허가했다. 68년 만에 재개교하는 고려인 민족학교에 지구촌공생회는 3천만 원의 지원금을 전달했다.
이웃의 고통은 바로 엊그제까지 우리들이 겪은 고통이었다. 그 때 우리가 우방들에게 받은 도움이 적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우방이 되어야 마땅하다. 지구촌에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이웃이 무려 10억 명에 달한다. 고통 받는 이웃이 있으면 잠자리가 편치 않다. 보시와 자비행이 경전 속에 갇힌 문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한 민간의 발심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OECD 23개 회원국 가운데 국민총실질소득(GNI) 대비 공적개발원조자금(ODA) 비중이 우리나라의 경우 0.063%로 최하위 수준이다. 국제기구의 권고안은 0.7%다. 한국은 권고안의 10분의1에도 못 미친다. 이를 지키고 있는 나라는 덴마크,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스웨덴 등이다. 일본 0.23%, 포르투갈 0.25%, 그리스 0.19% 등이다. 남아돌아서 베푸는 것과 아껴 쓰고 베푸는 것은 그 정성의 질이 다르다.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여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생멸(生滅)이 멸리(滅離)하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로다.-모든 현상은 공간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이 없다. 태어났다 멸하고 태어났다 멸하고 반복하는 것이다. 생멸을 초월해서 생에 대한 집착과 공포를 다 여읠 것 같으면 열반적정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열반경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조금 넘치려는 것을 모자라는 곳에 옮기는 일, 그것이 곧 수행자의 본분입니다.”
스님의 기억력은 비상하다. 10년 전 불교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처음 뵈었다. 방에 들어서 예를 올리고 나자 대뜸 알아본다. 황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지혜와 정보가 반듯하게 정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