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묘약

보현행자의 세상 사는 이야기/ 바라밀 부부 이야기

2007-10-07     관리자

아내는 유난히 음식에 민감한 편이었다.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음식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몸이 약한 아내를 위해 보양식을 사주고 싶었는데, 결혼하면서부터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퇴근 후 일찍 만나 사줄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일찍 만난 우리 부부는 오랜 만에 시장에 가기로 했다. 달랑 두 사람 먹을 걸 사는데도 아내는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상인들과 옥신각신하며 얼마나 끌고 다니던지….
결혼하기 전과 결혼 후의 모습이 어찌 그리도 다를까? 출출하던 차에 포장마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내가 시킨 메뉴에는 관심도 없는 듯 주인 여자에게 뭔가 부탁하는 듯했다.
잠시 후 주인 여자가 들고 온 것은 발갛게 양념이 된 닭발이 아닌가? 세상에 여자가 닭발을 먹다니….
그것도 혐오스러운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고 난리를 치던 아내가 말이다. 어이가 없어 쳐다 보고 있는데, 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한 접시를 다 비우는게 아닌가? 그리곤 날 쳐다 보며 피식 웃는다. 사실 나는 닭발을 못 먹는다. 먹어 본 적도 없다. 부부는 음식 취향도 닮는 다는데 우린 뭔가?
결혼 후 8년이 되도록 우리에겐 아이가 없었다. 첫 임신이 자궁외 임신이 되어 큰 수술을 받은 후 계속되는 자연 유산으로 아내의 건강이 나빠져. 나는 아이 갖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언젠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내는 병원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느다며 식사를 못하는 것이었다. 밖에서 영양식을 사다 줬지만 그것조차도 못 먹었다. 간신히 미음만 먹던 아내가 퇴원하는 날, 원기 회복에 좋다는 전복죽이라도 먹일 요량으로 바닷가에 데려 갔는데, 그 곳에 가서도 횟집에 들어갈 생각은 않고 계속 두리번거리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억지로 찾아간 곳은 실내 포장마차였다. 장사 준비도 채 못한 그곳에서 아내가 닭발 두 접시를 맛있게 먹고 일어서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아내는 아플 때면 닭발을 먹고 기운을 차리곤 했다. 보양식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안타까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9년 전 불의의 사고로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로 그 흔한 닭발 한번 사 줄 수 없다. 급기야 지난 해에 아내와 나는 이혼을 했다. 억지로 떠나 보내고 말았다. 더는 곁에 둘 수 없어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끔 닭발 얘기가 나오면 옛날 생각이 난다. 언젠가는 세상 속으로 돌아가겠지? 그 날이 오면 포장마차에 가보고 싶다. 가서 닭발을 한번 먹어 보고 싶다. 억지로라도 두 눈 꼭 감고 한번 먹어 볼 것이다. 아내의 묘약이었던 닭발을 말이다.

전영수 님은 재소불자로서 영어의 몸이지만 불교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틈틈이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