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봉사는 둘이 아니다

보현행자의 세상 사는 이야기/ 희망의 씨앗

2007-10-07     관리자

어린 시절 자주 뒷동산에 올라가 사색을 즐겼다. 동산 앞으로 신탄강이 흐르고, 그 옆에 조그마한 절이 있었는데 궁금한 게 많았다.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이 머리 위에 보따리를 이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절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도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가보고 싶었다.
서울로 시집을 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알뜰살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막내아들(이근제)을 낳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절을 찾게 되었다. 봉천동 은천초등학교 옆 구암사를 찾아 복을 구하면서 신행생활이 시작되었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신탄진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아이들 학교에 보내는 것까지도 어려울 정도로 궁핍하여 심신이 지쳐 있었다. 힘든 생활을 버티기 위해 어려서 가보고 싶었던 추억 속의 신흥사(묘허 스님)에 가서 부처님께 매달렸다. 아이들 중학교라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지극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정월 7일기도에 들어갔다. 기도가 끝날 무렵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께서 주신 청심환 같은 약을 받아먹었다. 몽중가피의 환희심으로 더욱 정성껏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부처님을 의지하며 부처님의 가피로 산 세월이 벌써 30년이 지났다. 부처님 덕분에 삼남매 다 대학 보내고 잘 키웠다. 그저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잘 모르고 무조건 절에 가서 절하고 염불하는 것을 신행의 전부로 여기고 살다가 지난 2001년 녹야원 아미타불교대학과 2002년 백제불교문화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부처님의 정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불법에 대한 환희심으로 더욱 충만한 삶이 되었다. 또한 포교사님들과 도반 보살님들의 봉사활동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 나의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났고, 내 자신의 안락과 평안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던 것에서 나아가 나보다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해 무엇이든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건강한 복은 누리고 있는지라 그 때부터 남모르게 복지활동(서구노인종합복지관과 법동복지관에서 설거지, 무료급식 등을 돕고 있으며, 건양대학교 병원에서 각종 빨래와 허드렛일을 하고 있으며, 보훈병원 중앙보급실에서 잡일로 가제 접기 등)을 시작하였다. 염불을 하면서 봉사하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르겠고, 기도와 봉사가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날이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지면으로 드러낸 것이 혹시 상(相)을 내는 것은 아닌가 해서 부끄럽기만 하다. 그저 우리 사회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광명섭 박영선 님은 대전적십자 송촌봉사회 회원으로 서구노인종합복지관, 법동종합복지관, 장애인학교(대전공단), 보훈병원, 건양대 병원 등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