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여성불교] 이본 랜드

불교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방안들

2007-10-07     진우기

이본 랜드는 캘리포니아 주 뮈어 비치에 있는 ‘길에 있는 염소(Goat-in-the-Road, GITR)’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선원의 원장이다. 이전에 그녀는 지역의 봄철 바비큐 경매에서 어린 염소들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녀석들은 자주 인근의 1번 국도로 도망을 가곤 했다. 이로부터 선원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곳에선 반나절에서 3주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길이의 수련회가 선방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진행된다. 이곳과 버클리의 공문선원, 알래스카의 주노 등에서 그녀가 진행하는 수련회의 제목은 실용적이고 독특하며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면 ‘갈등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1일수련회’, ‘마음 수련에서 유머와 호기심의 중요성’, ‘갈망과 집착’, ‘두려움과의 관계 재조율’, ‘돈의 힘’ 등이 있다.

스승과의 만남

이본 랜드가 불교 수행을 시작한 것은 1966년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스즈키 순류 노사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열심히 진지하게 수행을 하며 4개월이 지난 후 그녀는 스즈키 노사의 비서가 되었고 이후 20년간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제반행사에 깊이 관여하는 스태프가 되었다. 그 동안 선원 내의 거의 모든 행정직을 돌아가며 맡았고 선원의 일에도 스즈키 노사 바로 곁에서 도우며 일하였다. 랜드는 논리정연하고 솔직하고 현실적인 여성이고 활발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난 15년간 그녀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스승들 중에는 그녀가 돌봤던 병들고 나이 들어 죽어가던 사람들이 많다고 그녀는 말한다. 2년 전에는 티벳 불자이며 유명한 작가인 라마 고빈다의 병상을 지켰다. 죽기 전에 그는 말했다. “우리가 익숙하게 따라온 모든 형식을 놓아버릴 마음의 준비를 하라. 그리고 다만 붓다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라.” 랜드는 그런 말에 놀랐지만 이후 그 말을 따라왔다. 그 결과 그녀는 이제 가르침에 선불교만이 아니라 위빠사나와 티벳불교 전통의 일부도 영입하였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틱낫한 선사에게 배운 ‘호흡-걷기’와 ‘반미소’이다. 선사는 말했다. “한 부처가 걷듯이 그렇게 걷고, 한 부처가 웃듯이 그렇게 웃는 것을 배우라.” 또한 “당신은 할 수 있다. 무엇하러 부처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가? 지금 당장 이 순간 부처가 되어라.” 이제 그녀는 수퍼마켓에서 긴 줄을 서있는 중에, 그리고 빨간 불에서 서있는 중에 반미소를 수행한다. 한참 어떤 일에 열중하다가 호흡을 하나에서 셋까지 수행하다가 그녀는 정식 명상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 사이에 연결점을 경험하였다.

그녀의 스승 스즈키 순류는 이본 랜드에게 계를 주고 법을 전승하지 않은 것을 임종시에 후회했다. 가장 헌신적으로 불교 일을 했고 또 가장 재능이 많은 학생에 속했던 그녀였지만 스즈키 노사가 법 계승자를 지정할 때는 몇 명의 남성만이 선택되었고 그녀는 제외되었다. 하지만 스즈키 노사가 임종을 맞이할 때 그 옆에서 그를 돌본 것은 랜드였다. “나는 자네를 스님으로 키워야 했어. 하지만 나는 여성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알지 못했어.”

느리게 사는 삶

1997년 그녀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치명적인 병의 진단에서 회복에 이르기까지 진정 병이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느꼈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저 몸을 회복하기 위한 조용한 시간을 오랫동안 가지면서 그녀는 미국인이 바쁘고 꽉 찬 스케줄의 삶을 살아가며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 실감했다. 13세부터 그녀가 꽤 오랜 동안 해왔던 일이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멈추고 놓아버린’ 시간이 왔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학생의 수를 줄이고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가르치는 시간을 빼고는 글을 쓰고 공부하고 정원에서 일하며 보낸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좌선을 하고 새를 바라볼 시간도 생겼다. 이제 느리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그녀의 가르침은 좀더 깊어졌다. 그리고 오랜 친구인 진흙과 돌과 재회하여 잘 지내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가 1999년 불행한 90세의 삶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 그녀는 오랫동안 병든 사람의 마지막 길을 옆에서 지켜줬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보내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과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보며 이제 무상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다만 이론이 아니라 삶의 현실로 피부 속에 깊이 느껴진다.

불교 대중화를 위해

오랫동안 그녀가 화두처럼 붙들고 있던 것은 불교를 모르는 미국 대중에게 미국인의 평범한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해서 불법을 가르치고 알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비불자들의 모임에 강사로 초빙되는 일이 점점 더 늘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해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부패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부패하기 쉬운지를 알아채는 그 정도만큼, 즉 우리가 선택한 역할이나 얼굴에 쓰는 가면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부조화를 야기함을 아는 그만큼 우리는 그런 마음을 행동에 옮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전역의 명상센터에서 일어나고 또 일어난 문제는 권위의 문제이다. 내가 수행하고 있는 일본 조동종의 전통 속에는 중국 당나라의 승복, 삭발한 머리, 회의의 의전, 권위 체계의 위계성, 그리고 이상적인 형태라면 스승의 곁에서 오랫동안 수행 생활을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전통적 조동종 법사의 가사를 입고 강의를 하면 나는 강의를 듣는 청중이 내게 주는 권위가 증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실제로 질문하고 검토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때로 유용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스승과 제자에게 다 위험한 일이다.”

그녀는 그린걸치 불교농장에서 한 달에 한 번 강연, 그리고 하루 종일 진행되는 깨어있음의 날을 이끄는 것이다. 그 날에는 좌선, 걷기 명상, 반미소 수행과 함께 간단한 육체노동이 수반된다. 그리고 워크숍과 주말수련회, 죽음에 관해 배우는 수련회, 고통을 스승으로 삼는 방법에 대한 워크숍이 있다.

그녀는 또 정기적으로 수자공양을 하고 있다. 인공유산, 자연유산, 사산, 태어나서 바로 맞이한 죽음을 통해 저 세상으로 간 어린 생명들의 죽음을 첫째 인정하고 애도하며, 둘째 기억하고 놓아버리는 이 의식을 통해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함께 위안을 받게 된다. 이 수자공양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참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