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관계의 변화와 불교계의 과제

남북한 문제, 불교적 대안

2007-10-07     관리자

남북 경제 협력은 상생의 길이다
최근 남북한 관계가 급진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가르침이 정말 진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불과 20여 년 전 제5공화국 시절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주장하고 북한과 직접 교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북한에 전력을 공급한다고 한다. 1988년 7월에 발표된 ‘7·7 민족공동체 선언’부터 남북한 관계가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17년 사이에 남북관계가 여기까지 발전해 온 것이다.
2005년 7월에 남북한 당국은 전 세계가 주목할 두 가지 일을 발표했다. 하나는 한국 정부가 북한이 핵 폐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실행하면 200만 kw의 전력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 제안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북한이 미국에 대하여 요구해 왔던 안전보장 요구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고 핵 폐기에 대한 사찰과 검증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북한이 그 동안 전력 공급을 요구해왔고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강조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북측이 6자회담을 거쳐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제안이 실행된다면 남북한 간의 사회경제적 통합과 심리적 신뢰의 강도는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더불어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제10차 회의가 1년여 만에 서울에서 열려 역사상 가장 많은 총 12개의 항목에 합의하였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설치, 양측의 경제적 특성을 살리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협력사업 추진, 개성공단의 건설 촉진, 경의선과 동해선의 올해 안 개통, 북한 민간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경제시찰단의 상호교환, 남북과학기술실무협의회의 구성과 운영, 북한에 쌀 50만 톤의 차관방식 제공 등이다.
이 중에서 특히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의 공무원이 공동으로 상주하는 사무소를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것은 앞으로 경협을 보다 활성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 당국의 직접 교류를 심화시키고 일상화시킨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측의 숙련 노동력 및 지하자원을 남측의 기술력 및 자본과 결합시키는 새로운 경제협력 방식은 지금까지 일방적인 대북 지원이었던 경협의 성격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남과 북이 서로 경제적 장점과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명실 공히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과정에 들어설 경우,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는 통일을 위하여…
그런데 최근 이렇게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서로 연관된 두 가지 사실을 원칙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우선 북한의 변화이다. 이번 경추위 회의에서 북측은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하여 솔선하여 상호보완적 경협방식을 제기하였다. 이는 북한이 남한과 경협을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이를 통하여 시장지향적인 경제개혁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는 현재의 상황에서 경제개혁과 개방 이외에 체제유지와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북한의 변화는 아직 경제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 오히려 정치와 사상 분야에서는 개혁과 개방에 의한 체제이완을 방지하기 위하여 내부적인 통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 분야에 있어서의 시장지향적인 변화가 다른 분야에 영향을 미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구조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의 경협 및 개혁 의지가 앞으로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국내외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최근의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원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점진적인 통일과정의 정당성과 가능성이다. 즉 화해와 교류, 협력과 대화를 통한 남북한 통합 및 통일과정이 북한의 붕괴나 전쟁 등 상상할 수 있는 여타 방법에 의한 것보다 정치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으며 또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점진적 통일과정의 정당성은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하는가 하는 통일의 당위성의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가령 한반도 및 동북아의 궁극적인 평화, 남북한의 지리적 폐쇄성의 극복, 국가 경쟁력의 향상(민족 자결권의 고양), 이산가족의 재결합 등이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이 무엇보다도 남북한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양측의 교류와 협력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현 상황에서 급격한 통일은 혼란 속에서 북한 인민을 급속하게 남한의 노동시장으로 편입시켜 결과적으로 양측 민중의 삶의 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점진적인 통일과정이 궁극적으로 남북한 민중의 삶의 질을 함께 높이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교류와 협력에 의한 통일이 가능할까 하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의혹은 특히 근대정치학에서 강조하는 정치권력의 집단성, 또는 스스로를 유지하고 확장하려고 하는 권력의 본질적인 자기목적화의 경향을 고려할 때 더욱 심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을 정치제도상의 통합을 향하여 양측의 민족동질성이나 공동이익의 영역이 확장되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교류와 협력은 권력의 집단성이나 자기 목적성을 약화시켜 통일에 이르게 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길이 될 것이다. 최근 평화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을 보고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정치적 이상주의자의 조급함의 산물이 아닐 것이다.

불교계의 통일운동 방향
그러면 이러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진전 속에서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또 무엇이 특히 요구되는가? 역시 정도(正道)는 북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교류를 일관되게 지속하는 것이다.
한국 불교계의 북한 바로알기 운동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주체사상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그것과 불교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거나 북한 불교의 특성과 현황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이전의 선악 이분법에 근거한 적대적인 가치관을 극복하고, 90년대 이후 남북불교교류를 위한 이론적 기초와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급진전하고 있는 현 단계에서는 보다 포괄적인 대응을 위하여 보다 심화된 북한 이해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을 변화의 상 안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령 어떤 종교적 사안에 대하여 단지 북한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북한 정치와 경제의 변화와 관련하여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불교계가 공동으로 전문 연구진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한편 불교계의 직접적인 대북교류는 1991년에 해외에서 시작되어 99년에는 민족화합불교추진위원회가 북한을 공식적으로 방문하기에 이른다. 이후 지금까지 종단별로 또는 종단협의체를 통하여 인도적 지원과 북한 사적의 복원을 중심으로 활발히 남북교류가 이루어져 왔고, 이를 통하여 민간 차원의 상호신뢰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교류방식은 앞으로도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경협방식에서 보았듯이 일방적인 지원형식의 교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수평적인 협력주의’에 근거한 북한불교의 독자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기존의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한 불교가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형식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불교계의 남북교류에 요구되는 것은 앞으로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남북한 당국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통일을 위한 확고한 불교사상이 정립되어야 하고, 특히 이 속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정치도 상대화해서 보는 시각과 이론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기반으로 때로는 국가와 더불어 때로는 국가와 대립하면서 대북 교류를 폭넓고 일관되게 지속할 때, 북한과 남북관계의 긍정적인 변화는 평화통일을 향하여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철 님은 1958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97년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정치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졸업한 정치학 박사이다. 일본 와세다대 객원연구원, 일본 중앙학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논문으로 「북한의 종교정책과 종교상황」, 「북한 주체사상의 형성과 특징」, 「한국 국가의 남북한 통일운동과 한국 기독교의 통일운동: 정교 대립의 특징과 의미」, 「북일 수교협상의 동향과 일본의 입장」, 「마루야마 마사오의 종교자유론에 관한 일고찰-정치권력의 위험성과 자유의 조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