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산책] 70. 감추어진 부처님 - 배면불(背面佛)

불교문화 산책

2007-10-06     관리자


불기 2548년 잔나비해가 저물고 있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설렘에 자칫 내 그림자를 밟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것을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실수라고 한다지만, 지난 해를 차분히 돌이켜 보는 지혜가 아쉬운 것은 욕심 때문일까.

배면불상이란?
배면불(背面佛)이란 불상과 광배의 뒷면에 불상 혹은 보살과 같은 별도의 조각을 더하는 것이다.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사방불(四方佛)과 같은 방위불 개념, 혹은 밀교적 요소가 가미된 결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법화경』 「견보탑품」에“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공중에 떠 있는 탑의 사자좌에 앉으셨다.”고 하는 대목으로 두 분의 여래가 탑을 중심으로 함께 표현되는 연유를 밝히고 있다. 경주시 안강읍 근계리석불입상(사진4)의 경우 광배 뒷면에 3층 목탑을 새긴 후 1층 탑신부분에 결가부좌한 여래상을 조각하였는데, 혹 『법화경』의 예를 따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배면불의 예와 아름다움
이와 같이 여래 혹은 보살상의 신체나 광배 뒷면에 또 다른 불상이나 탑을 새기는 것을 배면불상이라고 하는데 현존하는 가장 이른 예로는 통일신라시대 제작의 경주 남산 기슭 보리사의 석조여래좌상(사진1)을 들 수 있다. 항마촉지인을 결한 본존불의 화려한 광배 뒤에 보관을 착용한 약사여래좌상을 얕은 음각선으로 새겨 놓았다.
당동리 불상(사진2)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석불의 좌우 어깨와 등에 불상을 돋을새김 함으로써 사면석불을 형상화 하였다. 현재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되었으나 기록에는 중앙에 보탑(寶塔)을 안치하고 좌우로 보살상이 공양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당동리 불상의 경우 사방불의 개념과 『법화경』의 교리가 혼합된 사례라고 하겠다.
후백제의 유풍이 남아 있는 만복사(萬福寺)는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문종(文宗; 1046~1084) 때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복사지 석불입상의 본존(사진3)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통견(通肩)의 입상이며, 광배 뒷면에는 정병(淨甁)을 든 여래입상이 선각되어 있다. 왼쪽 어깨에서 매듭져 드리워진 착의법 등은 마치 고려불화를 보는 듯 섬세하며, 특히 석재 표면을 그대로 둔 채 주위만을 다듬은 것은 회화적 표현법을 느끼게 한다.
이외에도 선산 궁기동 석조보살좌상(사진5)은 오른손은 어깨에 들어 올려 연꽃가지를 잡고 있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는데, 손 모양으로 보아 어느 본존불의 협시보살로 생각된다. 오른손에 든 연꽃가지의 줄기가 허리에서부터 가슴을 거쳐 광배에까지 두드러지게 올라와 있으며, 광배에는 연꽃 봉오리가 크게 돋을새김 되어 있다. 이 불상의 광배 뒷면 역시 보살좌상을 얕게 돋을새김 하였다.
이들 배면불상은 대부분 고려시대에 집중적으로 조성되며, 지역도 전국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당시 불교사상의 한 흐름을 반영한 독특한 용례라고 할 수 있고, 여래·보살·탑·나한 등 소재 역시 다양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골이 깊은 곳에는 어느새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햇살이 유난히 짧아졌음을 느낄 땐 어깨 위로 조용히 어두움이 덮인다.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성급히 겨울을 기다리는 것은 가버린 것에 대한 원망일까. 감추어진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인가? 올해도 그렇게 새해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