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못 하는 ‘웰빙’

웰빙/ 생활속의 건강

2007-10-07     관리자

“이것 봐! 이번엔 아이스크림 같아.”
“정말? 아니네…. 떡볶이잖아.”
뭐 신기한 구경거리라고 두 형제가 화장실 변기 안을 들여다보며 ‘맞네, 안 맞네’를 따지며 도란거린다. 둘째 녀석이 볼 일을 보고나면 거치는 일이다. 냄새나는 변기 안을 들여다보며 신기해하는 이런 엉뚱한 행사(?)가 생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집에는 일곱 살, 네 살짜리 사내아이가 있다. 지금은 둘 다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니지만, 처음에는 큰아이만 다녔고 작은아이는 집 근처 놀이방에 다녔다. 물론 작은아이도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당시 빈 자리가 없어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아는 분도 있겠지만, 공동육아어린이집은 ‘공동’이란 말에 걸맞게 ‘가족 공동’이며, ‘이웃 공동’으로 아이를 키우고 삶을 나누는 곳이다. 특히 ‘사람과 자연은 공동체’임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먹거리, 놀거리를 비롯한 일상이 요즘 말하는 ‘웰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집의 먹거리는 유기농을 쓰며 인스턴트 음식 대신 손수 요리한 것들로 밥상이 차려진다. 여름에는 텃밭을 일구어 아이들이 직접 채소를 심고 그것들이 밥상에 올라온다. 겨울철 행사인 김장도 아이들이 텃밭에 심은 배추와 무를 뽑아서 한다. 아이들의 밥상은 넘쳐나는 기름진 음식들에 비하면 거칠지만 어느 녀석 하나 투정하는 법 없이 잘 먹고 잘 큰다. 웰빙 밥상을 맛나게 먹어치운 아이들이 잘 크는 데는 먹거리가 지닌 자체의 건강함도 한 몫 하지만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놀거리이다.
어린이집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또 덥거나 춥거나 간에 하루 한 번 나들이를 간다. 근처 산으로 들로 친구와 짝손을 하고 걸어서 다니는데, 이 시간에 만나는 햇빛과 바람과 공기들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주는 것 같다. 이건 웰빙 놀이터인 ‘자연’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만일 처음부터 두 아이 모두 이 곳에 다녔다면 이 큰 고마움을 몰랐을 것이다. 이 고마움은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더 커졌다.
둘째 아이가 놀이방에 다닐 때였다. 변기에 앉으면 힘들어하고, 힘주어 볼 일을 보았다 해도 마른 염소똥처럼 딱딱한 몇 알의 것들로 해결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발효음료와 과일 혹은 김치를 먹였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작은 아이의 식성과 체질 탓을 하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둘째 아이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자리가 생겨 다니게 되었다. 형이 가는 어린이집에 워낙 가고 싶어 했던 둘째 아이는 마냥 기뻐했다. 우리 가족 모두 기뻤다. 어린이집으로 가방을 메고 다닌 지 일주일도 채 못 되어 진짜로 기쁜 일이 생겼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말이다. 둘째 아이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변기 위에 앉아 큰 소리로 자랑을 해대는 것 아닌가! “이것 좀 봐! 내가 커다란 고추 똥을 쌌어.” “어디? 어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디 보자’라며 식구들은 화장실 앞에 모여 서서 변기를 들여다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이후로 둘째 아이는 화장실 가는 일을 놀이하듯 즐겼다. 지금은 형처럼 잘 먹고 잘 놀며 잘 크고 있다. 이 엉뚱한 행사를 통해 우리 식구는 ‘자연’과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웰빙’은 흔히 말하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정직하게 실천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승희 님은 해운(海運)계 전문지를 시작으로 잡지사에서 취재기자 일을 주로 하였으며, 한때는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책 만드는 일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해 다시 잡지출판으로 돌아와 지금은 월간 「인간답게 사는 길」의 기자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