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 주방장의 바람

보현행자의 세상 사는 이야기/ 공양간 이야기

2007-10-07     관리자

스무살 때부터 식당일을 배웠다. 횟집, 일식집 등을 전전하며 주방 일을 해온 지 벌써 15년, 한때는 좋은 기술을 가졌다는 말을 들으며 돈도 많이 벌었고 결혼도 하였다. 하지만 회칼을 들고 매일 생선회 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으면서도 가끔 팔뚝만한 큰 물고기를 잡을라치면 죄를 짓는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였다.
업보인가, 아들(동현)이 3살 때 자폐아라는 것을 알았고, 아내와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급기야 이혼을 하고, 동현이를 금산에 있는 ‘그리심 기도원’에 입원시켰다. 나는 이혼과 아들을 버려둔 죄책감과 심한 스트레스로 대상포진이라는 병까지 들어 방황하였다. 그 때 선배의 권유로 중악 계룡산의 으뜸사찰 갑사의 주방장이 되었다. 절에 온 뒤부터 매일 새벽 3시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계곡에서 목욕재계하고 대웅전에서 108배를 하고 공양 준비를 한다.
갑사의 스님들은 새벽예불, 참선하신 뒤 바로 이어서 죽으로 발우공양을 하신다. 죽은 입맛이 없을 때 식욕을 북돋고, 환자의 회복, 노인과 어린이의 보양을 위해서도 아주 좋은 음식이다. 요즈음 웰빙 붐을 타고 죽 판매점이 성업 중인데, 죽 하면 갑사라고 할 정도로 소문이 자자해져서 시내 인근의 죽 판매점에서까지 찾아와 견학을 하고 간다.
갑사에서는 콩나물죽, 흑임자죽, 들깨죽, 땅콩죽, 잣죽, 녹두죽, 밤죽, 아욱죽 등을 비롯해서 떡국과 누룽지를 아침공양으로 내놓는다. 스님들이 아침에 편안하게 공양하시면서 소화도 잘 되고 영양도 돕기 위해 갖가지 죽으로 아침공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템플스테이 수련생들은 양이 안 차는지 운력 후 공양간에 들어와 밥을 더 먹기도 한다. 갑사에서는 을유년 새해를 맞이하여 해맞이 법회에 동참한 모든 신도님들께 호박죽을 간식거리로 드렸는데, 맛있게 드시는 모습, 애쓴다는 말씀 한 마디에 힘이 솟는다.
다들 알겠지만 죽 쑤는 일은 밥하는 일보다 훨씬 번거롭고 힘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 쑤고 있을 때 같이 일하시는 공양주 보살님이 따뜻하게 다독여주신다. 우리 어머니와 동갑인 보살님은 내가 당신 아들과 이름도 비슷하고 나이도 같은 또래인지라 자식처럼 잘해주신다. 본인도 힘드시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나를 더욱 배려하고 이해해주시는 마음이 너무나 감사하다.
한때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려고 한 적도 있었고, 아들의 건강발원을 위하여 원을 세우고 절집 공양간 주방장이 되었기에 나는 염불을 외우며 지극정성을 다하여 죽을 쑤고 음식을 만들고 있다.
한 달 보시를 받아도 아들의 보육비로 전액이 다 들어가다시피 하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다. 하지만 내 병도 다 나았고 한숨을 돌려서인지 콧구멍에 바람이 들어간 건지 요즈음엔 처음 갑사에 들어 올 때의 그 간절했던 마음처럼 기도를 하지 못해 안타깝다. 게을러서 놓쳤는지, 스님들께 공양을 잘 올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데, 사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번뇌 망상 때문이다.
내가 직접 돌보지 못하고 기도원에 보낸 자식 때문에 108염주를 간절하게 돌리다 보면 자꾸 끊어진다. 오늘은 더욱 두껍고 질긴 나이론 줄로 염주를 묶었다. 욕심 같지만 언젠가 여건이 되면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아들과 함께 사는 바람뿐이다. 앞으론 바라는 일이 많지 않게 되기를 부처님께 합장 발원한다.

김영석 님은 서산에서 태어나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횟집에서 15년 간 종사하다가 현재 갑사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수행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