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공부와 금생 공부

지산스님의 수행한담

2007-10-06     관리자

수행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수행이 진보되기를 바란다. 마음이 수행 대상에 잘 집중되기를 바라고, 선정에 들거나 열반을 증득하기를 바란다. 어떤 수행자들은 이런 과정이 수월하게 이루어져서 뜻한 바를 쉽게 성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그렇지 못해, 많은 장애에 부딪치거나 수행에 진보가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차가 생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각자의 전생 수행 여부, 또는 그 전생 수행의 깊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전생 공부를 말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분이 바로 육조 혜능 스님이다. 그 분은 나무꾼으로 생활하다가, 지나가던 스님이 금강경 한 구절을 암송하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열렸으며, 오조 홍인 스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조 스님의 인가를 받고 그 분의 법을 이었다. 전생 공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인데, 선종사에 보면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오조 홍인 스님의 후신이라는 오조 법연(五祖 法演) 선사, 전생에 이미 큰 스님이었던 대혜 종고(大慧 宗巾) 선사 등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부처님께서도 엄청나게 많은 전생 공부를 지어 놓으셨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연등 부처님께 수기 받으신 이후에 무려 4아승지겁 10만겁 동안 수행과 공덕을 쌓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직후 그 당시 브라만교 수행 지도자인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푸타에게 가서 까시나(kasina) 방법을 통한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의 선정 수행을 닦으시는데, 거기 와서 수행하던 다른 사람들은 몇 년, 몇 십년을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에 아주 쉽게 도달하신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부처님께서는 이미 과거 생에 사마타 수행(선정 수행)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수행 중에 만난 사람들 중에서 선정이나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 보면 한결같이 그들의 전생에 많은 수행을 쌓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필자가 미얀마에서 수행하면서 만난 한 일본 스님이 있다. 그 분은 일본 조동종 승려로 18년 동안 수행을 했었는데 일본의 수행 풍토에 한계를 느끼고 힘들어하다가, 일본을 방문한 미얀마 큰스님을 만나 일본 승적을 버리고 상좌부 불교에 새롭게 출가해서,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수행할 때와는 달리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놀랄 만큼 빠른 진취를 보여, 수행을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사마타, 위빠사나의 전 과정을 마쳤고, 필자가 보는 안목으로는 열반을 증득하여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 분과 같이 지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필자의 수행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 분 말씀이 수행 과정 중에 자신의 과거 생을 살펴보니 바로 앞 전생에는 일본에서 승려로 살면서 수행을 했고, 전전생에도 승려는 아니었지만 역시 일본에서 수행을 하면서 살았다는 거였다.
필자가 미얀마에서 만난, 수행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느낀 한 딜라신이 있다. 딜라신이란 우리나라의 비구니에 해당하는 여자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상좌부 전통에서는 비구니 계맥이 오래 전에 끊어졌기 때문에 비구니 제도는 없고, 대신 8계나 10계를 지키면서 절에 들어와 수행하며 사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들을 딜라신이라고 한다.
어느 날 한 수행 센터에서 탁발을 하다가 한 딜라신이 스님들에게 음식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맑고도 넉넉한 기운을 가진 모습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저 딜라신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다른 외국 수행자들에게 들으니 디팡카라라는 이름의 그 미얀마 딜라신은 그 수행 센터에 와서 수행한 지 일주일 만에 깨달음을 얻었으며,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한다는 거였다. 호기심이 생긴 필자는 외국인 비구들과 상의해서 그 딜라신을 초청해 수행담을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게 되었다.
외국인 비구들이 여러 명 모여 기다리는 장소에 찾아온 그 디팡카라 딜라신은 수행 체험을 듣고 싶다는 필자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전생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전전생에 부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고 부처님을 여러 번 직접 친견했다고 했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 당시의 많은 재가 신자들 중에서 가장 보시를 잘한 여자 신도로 비샤카라는 여인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자신이 바로 이 비샤카의 손녀였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부처님 처소에 가서 부처님을 자주 뵈었다는 것이다.
놀랍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해서 내가 물었다. “그럼, 부처님의 정수리에 정말 육계가 있었습니까?” “아니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귀는 정말 크셨나요?” “ 예, 정말 큰 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얼굴은 갸름하셨고, 피부는 약간 어두운 색깔이셨어요. 부처님으로부터 나오는 기운은 너무도 평화스럽고 편안했지요.”
그녀는 그 생에 부처님 제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백골관 수행을 많이 했고, 결혼한 뒤에는 수행은 많이 하지 못했으나 보시는 끊이지 않고 했다고 한다. 그 생 다음에는 보시, 지계의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나서 복락을 누리며 지내다가 뜻한 바 있어, 자신이 배웠던 부처님 당시의 수행법을 인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이 생에 인간의 몸으로 오게 되었다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그녀의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던 필자는 그 뒤 인간계에 온 뒤의 그녀의 수행담을 들으면서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의심할 수 없었다. 나이 20세가 지나 수행을 시작했는데, 어디에서든지 마음이 집중만 되면 마음 속에 백골이 떠오르고 그 백골에 마음이 몰입되었다 한다.
이러한 상태를 지도하는 분들에게 보고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만 할 뿐 제대로 지도를 받지 못해 여기저기 수행 센터를 전전하다가, 우 아찌나(U Accina)라는 사야도(미얀마에서는 승납 30년 이상의 비구를 이렇게 부른다)를 만났는데, 그 사야도는 그녀의 백골관 수행을 칭찬하면서 그녀의 수행을 제대로 인도해 주었다.
짧은 기간에 그녀는 사마타 수행을 완료할 수 있었고, 사마타 수행에서 얻은 선정력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강한 관찰 즉,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었다.
지면 관계로 그 이야기를 여기에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삶을 통해 필자는 너무도 분명한 전생 공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으며, 과거 생에 자신이 했던 수행과 연결지어서 수행을 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얼마 동안의 해외 포교 뒤에 미얀마에 여성 전용 수행 센터를 세워 여성들을 지도할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수행의 진보를 이루는 데 있어 전생 공부는 확실히 중요하다. 상좌부의 아비담마에서는 전생의 마지막 의식에 지혜의 종자가 없으면 금생에 선정에 들거나 열반을 증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생은 전생일 뿐,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다만 금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며, 금생에 최선을 다하면 설사 금생에는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의 어느 생엔가는 반드시 이루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