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하기

지혜의 향기 /나의 법명

2007-10-06     관리자

어느 마을 산마루에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주는 사람 닮은 큰 바위가 있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들에게 행복을 안겨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어네스트라는 소년이 있었고 그 소년은 늘 바위를 쳐다보면서 ‘나도 저런 얼굴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그러나 그 마을에 여러 걸출한 인물들이 나타났지만 아무도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어네스트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지혜를 큰 바위를 통해 터득할 수 있었고 그 전설의 주인공은 바로 노년의 인자한 모습의 어네스트 자신이었다.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 이야기이다.
현봉(玄峯)?
군법당에서 계첩을 받는 순간 실망스러웠다. 멋진 법명을 받고 싶었는데, ‘청산도, 눈 덮인 설봉도 아니고 검은 봉우리가 뭐람?’ 한자 실력이 변변치 못한 나는 현(玄)자의 쓰임을 검다는 뜻밖에 몰랐다.
그 후 제대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현자의 쓰임이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가장 높고 오묘한 봉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마다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부처님을 닮기 위해 무슨 행원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직장불교신행단체를 하나둘 창립하며 일상적인 법회 활동을 하던 나는 어느 불교신행단체를 방문하고 오면서 그 동안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자비경이라는 조그만 핸드북 하나를 얻어 집에 오는 길에 전철 안에서 읽게 되었다.
“모두가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살아 있는 생물이면 어떤 것이건 하나 예외 없이, 전 우주를 그 높은 곳, 그 깊은 곳, 그 넓은 곳 끝까지 모두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워라.”
그 동안의 신행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이었는지, 얼마나 인간 위주였는지, 만 생명의 평화가 없는 우리의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과는 다른 신행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직장에서 정기적으로 환경법회를 시작하였다. 또한 철도청불교단체협의회의 환경방생법회와 환경수련회, 이웃단체와 연합하여 ‘108 환경수호신장단’을 조직하여 환경 살리기 걷기대회 등을 시도하여 보았다.
그러나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의 행사가 일회성, 전시성 행사로 끝나버렸다. 추진 동력이 모자람을 절감했다. 그래서 내년에는 회원 및 가족을 대상으로 정기법회를 잠시 접어두고 환경문화학당을 열어 전문가 초청법회 및 현장학습 등 특성화된 법회 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빛나는 연못(澯淵),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억겁의 봉우리(玄峯), 내 이름과 법명에는 맑은 물, 오염되지 않은 땅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바라밀이 정토이듯 내가 닮아가야 할 대상은 전 우주를 그 높은 곳, 그 깊은 곳, 그 넓은 곳 끝까지 모두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워줄 현봉(玄峯)이다.

정찬연 님은 철도청 기관사로서 전 철도청불교단체협의회 사무국장, 철도청인트라넷불교동호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로서 활발한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99년 월간 「불광」 창간 25주년 기념 신행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