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용어해설] 이판사판(理判事判

생활 속의 불교용어

2007-10-07     관리자


이판 (理判)과 사판(事判)은 원래 『화엄경』에 나온 말로 세계의 차원을 이(理)와 사(事)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에 대한 판단이며, 사판은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대한 판단이다.
이판사판은 이판과 사판의 합성어로서 그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에는 이판승과 사판승의 구별이 있었다. 이판은 참선, 경전 공부, 포교 등 불교의 교리를 연구하는 스님이고, 사판은 절의 산림(山林)을 맡아하는 스님이다.
여기서 산림이란 절의 모든 사무와 재산관리를 통틀은 말이다. 산림은 산림(産林)이라고 쓰기도 한다. 흔히 “살림을 잘한다.”라고 할 때 살림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근세에는 수계산림(受戒山林), 법화산림(法華山林), 화엄산림(華嚴山林)처럼 일정한 기간 동안 어느 한 분야를 집중공부해서 지혜와 공덕을 쌓는 불사를 산림이라고 부른다.
이판과 사판은 그 어느 한 쪽이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 이판승이 없다면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이어질 수 없으며, 사판승이 없으면 가람이 존속할 수 없다. 그래서 청허, 부휴, 벽암, 백곡 스님 등 대사들이 이판과 사판을 겸했다.
그런데 이렇듯 스님을 뜻하는 이판과 사판을 합쳐, “에라! 이판사판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막다른 궁지’ 또는 ‘끝장’을 뜻하는 말로 변질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불자들은 약간은 서글픈 감정을 느낄 것이며, 한편으로는 재정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판사판이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하였다. 조선은 건국이념으로 억불숭유를 표방하였다. 이것은 고려 말에 불교의 폐해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조선의 건국에 신흥 유학자 사대부 세력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불교는 정권의 교체와 함께 하루아침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며, 승려들은 천민 계급으로 전락하였다.
조선의 억불정책은 불교에 있어서는 최악의 상태였다. 승려는 최하 계층의 신분이었으며, 성의 출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자연히 당시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막다른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판이나 사판은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뿐만 아니라 일제와 8·15광복 후의 건국 초기에도 불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더욱 부정적 이미지로 몰아갔다. 이 두 부류를 정치적으로 이용, 서로 분열 반목케 하여 이판사판의 면목을 그대로 대중(大衆)에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무 것도 모르는 대중은 뾰족한 대안이 없을 때 무의식적으로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쓴다.
아무튼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암울한 조선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판과 사판은 그야말로 이판사판으로 사찰(寺刹)을 존속시키고 불법(佛法)의 맥(脈)을 이어나가, 오늘날 한국불교는 재중흥의 시대를 맞아 융성해졌으며 스님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비록 이판사판이라는 용어가 왜곡되어 사용되어지고는 있지만, 그 말에 내포된 의미는 우리 불자들에게 하나의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과연 조선시대에 왜 이판과 사판이 되었으며, 현재 우리가 이판사판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