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잘 살기

웰빙 /날마다 좋은 날

2007-10-07     관리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해볼 때가 가끔 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만이 있어야 발전도 있다는 말도 있지만, 불만이란 게 해소가 안 되면 이게 또 스트레스가 된다. 건강하게 걱정 없이 사는 게 최고의 웰빙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렇다고 세상사 다 잊고 산 속에 들어가 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니, 잘 살 고민하다가 스트레스만 더 쌓이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기게 된다.
나는 비교적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집착도 강한 편이다. 불필요하게 생각을 물고 늘어져 내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달달 볶아대니 사실 좋을 게 없는 버릇이다.
공부하는 쪽이 한문학이다 보니, 옛 사람들의 처세법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배울 때가 자주 있다.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강호가도(江湖歌道)하면서 인생을 관조하고, 삶의 정면뿐만 아니라 배경이나 이면도 살피면서 살아갔던 옛 문인들의 생활이나 글을 읽을 때면 부럽기도 하고 너무 아득해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정작 그런 분들의 삶에도 구겨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예나 지금이나 잘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잘 사는 것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남 보다’ 잘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잘 사는 거다. 비교해서는 영원히 잘 살 수 없다. 옛 분들의 삶이든 주변 사람들의 삶이든 비교하다 보면 항상 나는 뒤쳐졌다는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자기 만족적인 삶. 그렇다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만이나 모양새만 그럴 듯한 가식이 아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삶. 이런 삶이라면 잘 사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요즘 나는 우연찮은 기회에 불교방송에 매주 출연하게 되었다. 승가대학의 김상영 교수가 진행하는 ‘무명을 밝히고’란 프로가 있다. 매일 오후 5시부터 6시에 방송되는 프론데, 토요일마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해 ‘불교 문학 산책’이란 코너를 함께 꾸려나간다. 여기서 나는 우리 옛 스님들이나 재가불자, 거사(居士)들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면서 문학 속에 녹아 있는 그 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프로를 맡으면서 매주 4~50매에 달하는 원고를 써야 하는 것이 버겁기도 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즐거운 일이 되었다. 명색이 불교 문학을 공부한다고 자임했으면서도 그간 내 공부가 얼마나 얕았는지 알게 되었다. 또 내가 미처 접하지 못했던 그 분들의 넉넉한 마음을 알게 되어 대나무 대롱으로 본 공부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옷깃을 여밀 때가 많다. 얽매인 공부가 아니라 하고 싶어 하는 공부가 되니 매주 그 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그 때 읽은 작품 한 편을 소개하겠다. 고려 후기 때의 스님인 충지(食止) 선사의 시다.

林茂鳥聲樂 숲이 우거져서 새 소리도 즐겁고
谷深人事稀 골짜기가 깊어 오는 이도 드물구나.
夢廻寒瀑落 잠 깨니 시원한 폭포수 소리가 들리고
日送斷雲飛 날마다 조각구름을 보내며 지내노라.

충지 스님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읽혀서 정말 즐겁다. 매일매일 눈에 보이는 풍경들이 다 장난감이다. 자연이야 무진장(無盡藏)한 것이니 닳을 것도 없고 고칠 일도 없다. 지구 전체가 오염된 판에 무공해 식품인들 과연 멀쩡할까? 몸을 채우는 일보다 마음을 비우는 일이 훨씬 값지고 손쉬운 웰빙의 길이 아닐까?
중국의 어느 스님이 말씀하셨다는 ‘날마다 즐거운 날(日日是好日)’. 그런 삶 속에 진정한 ‘잘 살기’가 깃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해본다.

임종욱 님은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문학박사)를 취득하였다. 저서로는 『고려시대 문학의 연구』, 『운곡 원천석과 그의 문학』, 『한국 한문학의 이론과 양상』 등이 있으며, 현재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