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행복해지기

웰빙: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2007-10-07     관리자

할머님, 올 겨울은 그리 차지 않아 다행이에요. 날씨도 도와주어서, 할머님께서 일흔 중반을 넘겨 다니기 시작하신 불교대학 2학기가 벌써 무탈하게 지나갔네요. 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 계시다가 이제는 부처님 가르침을 몸소 공부하는 자리에 앉으신 모습이 참 의연하고 당당해 보이셔서 좋아요.
할머님, 요즘 드라마는 ‘불멸의 이순신’이랑 ‘금쪽 같은 내 새끼’를 빼놓지 않고 보신다 하셨지요? 할머님께서 재미나게 본다 하시니 언제 한 번 챙겨서 봐야지 하면서도 아직이네요. 할머님, 때때로 뉴스도 즐겨 보시는가요? 요즘 뉴스에서는 시끄러운 정치경제 소식 사이로 ‘웰빙 열풍’이라는 말이 간간히 오르내리곤 한답니다.
웰빙이라는 영어단어를 우리말로 풀면 ‘잘 존재하기’쯤 될까요. 이 웰빙 바람이 우리네 먹는 일, 입는 일, 잠자는 일 곳곳에 스며들어서 장마철 거풍하듯 살림살이의 눅눅한 습기를 개운하게 씻어준다면야 더없이 반가운 소식일 텐데, 정작 그렇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저도 한때 인스턴트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고 또 동물성 음식이라곤 우유까지 멀리하는 완전채식이란 것을 독하게 해보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들이 몸매 관리에 특효처방으로 쓴다는 요가에 관심을 두고 동네 요가원을 드나들기도 했어요.
채식이나 요가나 그 깊이를 좇아 은근하게 들어가는 일은 참으로 훌륭하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하니 거기에 아등바등 매달려 있는 제 자신이 자연스러워 보이질 않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는 탁발하신 발우에 담긴 음식이면 가리지 않고 드셨다는데, 나는 이리도 까탈스럽게 음식투정을 하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요. 웰빙이라는 수박의 껍데기를 핥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할머님, 제가 왜 할머님께 뜬금없이 웰빙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고 의아하시지요? 제게 웰빙이라는 수박의 속살 맛을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할머님이시거든요. 지난 가을, 불교대학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걸음걸이가 가볍지 않으신 할머님을 거들어 손잡고 걷던 일, 점심 밥상을 앞에 두고 ‘맛있게 먹자!’ 하고 다정하게 건네신 한 마디, 잔잔하지만 맛깔나게 풀어놓으시는 이야기보따리,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으시며 이것저것 걱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 참으로 사소한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지금 돌아보면 속속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에요.
할머님, 저는 할머님한테서 ‘있는 그대로 행복해지기’를 배운 것 같아요. 할머님은 제게 채식이다 요가다 이것저것 찾아다니지 않고도, 제가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이 충만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할머님께서 그렇게 살아오신 방식, 그 모습 그대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어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말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모든 것을 따스하게 품어주시는 할머님의 마음이 제게는 큰 가르침이었답니다.
할머님, 어떤 웰빙 상품보다도 값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있는 이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할머님처럼 누군가에게 ‘우리는 있는 그대로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셔서 할머님의 은은한 향기가 제게도 어느새 묻어오기를 기원합니다. 곧 찾아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이 글은 보잘것없는 예비 손주며느리감을 예쁘게 봐주시고 자주 불러 따뜻한 밥과 차를 먹여주시는 할머니 이상희 님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하정혜 님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조계사 홍보주임 및 조계사보 편집팀장으로 일한 바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