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의 부메랑을 만들지 말자

함께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10-06     관리자

이진영누이야.
얼마나 오랜만에 내 맘속에 따뜻이 담아보는 말인지 모르겠구나. 극히 사소한 일로 너와 그렇게 크게 다투고 난 지난 몇 년 동안, 사실 나는 너만 생각하면 단 하루도 신간이 편치 않았다.
정말이지, 가까운 사람이 주는 아픔과 배신감일수록 더욱 크고 깊더구나. 남이었으면 진작에 잊혀지고 지워졌을 일이 아직도 내 맘 속 깊은 곳에 크나큰 고통의 응어리로 고여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그 때 너와 내가 한 핏줄만 아니었다면 그만한 일로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도록 싸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설령 그 일이 그렇게 막중하고 지대한 일이었다고 해도 손 위인 내가 조금만 더 넓고, 깊고, 느리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절연까지 가는 다툼은 없었을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 그게 다 내 아집과 자존심과 탐심이 빚어낸 어리석음의 소치였다. 아픔의 부메랑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때 그 상황에선 너는 네가 최선이었고, 나는 내가 최선이었다. 그런데도 우린 그 때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최선임을 주장하면서 어리석게도 천륜마저 어기려고 한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단 해밀턴의 『용서』라는 책자는 나에게 그 같은 자각을 더욱 깊이 심어주었다. 단 해밀턴은 그 소책자에서 S. I. 맥밀란이라는 의사의 말을 인용해 “어떤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의 노예가 되고 만다.… 나의 마음을 꽉 틀어쥐고 있는 그 강압적인 손길로부터 피할 도리가 없다. 음식점 종업원이 내 앞에 큼직한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갖다 놓을 때에도… 그것은 다 말라비틀어진 빵과 물밖에 없는 식사와 별반 다를 게 없게 된다.… 미움을 받고 있는 그 사람은 내가 그 맛을 즐기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해밀턴은 “미움은 마치 부메랑과 같다. 미움은 제 자리로 돌아오면서 처음에 표적으로 삼았던 사람 대신 우리들 자신에게로 와서 꽂힌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악영향을 미치는 소행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 누이야.
해밀턴의 지적처럼 너와의 다툼이 있고 난 뒤 나는 너무도 오랜 날을 미움의 노예로 살아 왔다. 다시는 뇌리에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솟아나는 너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나는 숱한 밤들을 불면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말이다. 정말 그것은 송곳 같은 아픔이고 고통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이름 석자 대신에 ‘우전 거사(愚田居士)’라는 자호(自號)를 즐겨 사용한다. ‘우전(愚田)’이란 글자 그대로 ‘어리석은 밭’을 뜻한다.
불혹(不惑)의 어느 날부터였다. 탐진치(貪嗔痴)와 아상(我相)에 젖어 내가 최고인 줄만 알고 시건방지게 살아왔던 지난 날의 삶이 그렇게 부끄럽고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늦철이 들어갈수록 내 살아가는 삶 또한 그렇게 부끄럽고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런 자각에 이르면서부터 나는 내 이름 석자 대신에 그렇게 스스로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전 거사(愚田居士)’라 자칭하고 다닌 것이다.
누이야. 이제 내 어줍잖은 편지의 본론을 말해야 할 대목에 이른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우리 나라 불교계의 원로 중에 김재웅 법사라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은 자신을 따르는 불자(佛子)들에게 ‘금강경’을 독송하도록 지도하면서 여섯 가지 ‘마음 살림살이 법’을 가르치고, 또한 몸소 그 여섯 가지 ‘마음 살림살이 법’을 실천하며 사시는 분이다. 그 여섯 가지 ‘마음 살림살이 법’ 가운데서도 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마음 살림살이 법’을 참 좋아한다.
첫째,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을 연습하라.
둘째,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내 허물은 남의 허물처럼 파 뒤집는 마음을 연습하라.
셋째, 남의 허물이 보이면 그게 곧 내 허물인 줄 알라.
넷째, 누가 뭐라든 ‘예’ 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연습하라.
그래. 누이야.
김재웅 법사님의 ‘마음 살림살이 법’처럼 그 때 내가 너를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연습했더라면 한 피를 나눈 남매끼리 그렇게 오랜 날을 분노와 배신감으로 살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네 허물보다도 내 허물을 더 크게 보는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연습하고 살았더라도 그렇게 많은 날들을 미움의 노예가 되어 마음의 자유를 스스로 속박하고 살진 않았을 것이다.
누이야.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보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해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연습하고 살았다면 최근에 일어난 북오세티야 베슬란 제1공립학교 인질 참사극이나 미국의 9.11 테러 같은 악몽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말이다.
더불어 남의 허물을 내 허물로 보고 남의 허물을 내 허물처럼 덮어주는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연습하고 산다면 작금의 우리 나라가 국가보안법 철폐문제나 과거사진상규명문제 등으로 이렇게 온통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진 않을 거라고 말이다.
참, 누이야. 기독교도인 너로서는 누구든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을 연습하라고 하면 당장 거부감부터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는 네가 믿는 종교에 따라 부처님 대신에 누구든 상대방을 예수님으로 보는 마음을 연습하고 살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네가 이슬람교를 믿는다면 부처님 대신에 상대방을 마호메트로 보는 마음을 연습하고 살면 될 것이고 말이다.
그래. 누이야.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좀 있으면 온 산천이 단풍잎으로 붉게 물들겠지. 그러면 우리 올해는 반드시 서로의 미움과 분노의 부메랑을 땅 속 깊이 파묻어 버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 산천 가까운 곳 어디쯤으로 단풍놀이라도 가도록 하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