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걸 태웠나

보현행자의 세상 사는 이야기 /공양간 이야기

2007-10-07     관리자

천년 고찰 계룡산 갑사는 역사가 깊은 만큼 수많은 성보와 사찰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그 뿌리 깊은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처럼 행사가 많다.
불교의 4대 명절 외에도 정초 해맞이법회, 정월 초사흘 괴목대신제, 영규대제, 개산대제, 산사음악회, 끊임없는 템플스테이 등 숱한 행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
사찰의 갖가지 힘든 일 중에도 공양간의 일을 첫손에 꼽을 수 있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하는 공양주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고맙기만 하다. 그러는 가운데 몇 달을 못 견디고 나가는 공양주 구하느라 힘든 적도 많았다.
그 걱정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남자 공양주가 들어왔다.(십수 년 전 필자에게 무술을 배우던 후배이기도 하다.) 소림사 주방장이라도 되듯 힘쓰는 일은 남자 주방장의 몫이 되고 잔잔한 일들은 보살 주방장의 몫이 되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공양간에 힘이 돌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러한 가운데 갑사 공양간을 힘써 돕는 분들이 있다. 바로 관음회 보살님들이다. 관음회 보살님들은 회비를 모아 독거노인들을 돕는가 하면 갑사의 모든 행사에서 궂은일을 마다않는다. 특히 겨울이면 더욱 바쁘다. 갑사의 김장은 물론 용천각 처마 밑에 걸린 시레기 또한 보살님들의 수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은 보살님들이 메주 쑤는 준비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용천각 아래 새까만 가마솥에서 메주콩 삶는 냄새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운데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는 보살님을 보며 얼마 전 돌아가신 석주 큰스님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지금은 환속하여 교사로 계시는 거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 분의 행자시절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절에서는 행자 때 평생 출가 수행할 근기가 되는지를 살펴보고, 또 하심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위하여 고된 노동수행을 한다. 그 거사님도 행자 시절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나 신심만은 깊어 몸은 힘들고 지쳐도 꿋꿋하게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공양간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는데, 그만 바싹 마른 나무가 아닌 젖은 나무를 가져와 불을 땠던 것이다. 잘못한 것을 알았지만 다시 불을 지피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젖은 나무를 계속 땠는데 얼마나 연기가 많이 나던지 눈물이 줄줄 나더란다. 그 때 한 노스님이 지나시다가 공양간으로 들어오셨다.
“뭐 하는가?” 하는 스님의 질문에, “예 스님.” 하고는 일어나 반배를 올리며, “마른 나무를 때야 하는데 그만 젖은 나무를 땠더니 연기가 많이 나네요.”라고 변명처럼 말하였다.
노스님께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젖은 나무를 하나 가지고 와보게, 그리고 가운데를 한번 잘라보게나.”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래서 젖은 나무 가운데를 잘라 보았더니, 나무 안에 고물고물한 벌레들이 가득하였다.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자 노스님은, “이 걸 태웠나?”라고 하실 뿐 다른 말씀은 한마디도 없으셨다.
“아….”
불살생계를 스님은 그렇게 가르치신 것이다. 바로 그 스님이 얼마 전 열반하신 석주 큰스님이시다.
아름다운 가을을 수놓았던 붉게 물든 나뭇잎들은 한 번에 떨어지지 않고 가을 내내 떨어져 스님들을 힘들게 했는데 스님들은 마음 한 켠 가지고 있던 번뇌 망상을 쓸어낸다고 표현한다.
절에서는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에서도, 공양간에서 장작불을 지피면서도 삶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 복덕을 짓는 부처님 도량에서 일하는 기쁨을 느끼면서 산더미같이 쌓인 절 일들이 고맙게 다가온다.

사희수 님은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우슈 국가대표 선수, 1990년 불교무술포교원을 개원하고 불교무술시범단을 조직하여 무술을 통한 불법 홍포에 노력해오고 있다. 현재 원광대학교 기공학과 대학원 재학 중이며 백제불교 편집장, 갑사 총무과장 소임을 보면서 갑사 템플스테이에서 무술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