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실천해야

우리스님/ 한국티벳센터 쵸펠 스님

2007-10-06     관리자

쵸펠 스님이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96년이다. 그러니까 8년 전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는 수많은 한국의 불자들이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기 위해, 혹은 성지순례 차 오고 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구 하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티벳에서 망명, 당시 인도 다람살라에 계셨던 쵸펠 스님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문화와 불교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부산 영도 백련사 주지스님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2~3일 만에 한글을 읽으면서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의사소통은 되었고, 6개월간 통도사 강원에서 스님들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너무나 빠르게 한국말을 하고 걸림없이 생활해가는 모습들을 보며 사람들은 놀라워 했다. “인도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느냐?” “아니면 전생에 한국에서 살았느냐”며 신기해 하지만 한국어 공부뿐만이 아니다. 컴퓨터, 비디오와 사진 촬영과 편집, 운전 등등 무엇을 배우든 별 어려움 없이 척척 해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해보는 일이냐”고 묻곤 한다.
“티벳에서는 근기에 맞게 자기 스승으로부터 받은 교육들이 다 다릅니다. 절마다 수많은 스승들이 계시지요. 저의 스승은 환경에 맞게, 환경 자체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생활할 수 있는 수행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8년 정도 살면서도 별다른 문제없이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볼 때나 사람을 대할 때도 스님은 스님의 생각으로 그것들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 벽이 있을 리 없고 개개인을 같은 존재로 보니 굳이 한국사람이니 티벳 사람이니 하는 구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없이 금방 그것과 하나가 되곤 한다.

한국티벳센터 광성사가 마련되기까지
한국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반연이 넓어지고 송광사 강원에서 1년 4개월간 학인들에게 티벳불교를 강의하며 스님 또한 한국의 불교를 속속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티벳불교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차츰 많아지면서 함께 할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현재의 광성사(부산 진구 아미동 아미 초등학교 앞)와 인연이 되었다. 그 또한 묘한 인연이다.
스님이 머물고 있는 광성사가 지금은 3층의 현대식 건물에 외형은 티벳사원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20년 전에 해산 큰스님(밀양 표충사 내원암)께서 주석하시던 곳이었다. 나란다 불교청년회를 34년간이나 이끌어왔던 김도원 법사님의 어머님께서 큰스님을 위해 마련한 처소였다.
그런데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머지 않아 이 곳의 주인이 먼 곳에서 오실 테니 그때까지 절을 잘 보존하라”고 하셨다. 어디에서 오시느냐고 여쭈었지만 그때 가 보면 알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7년 전 쵸펠 스님의 강의 내용을 신문에서 접한 김도원 법사님은 ‘바로 이분이다’라는 생각에 곧바로 스님을 찾게 되었다. 스님을 만나기 7년 전부터 광성사에서 청년들과 함께 달라이 라마 저서들과 『티벳 사자의 서』 등을 공부해왔기에 인연이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광성사는 1년 6개월 전 다시 지어졌고, 지금은 한국티벳센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 광성사는 한국에 티벳 불교를 알리는 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현재 티벳어를 공부하는 한국스님 두 분과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오신 티벳 스님 두 분이 쵸펠 스님과 함께 생활하고 계시다. 공양주도 없고 신도회 조직도 없지만 그저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다. 매주 토요일과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금요일 저녁법회가 열리고, 티벳 경전의 번역 · 출간, 홈페이지(http://www .tibetkorea.org) 등을 통해 그 활동을 전개해가고 있다.

티벳의 불교는 곧 티벳의 문화요 삶이다
티벳의 불교는 그 자체가 바로 티벳의 문화이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생활은 그 자체가 곧 불법의 실천이다. 예를 들자면 아기가 태어나서 이름을 지을 때조차도 티베트인들은 스승들에게 의지하여 아이의 성을 지으며, 성도 아버지 성을 따르지 않고 스승의 성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티벳 사람들은 스승 찾는 것을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며 스승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도 절대적이다.
그래서 스승들을 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한다. 그분들의 가르침의 핵심은 불교의 인과에 바탕을 둔 보리심에 대한 실천이다. 인과에 대한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티벳에서는 ‘인과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모욕적인 욕설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과를 믿는 티벳 사람들은 현생보다는 내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로 이번 생에 이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평등한 마음가짐, 일체 중생들을 자기 어머님이라고 생각하는 자비심 등의 보리심 공부를 바탕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티벳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티벳의 스승들은 자신이 실천한 내용만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위대한 힘은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즉 인과를 바탕으로 한 일상생활 속에서 욕심이나 시기심, 자만심 등을 줄이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곧 실천이죠. 실천 없이는 아무런 도움도 안 돼요.”

이번 생에 깨닫지 않아도
티벳에서는 이번 생에 깨달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깨닫고 나서도 중생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깨닫기 전이라도 지금 중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착실히 하면서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불자들은 이번 생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다. 기도하더라도 이번 생에 얻고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많이 빠져있다. 불자라면 모름지기 인과를 믿고, 내생을 믿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티벳에는 생일이 없습니다. 저도 생일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생일을 만들어야,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저희는 잠 자려고 이부자리를 펼 때 시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잠들면 중음신 곧 바르도 상태라고 생각하고, 깨어날 때는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밤낮없이 공덕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전생에 우리는 많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이번 생에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면 이번 생애에 좀더 열심히 살면서 공덕을 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내생에 대한 큰 재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더라도 자기 마음 속의 탐· 진·치를 줄이거나 없애지 않는다면 그냥 고생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도움은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8만 4천 대장경의 내용이 오로지 탐·진·치를 없애기 위한 것이지요.”

하루 5분이라도 매일 꾸준히 꾸준히 해야
“사람들이 티벳 밀교수행에 대해 신비롭게 생각하는데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空)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수행에 대한 성취가 빠를 수 있습니다. 공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부터 ‘나’라고 하는 것, ‘나’라는 집착이 사라지게 됩니다. 방법으로는 진언, 만다라, 차크라 같은 수행법들이 있습니다. 밀교수행은 ‘보리심, 자비심’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스님은 우리가 일상 중에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수행법을 일러주신다. 아침에 눈을 막 떴을 때 ‘나는 죽을 가능성이 많은데 이 거센 태풍 속에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아서 눈을 뜨고 있는 것이 고맙다.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5분 정도 생각을 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5분 정도 ‘오늘 하루 내가 실수한 것이 있으면 참회를 하고 내일은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에 10분 정도만 매일매일 해도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꾸준히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 힘든다는 말만 자꾸 한다며 안타까워하신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만 같아라.”
가득 충만하면서도 텅빈 것 같은 우리 쵸펠 스님은 그렇게 환한 보름달과 같은 스님이시다.
스님은 다음생에도 역시 출가수행자로 태어나고 싶으시다고. 그리고 당신의 스승으로부터 그렇게 공부해왔듯이 이번생에 깨달음을 구하기보다 그 길을 함께 가며 도움되는 이가 되고 싶다고 하신다. 한국에 이렇게 머물고 있는 것 또한 아직은 이곳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쵸펠 스님은 14세 때 티벳 규메사원에 출가 수행하였으며,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 중 한국의 문화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1996년 한국에 온 이래 통도사 강원에서 6개월간 수학하였다. 1년 4개월간 송광사 강원에서 강의한 바 있고, 현재는 한국티벳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부산 광성사에서 주석하고 계시다. 『깨달음으로 가는 올바른 순서』를 편역, 출간한 바 있으며 티벳에서 수백 년간 불교수행의 지침서로 삼아 오고 있는, 쫑카빠(1357∼1419) 스님의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에 대한 해설서를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