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시뜨락

2007-10-06     관리자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문학과지성사) 중에서

기형도 (1960~1989년) 님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89년 3월, 가을에 시집 출간을 위해 준비하다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뇌졸증으로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夭折)하였다. 사후에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이 나왔으며,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 전집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