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花巖寺), 내 사랑

시뜨락

2007-10-07     관리자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 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시집 『바닷가 우체국』(창작과비평사, 1997) 중에서

안도현 |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고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저서로는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관계』 『사진첩』 『나비』,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등이 있다. 제1회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제13회 소월시문학상, 제1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